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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17세 러시아 국적 고교생, 머슴밥 먹으며 일본 야구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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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식당에서 식사하는 니키타의 모습. 나고야 TV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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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4형제로 이뤄진 니키타 가족. 주니치 신문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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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가 드래프트 2순위로 지명한 외야수 모이세예프 니키타

[OSEN=백종인 객원기자] 푸른 눈의 청년이다. 머리에도 붉은빛이 돈다. 몸집은 크지만, 아직은 앳된 얼굴이다. 이국적인 그의 이름은 모이세예프 니키타. 러시아 국적의 고교 3년생이다.

18세 생일(11월 29일)이 이틀 뒤다. 그런 그가 난생처음으로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었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 정식을 프로야구 선수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0월 말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지명됐다. 고졸 외야수 중에는 유일하게 선택된 경우다. 그만큼 장래가 촉망되는 재목으로 꼽힌다.

러시아 국적이지만 신분은 일본 고교생이다. 아이치현에 있는 도요카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그곳 야구부에서 3년을 활동했다.

학교에도 큰 경사다. (고졸 직행) 프로 선수를 배출한 게 27년 만이다. 모리타니 아키히토(전 긴테쓰, 라쿠텐) 이후 아무도 이루지 못한 꿈이다.

드래프트 당일에는 온 동네가 축제 분위기다. 방송사 중계차까지 동원돼 흥을 돋운다. 야구부뿐만이 아니다. 응원단, 교사, 학부모, 졸업생까지 모여 발표 장면을 TV로 시청했다. 니키타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강당이 떠나갈 듯 환호가 터졌다.

그리고 2주일 뒤다. 입단 교섭이 마무리됐다. 계약금 6000만 엔(약 5억 4500만 원), 연봉 650만 엔(약 5900만 원)에 합의가 이뤄졌다. 백넘버 31이 달린 유니폼을 입게 됐다. 정식으로 프로 선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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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신문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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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세르게이 니키타)는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이다. 소련이 붕괴되며 힘겨운 젊은 시절을 겪어야 했다. 2000%가 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는 삶이었다. 닭다리 한쪽으로 어른 둘이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탈출이 절실하던 시절이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외국인 연구자 프로그램이 생긴다는 말이 돌았다. 여기에 합격해 아이치현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4형제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효자가 된 모이세예프는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는 가라데 유단자다. 불안정한 블라디보스토크의 치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운 무술이다. 일본에서는 지방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도 있을 정도다. 자연스럽게 아들들도 4~5살 때부터 도장을 다녔다.

그런데 둘째는 엉뚱한 곳에 더 흥미를 갖는다. 공을 치고받는 생소한 스포츠(야구)였다. 아마 외야수로 뛰는 아들이 못 마땅했던 것 같다. 처음에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우두커니 잔디에 서 있는 게 무슨 운동이 된다고….”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결국 아버지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다. 야구 관련 서적 50~60권을 탐독하며 전문가가 됐다. (그는 전자공학 전공이다.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구파다.)

둘째 아들은 곧 가라데를 그만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이다. 아니, 사실은 집안 형편 때문이다. 아들 넷을 키우며, 어렵게 객지생활 하는 부모를 생각한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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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직후 야구부원들의 헹가래를 받는 모습. 주니치신문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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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특출한 재능은 안 보였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저 그랬다. 그나마 인근에서 가장 잘한다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시엔 대회에 딱 한번 출전한 경력이 있는 도요카와였다.

하세가와 유키 감독은 그의 신입생 때를 기억한다. “반드시 프로 선수가 되겠다는 의욕이 가득했다. 그러나 가능성은 20% 이하였다. 살집이 없이, 너무 호리호리했다(178cm, 66kg). 배트에 몸이 질질 끌려 다녔다.”

감독이 특명을 내렸다. “2학년 봄까지 20kg을 더 불려라. 아니면 게임에 안 내보낸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야구부는 전원 기숙사 생활이다. 그곳 식당 음식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특별한 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직 양으로 승부해야 한다. 흰쌀밥을 매끼 고봉으로 가져다 먹었다.

아침이 가장 고역이다. 안 들어가는 밥을 무조건 500g씩 먹었다(햇반 하나가 210g임을 참고하시라). 저녁 식사가 본게임이다. 900g을 먹어 치웠다. 큰 사발에 넘치도록 담긴, 어른들이 고봉밥 혹은 머슴밥이라고 부르던 모양 그대로다. (물론 단백질 파우더와 웨이트 트레이닝도 도움이 됐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거짓말처럼 몸이 굵어졌다. 지금은 182cm, 87kg이 됐다.

3학년(2024년) 봄 전국대회(센바츠)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아무리 쳐도 날아가지 않는다는 저반발 배트를 쓰는 경기다. 그걸로 고시엔 구장 우측 담장을 넘겼다.

게임은 졌다. 탈락이 확정됐다. 그런데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도요카와 중견수가 괜찮다더라. 3번을 치는데 힘이 장난 아니더라. 발도, 어깨도 총알이다.’ 50m 달리기가 6.2초, 멀리 던지기가 100m로 측정됐다.

고교 3년 간 기록이 범상치 않다. 39게임에 나가서 126타수 65안타를 쳤다. 0.516-0.593-0.913(타율-출루율-장타율)이나 된다. 홈런과 3루타가 7개씩, 2루타는 15개가 포함됐다. 도루도 9개를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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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타 가족은 현재 러시아 국적이다. 최근 일본 귀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과 부모는 일본어로 대화한다. 모이세예프의 경우 러시아어를 조금 한다. 그러나 읽고, 쓰는 것은 서툴다고 한다.

러시아 출신 야구선수는 드물다. 과거 롯데, 두산, SK에서 뛰던 우완 빅터 콜(레닌그라드 출신)이 생각난다. 피츠버그에서 잠깐(1992년) 빅리그를 경험했다. 8경기에서 2패가 기록의 전부다.

NPB에서는 빅토르 스타르핀(일본명 스다 히로시)이라는 투수가 있었다. 1930~50년대에 요미우리 등에서 활약했다. 두 차례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통산 303승을 올린 전설이다.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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