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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선수 아내 생일에 꽃다발 선물 … 배려가 우승으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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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7일 서울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만난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이 '최강 기아'가 적혀 있는 머플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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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감독, 최연소 지도자, 첫 1980년대생 감독.

지난 2월 프로야구 KBO리그 KIA 타이거즈 감독에 부임한 이범호 감독(43) 앞에 붙은 수식어는 대부분 신선했다. 한편으로는 편견도 따랐다. '초보 사령탑이 우승할 수 있을까' '한창 젊은 감독이 리더십을 발휘할까'라는 의문부호도 붙었다.

그리고 9개월 후. 이범호 감독은 한 시즌 만에 보란 듯이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을 자신의 이름 앞에 붙였다. KBO리그 최다 우승팀 DNA를 일깨우면서 부임 첫 시즌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했다. 우승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인 7일 이범호 감독을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이 감독은 인터뷰 중에도 여러 팬들의 사인 요청과 사진 촬영에 일일이 화답했다. 이 감독은 "KIA 팬들 응원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다 해드리려 한다"며 활짝 웃었다. 2017년 현역 시절 KIA 주장으로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던 이 감독은 7년 뒤 감독이 돼서 또 한 번 정상에 올랐다. 이 감독은 "선수 때는 처음 맛본 우승이라 그냥 기뻤다. 반면 감독이 되고서 우승하니까 기쁘면서도 안도했다. 정규시즌에서 우승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못 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이 좀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선수들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그만큼 많은 생각과 느낌이 교차했다"고 우승 순간을 돌아봤다.

이 감독은 올 시즌 직전 김종국 전 감독의 사퇴로 KIA 전지훈련 도중 타격코치에서 감독직에 올랐다. 부담이 클 법도 했지만 이 감독은 기꺼이 짊어지고 팀을 이끌었다. 김도영, 김선빈, 최형우, 양현종, 정해영 등 신구 조화를 통해 투수와 타격 모두 1위 팀을 만들어 새로운 '타이거즈 DNA'를 구축했다.

이 감독의 우승 비결로 많은 전문가들은 '형님 리더십'을 꼽았다. KIA 코치 시절부터 스킨십에 능했던 그는 친형처럼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살갑게 대하면서도 때로는 엄한 모습으로 밀고 당겼다. 감독으로서는 첫 시즌이었지만 마치 수년간 팀을 지휘한 베테랑 감독처럼 빠르게 팀 컬러를 구축했다.

이 감독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무색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색(無色)'의 의미로 "리더 스스로 틀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 말 그대로 색깔이 없어야 한다. 선수 각자 갖고 있는 색깔대로 야구를 하면 내가 거기에 맞춰 들어가고자 했다. 색깔이 다양해야 그만큼 팀도 강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감독 부임 후 처음 선수들에게 강조한 말 역시 '너희들 마음대로 해'였다. 이 감독은 "감독으로서 선수들이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에게서 보이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에 있는 모습이 어떤지 보려고 했고, 잠재력을 발산시켜 주려고 했다. 강함과 부드러움을 공존시키면서 선수 스스로 각자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데 더 힘썼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감성적인 배려도 더했다. 시즌 중 결혼한 선수들의 아내 생일마다 꽃다발과 케이크를 보낸 일화는 한국시리즈 후 큰 화제를 모았다.

이 감독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조언을 듣고 해봤다. 선수 아내들이 남편 없이 지내는 시간이 시즌 중에 많다 보니까 사소하지만 축하와 감사의 의미를 담아서 선물을 전달했다"면서 "선수들이 시즌 중에 아내 생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 이런 선물을 통해 야구장에서 더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했다"고 설명했다. 팀 내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감독은 "선물을 받은 선수들 모두 '아내가 정말 좋아하더라'며 감사 인사를 전할 때 기뻤다"고 미소를 지었다.

현역 시절 스승으로 모셨던 김인식 전 한화 감독, 김기태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을 통해 이 감독은 리더십을 터득했다. 김인식 전 감독은 '믿음의 야구'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김기태 전 감독은 선수들과 격의 없는 소통으로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들의 리더십과 자신의 생각을 더해 빠르게 팀 컬러를 구축한 이 감독은 부임 첫해 편견을 깬 것이 무엇보다 통쾌했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선배 세대 때는 강압적인 게 많았고, 그런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선수 생활을 했다. 감독 부임 첫해에 강압적인 방식이 아닌 편하게 야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스트레스 없는 팀을 만들었다. 이 기조에 따라 우승까지 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이 감독을 딱 봤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으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야구를 하는 게 중요하다. 선수들이 성장해야 더 큰 팀이 될 수 있고,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밝혔다.

현역 시절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 캐릭터를 따 불렸던 '꽃범호'라는 별칭보다는 이제 '꽃동님(꽃+감독님)'이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해진 듯하다. 감독으로서 첫 한국시리즈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이 감독의 지도자 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는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3년 총액 26억원의 현역 최고 대우를 받고 KIA와 재계약했다. 우승 분위기에 도취될 만도 하지만 이 감독은 KIA 마무리 훈련캠프가 있는 일본 오키나와로 8일 떠난다. 벌써 다음 시즌 구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감독은 "아직 KIA가 새 왕조를 구축했다는 말을 하기는 조심스럽다"면서 "올 시즌 100점보다는 91~92점 정도를 줄 수 있겠다. 부상 선수도 좀 있었고, 무엇보다 수비 실책이 많았다. 그렇다고 크게 모자란 건 아니었다. 부족했던 건 다시 잘 준비해서 채워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또 한 번 냉철하게 되돌아봤다. "선수들은 지금처럼만 해주면 된다. 나만 변하지 않으면 된다"던 그는 "한 번 우승했다고 거만해지지 않겠다. 방심을 최소화하자는 게 내 방식이다. 당연히 KIA가 우승 후보이고, 어떤 팀을 만나도 껄끄러운 팀이 되도록 만드는 게 내년 목표"라고 다짐했다. 똑 부러지는 말에서 힘이 느껴졌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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