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2일까지 책무구조도 시범운영...18개사 참여
CEO도 금융사고 책임...내부통제 총괄 관리의무 부여
[한국금융신문 한아란 기자]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부여하는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 시범운영에 돌입했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는 내부통제 총괄 관리의무를 지고 임원은 본인 소관 업무의 내부통제·위험관리 기준 준수 여부를 지속 점검해야 한다. 최근 금융권 금융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은행권의 실질적인 내부통제 강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C-레벨 이상 임원, 소관 업무 내부통제 상시 점검해야
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진행한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참여 접수 결과 총 18개사가 책무구조도를 제출했다. 참여 금융사는 신한·하나·KB·우리·NH·DGB·BNK·JB·메리츠 등 9개 금융지주와 신한·하나·KB국민·우리·농협·iM·부산·전북·IBK 등 9개 은행이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 개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내부통제 대상 업무의 범위와 내용을 금융사 스스로 각자의 특성을 고려해 사전에 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금융회사의 주요 업무에 대한 최종 책임자를 특정해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로 위임할 수 없도록 하는 원칙을 만들기 위한 조치다.
금융사 대표이사는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별로 내부통제 책무을 배분한 책무구조도를 작성해야 한다. 책무구조도상 책무는 금융사의 업무와 관련한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책임을 의미한다.
금융사 업무는 ▲준법감시, 위험관리 등 법령에 따라 특정 책임자를 지정해 금융사 전 부서에 걸쳐 전사적·총괄적으로 수행하는 업무 ▲여신·투자매매 등 금융사가 인허가 등을 받아 수행하는 고유·겸영·부수업무 등 영업과 관련한 부분별 업무 ▲건전성 관리 등 금융사가 인허가 등을 받은 금융업 영위를 위해 수행하는 경영관리 관련 업무로 구분된다.
책무구조도에 기재된 임원은 자신의 소관 업무에 대해 내부통제가 적절히 이뤄질 수 있도록 내부통제기준의 적정성, 임직원의 기준 준수 여부 및 기준의 작동 여부 등을 상시 점검하는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임원의 범위는 이사・감사・업무집행책임자등 지배구조법상 임원이다. 최고경영자(CEO), 최고리스크담당자(CRO), 최고고객책임자(CCO) 등 직책으로, 대형 은행 기준 통상 20∼30명 수준이다.
대표이사 등은 내부통제 총괄 관리의무의 일환으로 내부통제 등과 관련해 임원 소관 업무 간 또는 임직원과 소속 금융사 간의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경우 등 법령 또는 내부통제 기준 등 위반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해 점검해야 한다. 임직원의 내부통제 기준 등 위반이 장기화,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사 위반 사례 발생 가능성 등도 점검해야 한다.
지난 7월 시행된 개정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지주와 은행은 내년 1월 2일까지, 금융투자업자(증권사)와 보험사는 자산 규모 등에 따라 늦어도 2026년 7월 2일까지 금융당국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을 위해 이달 1일부터 금융지주·은행의 책무구조도 법정 제출 기한인 내년 1월 2일까지 시범운영 기간을 운영한다.
책무구조도를 조기 제출한 금융사에 대해서는 이 기간 내부통제 관리의무 등이 완벽하게 수행되지 않은 경우에도 지배구조법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는 등 조기 도입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책무구조도 관련 지배구조법 위반행위에 대한 비조치, 시범운영을 통한 위법행위 자체 적발‧시정 시 제재 감경‧면제 등을 적용한다.
시범운영에 참여한 금융사는 임원별 내부통제 관리 조치의 효율적인 이행을 위해 전산시스템 또는 자체 체크리스트 등을 활용해 시범운영 기간 중 책무구조도 기반의 내부통제 관리 체계를 운영한다.
현업 부서 점검, 담당 임원 보고 및 피드백, 1차 점검 결과의 적정성 등에 대한 준법감시부서 점검 등 내부통제 관리 조치 수행 과정을 전산화한다. 자체 체크리스트의 경우 내년 1월 중 전산시스템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은 시범운영 참여사에 대한 컨설팅 제공을 위해 감독·검사업무 유관부서 14개가 참여하는 실무작업반을 구성했다. 실무작업반은 제출된 책무구조도를 기초로 법령상 정정·보완 사유, 책무 배분의 적정성 등에 대한 점검 및 자문 등을 수행하고 연내 각 금융사에 피드백을 제공할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년 7월 책무구조도 제출 대상인 금융투자업 및 보험업 등의 준비 상황을 살펴보면서 시범운영 실시 확대도 검토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금융권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새로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7년간 금융사고 6600억원…CEO에 내부통제 책임 물을 법적 근거 생겨
자료=강민국 의원실, 금감원 |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금융사 경영진의 내부통제 책임이 강화됨에 따라 금융권에서 반복되고 있는 금융사고도 줄어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국내 금융업권 금융사고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금융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463건으로 집계됐다. 사고 금액은 6616억7300만원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18년 936억원(89건) ▲2019년 424억3900만원(60건) ▲2020년 281억5300만원(74건) ▲2021년 728억3200만원(60건) ▲2022년 1488억1500만원(60건) ▲2023년 1422억1600만원(62건) ▲올해 8월까지 1336억5200만원(58건) 등이다. 최근 3년간 줄곧 10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4097억500만원(264건)으로 가장 규모가 컸고 이어 증권 1113억3300만원(47건), 저축은행 647억6300만원(47건), 손해보험 458억1500만원(49건), 카드 229억6500만원(16건), 생명보험 70억9200만원(40건) 순이었다.
금융사고가 지속되는 원인으로는 대표적으로 금융권의 내부통제 부실이 꼽힌다. CEO 등 임직원에게 내부통제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도 금융사 내부통제 실효성이 떨어지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지배구조법에서 금융사에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부여함에 따라 대부분 금융사는 내규 등에서 대표이사 등을 내부통제 책임자로 규정해왔다. 하지만 개정 전 법령은 내부통제 기준 마련의 형식적 의무만 부과하고,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규율하고 있지 않아 실효성 있는 통제기능의 작동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이 없고 책임 영역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일례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해외금리 연계 DLF 사태 당시 내부통제 부실 등을 이유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문책 경고 등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해 2022년 12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현행 법령상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은 구별돼야 한다”고 밝혔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도 비슷한 사안으로 중징계 취소소송을 제기해 지난 7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금융위는 지난해 6월 금융회사가 임원별 내부통제 책무를 사전에 명확히 구분하고, 각 임원이 금융사고 방지 등 내부통제 의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같은해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에는 해당 방안이 대부분 반영됐다.
특히 대표이사에는 내부통제 총괄 책임자로서 전사적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하고 각 임원의 통제 활동을 감독하는 총괄 관리의무를 부여했다. 기존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에 더해 관리의무가 추가된 것이다. 회사 내에서 조직적, 장기간・반복적 또는 광범위한 문제가 발생하는 내부통제 시스템적 실패(systemic failure)에 대해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해당 임원의 책무가 명확해짐에 따라 기존 소극적 결격 요건 외에 책무 수행의 적극적 요건도 신설됐다. 금융사는 임원을 신규 선임할 때뿐 아니라 기존 임원의 책무구조도상 직책 변경 시에도 해당 책무 수행을 위한 전문성, 정직성, 신뢰성 등을 갖추고 있는지 자격 충족 여부를 확인할 의무가 생겼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책무구조도 안착을 강조하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8월 은행장 간담회에서 "은행장 간담회에서 “은행은 항상 신뢰의 정점에 있어야 함에도 최근 은행의 신뢰 이슈가 불거지고 있는 만큼 환골탈태한다는 심정으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해달라”며 “내년 1월 시행되는 책무구조도를 하나의 전환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6월 “책무구조도를 일종의 면피용 제도로 운영할 생각은 없다”며 “향후 금융사고가 또 발생한다면 명확하게 규정된 사항에 맞춰 경영진과 CEO의 책임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책무구조도 관리 시스템·내부통제 매뉴얼 마련
시중은행들은 책무구조도 제출과 함께 전담 관리 시스템과 내부통제 매뉴얼도 운영한다.
신한은행은 책무구조도 외에 본점 및 영업점 부서장들의 효과적인 내부통제 및 관리를 위해 ‘내부통제 매뉴얼’을 별도로 마련했다. 부서장에서 은행장까지 이어지는 내부통제 점검 및 보고를 위한 ‘책무구조도 점검 시스템’도 도입해 임직원들의 점검 활동과 개선 조치들이 시스템상에서 관리될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은행은 책무구조도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책무구조도 관리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역량이 향상될 수 있도록 임직원 교육, 전산시스템 고도화, 매뉴얼 신설, 내부통제 문화 확산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KB금융은 '책무관리시스템'을 구축해 '내부통제 업무매뉴얼'에 따른 점검 활동과 개선 조치 사항을 상시 등록·관리하도록 한다. 각 부점장들의 효과적인 내부통제 관리 활동을 돕기 위한 '부점장 내부통제 업무매뉴얼'도 함께 운영할 예정이다.
한아란 한국금융신문 기자 aran@fntimes.com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FNTIMES -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