컨텐츠 바로가기

12.15 (일)

이슈 윤석열 정부 출범

‘윤석열 노벨 평화상’ 추천한 캠벨, 계엄선포에 배신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

한일관계 정상화 높이 평가하며

올 초 ‘尹과 기시다’ 공동 수상 주장

2009년 “김정일 수명 3년 남았다” 며

정확한 예측 한국에 알려주기도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 분야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으로 인한 비상사태를 가장 주시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은 이번 사태를 시시각각 분석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비상 사태 정보 수집을 위해 미국의 정보 기관원들이 일부 충원됐다고 합니다. S씨, K씨를 비롯한 미국측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속속 서울을 찾고 있습니다.

미국의 반응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 가지로 요약됩니다. 윤 대통령의 계엄을 위법으로 규정하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호를 내고 있습니다. 12월 3일 계엄 사태 발생 초기부터 이런 흐름을 이끄는 이는 미 국무부의 커트 캠벨 부장관입니다. 캠벨 부장관은 계엄 사태 직후인 4일 워싱턴 DC의 아스펜 안보포럼(ASF)에 참석,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해 “매우 문제 있고 위법한 행동으로, 예측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심하게 오판(badly misjudged)한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또 “한국이 이런 조치를 관리하고, 명확하고 단호하게 반대하는 회복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한국의 민주주의 강도와 깊이에 대해 매우 안심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조선일보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2024년 7월 워싱턴 DC를 방문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87년 한국이 민주화된 후,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가 통치 문제로 미국의 부장관으로부터 공개적인 비판을 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평시같으면 문제가 돼도 크게 됐을 사안입니다만, 우리나라의 어느 외교관도 미국에 항의하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시각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대한민국 비상사태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그 발언의 강도는 캠벨의 비판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흔히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것과 유사했습니다. 미리 통보를 받지 못해 화가 났다는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트럼프의 방위비 재협상 시도 우회 비판

캠벨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시아를 중시하는 ‘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sia)’을 추진했고,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에 이어 현직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를 총괄하는 ‘아시아 차르’로 불리는 실세입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국방부 동아태 부차관보를 맡으면서 30년 가까이 한국 문제를 다뤄와 한국에 지인들이 많습니다. 지한파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계엄 사태 직전인 지난 달,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회의에 나와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우호적인 한미관계가 계속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한국은 매우 관대하고 너그러운 방위비 협정을 체결했다”며 “차기 행정부에서도 이런 지혜가 충분히 발휘되기를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최대 9배까지 올리겠다고 하자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한국을 변호하고 나선 겁니다. (한국은 지난 10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2026년에 전년 대비 8.3% 오른 1조 5192억원으로 정하고 2030년까지 매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반영해 올리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에 앞서 그는 지난 4월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총리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바 있습니다. 이는 윤 대통령의 실책으로 여당인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대패한 직후여서 거의 기사화되지 않았습니다.

캠벨은 당시 허드슨 연구소 대담에서 지난해 8월 처음으로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린 것을 상기시키며 “한일 두 정상이 매우 어려운 역사적 문제를 극복하려는 결단은 놀라웠다”고 했습니다. 그는 “만약 진정으로 누가 국제 무대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와 노벨 평화상 수상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두 정상의 공동 수상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를 대표해서 ‘윤석열-기시다 공동수상’을 촉구한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위법’ ‘오판’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윤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 차원의 ‘경고’이자, 깊은 배신감을 토로한 것으로 보입니다. 윤 대통령이 어처구니없는 계엄 선포로 어렵게 쌓아 올린 한미일 3국 협력체제를 붕괴시키는데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선일보

2023년 10월 커트 캠벨 당시 백악관 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한미동맹 70주년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하고 있다./주미한국대사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바마 행정부 동아태 차관보로 활동

제가 캠벨에 주목한 것은 2007년 5월 워싱턴 DC에 부임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캠벨은 2008년 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미국안보센터(CNAS)를 만들면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CNAS는 대선 때 오바마의 싱크탱크로 활동하면서 여러 외교안보 정책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피닉스 이니셔티브(Phoenix Initiative)’ 보고서에서 러시아와 협상, 미국의 핵무기를 1000개 수준으로 대폭 감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2008년 11월 13일 백악관 바로 옆의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CNAS 행사는 그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이날 CNAS의 ‘간판’인 캠벨과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NSC 부보좌관(나중에 국무부 부장관) 이 ‘쉽지 않은 정권 인수인계(Difficult Transition)’ 출간 기념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때 약 500여 명이 몰려 책에 서명을 받기 위해 긴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CNAS 공동 창설자인 미셸 플루노이(나중에 국방부 차관) 는 오바마 정부 인수위원회의 국방부 인수팀장으로 선발됐습니다. 당시 하마평대로 캠벨은 2009년 1월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 임명됐습니다.

그의 부인 레이얼 브레이너드는 클린턴 백악관의 국가경제 부보좌관에 이어 오바마 행정부의 재무부 국제 담당 차관으로 임명돼 ‘파워 엘리트 부부’로 주목받았습니다. 브레이너드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연방준비제도(연준) 부의장을 거쳐 2023년 2월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 임명됐습니다. 캠벨과 브레이너드는 각각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 부교수, 매사추세츠공대(MIT) 응용경제학과 부교수 시절 보스턴에서 만나 결혼, 3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조선일보 독자들과 interact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오바마 정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이끈 캠벨은 주미한국대사관과 한국 특파원들의 매일같이 주시해야 할 인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단독 인터뷰를 요청한 끝에 2010년 10월 국무부 6층 캠벨의 방에서 그와 마주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방 한 쪽이 가족 사진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상 위에도 딸 3명 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캠벨은 저와 악수하며 “한국언론과 별도의 인터뷰 하기는 처음이다. 조선일보 독자들과 interact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교감하다, 소통하다’는 의미를 가진 interact 라는 표현을 쓴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대단히(extraordinarily) 명확하고, 대단히 일관돼 있다”며 “한반도 긴장 완화 초기의 중요한 과정은 남북한이 더욱 개선된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캠벨과의 인터뷰에서 기억나는 질문은 크게 두 개입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모든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미국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으려는 것 같다.

“그 말에 많은 부분을 동의하면서 몇 단어만 바꾸고 싶다. 때때로 미국과 북한 간의 외교가 한국의 입장보다 앞에 있었던 그런 시대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은 한국의 파트너로서 전략적 이해를 갖고 있으며 한반도에서 해야 할 중요한 리더십 역할이 있다. 한·미 양국이 상호 이해를 극대화하는 것은 최대한 긴밀한 협력으로 북한에 대응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 어떤 관계를 갖길 바라는가.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가 발생한 후 중국측에 여러 차례 ‘지난 15년간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바로 한·중관계의 발전’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중국이 북한을 편들어서 한국의 중국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그동안 발전하여 온 한·중관계가 더 진전되기를 바라고, 신뢰가 다시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미관계와 한중관계를 대립시켜 보는 시각이 강합니다. 우파는 우파대로, 좌파는 좌파대로 한미-한중 관계에 대해 편견이 있는데, 캠벨이 미국의 입장을 솔직하게 피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캠벨이 지한파라고 해서 미국의 국가 이익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국방부 부차관보 시절 주한미군 방위비가 제대로 인상되지 않으면 미군을 감축시킬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고 기억하는 한국 외교관도 있습니다. 당시 우리측은 이를 일종의 협박으로 인식했습니다.

한국 외교부의 특정 인사를 거명하며 “내 처를 제외하고는 내가 가장 많이 싸운 사람”이라는 조크를 한미 양국 인사들이 모인 식사 모임에서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미 양국이 문을 걸어 닫고 진행하는 협상에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 클린턴 방북 토대로 김정일 남은 수명 정확히 예측

캠벨은 2010년 3월 방한 당시 우리 정부 관계자 등에게 “김정일의 수명이 3년 남았다”고 전해줘 화제가 됐습니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의 건강 문제에 대한 미국의 분석을 알려준 겁니다.

조선일보는 이를 토대로 2010년 3월 17일자에 [“김정일 수명이 3년 정도 남았다”면…]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김정일은 캠벨의 발언 후 1년 9개월 뒤인 2011년 12월에 사망했습니다.

조선일보

2009년 8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의 방북 당시 김정일을 주시하고 있는 클린턴의 주치의 로저 밴드 교수(오른쪽에서 세번째)/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캠벨이 김정일 수명을 예측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09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있습니다. 클린턴은 2009년 8월 그해 3월 북·중 접경지역에 취재갔다가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 두 명을 데려오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이때 클린턴의 주치의 역할을 하는 로저 밴드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가 동행했습니다.

응급의학 전문의인 밴드 교수는 방북하기 전에 정보기관으로부터 김정일을 만나게 될 경우에 대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김정일의 걸음걸이를 비롯해 치아, 머리카락, 손발의 움직임, 발음 등을 정밀하게 관찰할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클린턴은 약 3시간 동안 김정일을 만나는 자리에 밴드 교수를 배석시켜 김정일을 바로 코앞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밴드 교수는 평양에서 돌아와 김정일의 건강상태를 보고했고, 미 정보기관은 이를 토대로 그의 수명을 예측했습니다. 캠벨은 이같은 예측을 당시 이명박 정부와 공유하며 유사시 한미 양국의 더욱 증강된 협력 태세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