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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무게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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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 대개혁! 범국민 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가 “민주주의 사수”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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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원 | 국제부장



한국 민주화 운동 역사의 무게를 외국에 가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여러차례 있었다. 2010년 12월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만난 야당 정치인은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들며 미얀마 민주화의 소망을 이야기했다. 당시 미얀마에서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던 아웅산 수치가 14년 만의 가택연금에서 해제됐고 군부 정권은 민정 이양을 추진하고 있던 때였다. 한국인 기자를 만나서 꺼낸 화제이기는 하겠지만, 한국 민주화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15년 아웅산 수치가 민족민주동맹(NLD)을 이끌고 총선에서 압승해 미얀마 정부를 이끌었다. 그러나, 2021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시민들이 저항했으나 군부는 이를 잔혹하게 유혈진압했다.



일본에서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한국 민주화 운동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시민의 힘으로 군사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적 정부를 세운 역사는 없기 때문에 한국의 독특한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1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타이 정당 전진당의 대표 피타 림짜른랏은 여러 인터뷰에서 문민정부 이후 한국의 사례를 들며, 2014년 군사 쿠데타 이후 군부 영향력이 압도적이 된 타이 정치의 개혁을 호소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최근 몇십년 동안 자연스러운 것이 됐지만, 민주주의 쟁취와 유지는 녹록한 일이 아니다.



12월3일 밤 10시28분 윤석열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선포한 비상계엄은 이를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윤 대통령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며 시대착오적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해제하는 일을 벌였고, 이 일은 주요 국제뉴스로 전세계에 전파됐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태로 한-미 관계는 수십년 만에 가장 큰 시험에 부닥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민주주의 대 독재’를 외교 정책의 기본 틀로 삼아온 것을 언급하며 “중국과 북한,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과 군사 협력을 강화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를 어떻게 다룰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4일 ‘애스펀 전략 포럼’ 행사에서 한국 상황에 대한 질문에 “나는 윤 대통령이 심각한 오판을 했으며, 한국에서는 계엄에 대한 과거 경험들이 깊고 부정적인 반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며 윤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안 그래도 한국 정부는 심각한 외부적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처지였다. 5일에 북한과 러시아는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상호 군사 지원을 약속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북-러 조약) 비준을 완료해 조약을 발효시켰다. 이 조약은 북-러 군사 동맹 관계 복원의 법적 기반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방부는 북한이 러시아에 파견한 병력이 1만명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자장에 한반도도 빨려 들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도 불안 요소다. 트럼프 당선자는 1기 행정부 때 북한과 핵 협상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북한과 협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그의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면모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가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피트 헤그세스 등 외교안보 수장들이 군사력 사용을 선호하는 강경 매파다. 트럼프가 북한과 협상에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밀착한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외부의 위험요소가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는 이때 윤 대통령은 한국 사회가 오랜 노력으로 이룩해 놓은 자산인 민주주의 쟁취의 역사마저 허물려 했다. 야당의 비협조 때문에 벌인 일이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빠져나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12·3 내란 사태가 벌어진 지도 벌써 일주일을 향해 가고 있다. 하루빨리 물러나고 내란 사태에 대한 수사를 받아야 한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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