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방송된 KBS 2TV ‘드라마 스페셜 2024’의 첫 번째 단막극 ‘사관은 논한다’(연출 이가람, 극본 임의정)에서는 역사를 지키려는 사관 남여강(탕준상 분)이 역사를 지우려는 동궁(남다름 분)과 한 치 물러섬 없는 첨예한 신념 대립 끝에 죽음을 맞이했다.
동궁의 배동(세손의 교육과 사회성 함양을 위해 궐에 들였던 또래 아이)이었던 여강은 과거에 급제해 왕세손의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15년 만에 지켰다. 왕(조한철 분)을 대신해 대리청정을 맡은 왕세손은 자신을 견제하는 대신들과 날 선 신경전을 벌였고, 과거의 정쟁을 끝내고 새 조선을 열고 싶었던 그는 아버지와 관련한 ‘임오년’의 일기를 지우기로 결심했다.
‘드라마 스페셜 2024’가 첫 번째 단막극 ‘사관은 논한다’로 단막극 명가의 저력을 입증했다. |
왕세손은 사관들에게 과거 대리청정이 있었을 당시의 전례를 살피라고 명령하는 등 기강 잡기에 나섰다. 여강은 동궁이 지시한 대로 기사년부터 임오년까지의 일기 좌목을 살폈지만, 하지만 다른 검열(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하는 관직)들은 ‘임오년’과 관련된 일과 엮이면 자칫 가문이 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오년’ 일기에 대한 호기심에 사로잡힌 여강은 반짝이는 눈으로 사고(史庫)에 놓인 일기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왕세손이 나타나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왕세손에게 상소를 올린 신주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를 접한 여강은 깊은 충격에 빠졌다. 신주서의 죽음을 두고 모두가 쉬쉬하자, 여강은 임오년의 일기를 꺼내 읽기로 결심했다. 동궁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읽어 내려가던 여강은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동궁은 여강에게 부친인 사도세자와 관련된 일기들을 삭제하라 명했고, 사관의 신념을 지키려는 여강은 왕세손의 뜻에 반발하며 날 선 대치를 이어갔다. 특히 동궁은 자신의 아비의 일에 시비를 가리다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간 줄 아냐며 “나는 역사를 지우고자 함이 아니라, 과거에 붙잡힌 소모적인 정쟁을 끝내고 새 조선을 열고 싶을 뿐”이라고 기록을 지우려 한 연유를 밝혔다.
이에 맞선 여강은 “옳지 못한 방법으론 옳은 일을 할 수 없다”며 다른 방도를 찾을 것을 권유했지만, 동궁은 “정치는 생존이며, 생존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다”라며 외면했다. 한 치 물러섬 없는 의견 대립은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며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사관으로서의 사명감을 잊고 동궁의 뜻을 따르려는 검열들에게 분노한 여강은 역사를 지키려 했던 신주서의 죽음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그런가 하면 동궁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 대신들에게 승정원일기 속 기록 일부를 지우라고 명했다. 동궁의 상소를 모두 읽은 왕은 그의 뜻을 허락했고, 사관의 사명을 다하기로 결심한 여강은 사고로 가 임오년의 일기를 갖고 궐 밖으로 도망쳐 극강의 서스펜스를 선사했다.
여강의 만행을 알게 된 동궁은 그가 머물던 방에서 쪽지 한 장을 발견, 그는 세검정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강을 만났다. 여강은 자신의 이름을 애처롭게 부르며 다가오는 왕세손을 단호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사론을 읊어나갔다. 또한 그는 “신하로서는 몇 번이고 저하의 편에 섰으나, 저하의 벗으로서는 차마 그곳에 설 수 없었다. 오늘 일을 거름으로 다시는 아무것도 지우거나 없애지 마시고 모두를 아울러 꽃을 피우소서”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여강을 뒤로 무거운 발걸음을 뗀 동궁 역시 벗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의 눈물을 떨궜다.
방송 말미, 역사의 기록을 지운 뒤 왕위에 오른 동궁이 어탑에 올라 세상을 떠난 여강을 떠올리는 엔딩은 묵직한 울림과 먹먹한 여운을 안겼다.
‘드라마 스페셜 2024’의 성공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린 ‘사관은 논한다’는 신념을 걸고 치열하게 다투는 사관과 왕세손의 우정과 갈등을 밀도 있게 담아낸 연출과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극본이 완벽한 합을 이루며 강렬한 흡인력을 선사했다. 여기에 섬세한 감정 연기를 보여준 탕준상, 남다름과 빈틈없는 열연을 펼친 윤나무, 최희진, 조한철, 서진원이 극 완성도를 높이며 단막극 명가의 저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손진아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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