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7 (금)

[르포]훼손된 그린벨트 풀었다는 '서리풀지구' 가보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밭·비닐하우스 눈에 띄지만 불법 건축물 많나?
조속한 보상 불투명…인근주민은 '교통혼잡' 우려
청계산 주변 아파트 최고 7층…고밀개발도 난망


비즈워치

서울 서초구 윈터골 굴다리 지나 보이는 청계산 등산로 입구의 표지석/사진=김미리내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에서 내리니 오전 내 북적이던 지하철 안과는 다른 한적하고 조용한 도로가 나왔다. 평일이라 특히 그랬다. 바로 옆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지만 높게 방음벽이 있어 소음은 거의 없다. 역에서 남쪽으로 5~10분 걸으면 '원터골 굴다리'가 보인다. 굴다리 밑으로는 산나물과 각종 채소를 파는 좌판들이 늘어섰다.

굴다리는 경부고속도로 밑을 지나 청계산 등산로 입구로 이어진다. 청계산 표지석과 등산객,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경사가 보이는 곳. 오랫동안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GB)로 묶여있던 청계산자락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 5일 부동산시장 안정과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해 서울과 경기권 그린벨트를 풀어 총 5만가구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최대 관심사였던 서울 해제구역은 바로 이 청계산 자락 아래 고속도로 양옆으로 붙은 원지동과 신원동을 포함한 서초구 '서리풀지구'다.

청계산입구역에서 북쪽으로 양재 나들목(IC) 방향 구룡산 자락 아래 염곡동과 내곡동, 우면산 자락 아래 선암 IC 서측에 있는 우면동 일대도 포함됐다.

정부와 서울시는 산 아래 많지 않은 평지를 모아 총 221만㎡ 면적에 고밀개발을 통해 2만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2029년 첫 분양을 시작으로 2031년 입주가 목표다. 미래세대를 위해 보전해야 할 땅인 만큼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서울시는 GB 해제 이유로 '이미 훼손된 상태로 보존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즈워치

서울 신원동에 위치한 그린벨트 지역 표지/사진=김미리내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2년 만에 풀린 그린벨트…훼손지역이라고?

지난 11일 기자가 찾은 서초구 서리풀지구 내 신원동과 원지동 일대는 등산객을 제외하고는 주민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모습이었다. 원터골 굴다리 반대편인 신원동 도로에는 각종 조경나무를 심어놓은 농원과 식물원, 꽃 직판매장들이 늘어섰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를 더 가면 높지 않아 주민들이 자주 찾는다는 인릉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새쟁이마을 입구가 보인다. 개발제한구역이라는 표지판과 함께다.

입구에서부터 오래된 키 큰 은행나무들이 늘어섰고, 경사 옆으로 넓지 않은 평평한 지대 곳곳에는 밭과 비닐하우스가 있다. 강남 바로 옆, 서울 내에서도 노른자 땅인 서초구라기에는 생경한 풍경들이다. 한순간에 지방 소도시 작은 숲길을 오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서울에서 12년 만에 풀린 GB 핵심지역으로 주변 집값이며 땅값이 들썩여 시끄러울 것이란 예상과 달리 내부는 고요한 모습이다.

비즈워치

서울 서초구 신원동에 위치한 그린벨트 지역 내 밭과 비닐하우스 모습/사진=김미리내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가 언급한 '이미 훼손돼 보존가치가 낮은 그린벨트', 국토교통부가 밝힌 '난개발 우려가 있는 개발제한구역'이라고 보기에는 '정말 녹색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나' 싶은 풍경이었다. 지장물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비닐하우스 정도의 농업용 구조물 정도일 뿐이었다. 창고, 무허가 건물 등 불법적으로 무분별하게 훼손됐다고 볼만한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신원동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 주민 대부분 고령층이 많다"면서 "서초는 강남과 달리 인프라보다는 청계산, 여의천 등 한적한 자연을 누리기 위해 이사 온 주민들이 많아 인프라 시설이 크게 확대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주민들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해제 발표 이후 문의 전화는 빗발쳤다고 한다. 소유한 땅이 해제 지역에 포함되느냐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소유주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그린벨트 해제지역에 땅이 포함되는지 묻는 문의가 많았다"며 "하지만 아직 정확한 지번 등이 나온 게 아니어서 현재는 구청을 통해서만 해당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토지보상가가 높지 않아 보상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인근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전부터 토지거래허가제 구역으로 묶여있어 사실상 거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기대와 우려가 혼재한 상태"라며 "보상으로 환금성이 생기긴 하겠지만 기분 좋게 땅을 수용당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서초구 내 개발제한구역 농지는 1998년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있어 300평 이상 경작을 하는 농업인만 토지거래가 가능했다. 그런 만큼 거래가 많지 않았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의 설명이다.

실제 2021년 도로에 인접한 신원동 토지(전)는 약 300평이 11억2500만원에 거래된 바 있다. 3.3㎡(평)당 375만원 수준이다. 감정가를 기준으로 보상금이 책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상금액은 이 정도 단가를 기준으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워치

서울 서초구 신원동에 위치한 그린벨트 지역/사진=김미리내 기자


교통혼잡 우려, 고밀 택지개발 의구심도

인근 아파트 지역 주민들은 당장 뛰지 않는 집값보다 교통 혼잡을 우려했다. 국토교통부는 신분당선과 선바위역 4호선 간 순환버스 등을 만들고 청계산로도 확장한다는 교통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판교에서 경부고속도로와 신분당선을 통해 강남으로 이어지는 양재나들목(IC)은 지금도 정체가 심한 구간이다. '고밀개발'로 총 2만가구가 추가로 공급된다면 도로 확장에 한계가 있는 만큼 교통체증을 피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청계산입구역 인근 아파트와 인접한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주민들은 당장 오르지 않을 집값보다 교통문제에 더 민감하다"면서 "길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는데 대규모 가구가 들어서면 가뜩이나 막히는 도로에 병목이 더 심해지고 막히는 구간이 더 길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밀 개발 자체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청계산입구역 인근에 있는 1077가구 규모 서초포레스타2단지는 최고 21층, 바로 옆 1264가구 규모 서초더샵포레도 최고 20층 높이다. 고밀개발이 통상 30층 이상으로 인식되지만 청계산 조망권 때문에 일부 지역은 고밀개발이 쉽지 않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청계산 등산로 맞은 편에 있는 서초포레스타6, 7단지는 청계산 조망 때문에 층수를 7층으로 제한했다"면서 "내곡동 위쪽은 모르지만 청계산 쪽은 산아래 지을 경우 청계산 조망권 때문에 고밀 개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사실 지역 내에서도 이 일대 해제는 예상 못 했던 곳"이라며 "주위에 평평한 공원지대도 있는데 굳이 산 아래 좁은 지역에 울퉁불퉁한 지대가 해제돼 정부가 말한 목표 가구가 다 지어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비즈워치

서리풀지구 위치도/자료=국토교통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택공급으로 주변 아파트 시세에 긍정적일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다만 GB 해제지역 공급량 절반 이상이 공공분양 등 장기전세로 공급되는 만큼 집값이 크게 뛰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내곡동 새원마을 스마트시티 개발도 수년째 지지부진해 GB 개발이 잘 추진될지 여부도 불확실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근 아파트가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것도 택지지구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때 이야기"라며 "중요한 건 가격이 오를 거냐인데 이미 시장이 많이 올라 있고 실제 아파트가 공급될 때 집값이 오를지는 그때 시장 움직임에 따라 다를 수 있어 기대감이 크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2031년 입주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최소 10년은 걸린다고 본다"면서 "2035년은 돼야 입주가 가능하다는 건데 정권이 바뀌면 일관성 있게 추진될지도 미지수기 때문에 현재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세대들이 2035년까지 기다리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2만가구 중 55%를 임대로 제공하고 나머지 특별공급 등도 제하고 나면 실제 일반분양 공급물량은 아파트 한단지 정도인 2000가구 수준"이라며 "주택 공급 문제나 서울 집값 잡기는 한계가 있어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워치(www.bizwatch.co.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