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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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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배우 황정민이 영화의 시작이자 끝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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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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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황정민은 영화 현장에서 '황사마'로 불린다. 사마(さま)는 사람에 대한 강한 존경을 나타내는 일본말로 '~ 님'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장의 왕'인 감독에게도 쉬이 붙지 않은 존칭이 황정민에게 붙는 이유는 뭘까.

김성수, 류승완, 나홍진, 윤종빈 등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들에게는 '황정민'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이 감독들은 어떤 배우라도 캐스팅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신작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황정민을 떠올린다. 네 감독 모두 두 작품 연속 황정민을 선택했다.

나홍진은 황정민과 '곡성'(2016)에서 처음 만나 작업한 뒤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했다. 나 감독은 현장 장악력과 카리스마가 대단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나홍진조차 황정민에게 '많이 배웠다'는 겸양을 발휘했다. 이들은 두 번째 협업인 '호프' 촬영을 최근 마쳤다.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2023)으로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는 대성공을 거둔 뒤 "황정민이 없었으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다"고 공을 돌렸다. 전두광은 이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캐릭터로만 놓고 보자면 매력적인 안타고니스트지만 정치적 평가가 끝난 실존 인물인 만큼 쉬운 선택이 절대 아니었다. 황정민은 "악의 끝판왕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김성수 감독을 안심시켰고, 불같은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영화에서 발산했다.

황정민과 무려 네 편의 영화를 함께 한 류승완 감독과 두 편을 연달아 한 윤종빈 감독도 현장에서 스태프와 배우를 챙기는 그의 남다른 리더십과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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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에서 주인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몇 퍼센트일까. 영화란 결국 감독의 예술이기에 배우보단 감독의 능력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훌륭한 배우는 영화 현장에서 유무형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황정민에 대한 감독들의 한결같은 사랑에서 이 배우의 특별함을 예측할 수 있다.

감독들의 '최애'로 자리매김한 황정민에게 '감독에게 어떤 배우가 되려고 하는가'를 물었다. 그 답에서 황정민이 감독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어떤 역할을 맡든 이 역할은 황정민 말고 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는 연기를 하고 싶다. 이 역할은 다른 사람이 안 떠오르게끔 하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다. 미친 듯이 잘하던가, 아니면 안 하던가 둘 중 하나다. 감독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한다."

'베테랑2'를 황정민 필모그래피 사상 첫 속편이다.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를 또 한 번 연기한다는 건, 남다른 애정과 특별한 에너지가 요구한다. 이 도전은 황정민의 오랜 영화 동지인 류승완 감독에 대한 두터운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다. 두 사람은 2010년 '부당거래'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베테랑', '군함도', '베테랑2'에 이르기까지 무려 네 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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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2'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큰 애정을 가진 영화였고, 서도철을 늘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2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감독님과도 계속 이야기를 해왔다. 속편 제작이 이렇게 오래 걸릴지는 몰랐다."

무려 9년 만에 서도철로 귀환한 것에 대해 황정민은 "내가 만들어놓은 인물이라 누가 대신할 수 없고 나만이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 인물을 언젠가는 꺼내야 했다. 오히려 편안하고 쉽게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연기에 대한) 고민보다는 자신감이 더 컸다. 고민이라면 액션이 좀 과하고, 겨울 촬영이라 추위를 어떻게 견디냐였다. 그 외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영화 '베테랑'과 캐릭터 '서도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건 이 작품을 촬영했던 시기가 '배우 황정민'에겐 고뇌의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세계'(2013)를 찍던 와중이었다. 제 나름대로 힘든 시기였고,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안 하고 쉬자니 그것도 힘들고, 고민이 많던 시기였는데 감독님과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어렵게 할 이유가 뭐가 있나. 정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뭔가를 해보자"라고 해서 만든 것이 '베테랑'이다. 힐링이 된 작품이었다. 개봉과 동시에 너무 잘 되어서 큰 복덩이로 다가왔다. 그래서 제겐 큰 의미다."

당시 황정민이 가졌던 '고뇌'의 근원도 궁금했다. 그는 "완전 개인적인 것이라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일하다 보면 누구나 자괴감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나는 누구? 여긴 어디?'부터 시작해서 여러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그중 하나는 나름에는 재미있는 대본을 선택하고,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를 보여 드린다고 했지만 (결과에 따라)'이게 재미가 없는 거였나? 왜 관객들은 재미없어하지?'라는 부담감이 쌓였던 시기였던 것 같다"고 고민의 내용을 우회적으로나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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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2'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서도철의 성장 서사를 보여준다. 열혈 형사로서 앞뒤 안 가리고 안하무인 재벌을 때려잡던 서도철은 9년이 흘러 형사의 사명감에 가장의 무게, 아버지의 책임감까지 짊어진 인물로 돌아왔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이나 사상, 정의는 똑같다고 생각한다. 다른 점이 있자면 서도철은 그대로인데 아들이 컸다는 것이다. 9년 전엔 초등학교 3학년 아버지였는데 이제는 고등학생의 아버지가 됐다. 이건 되게 큰 설정이다. 실제로 1편을 찍을 때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2편 찍을 땐 고2가 됐다. '베테랑' 속 아이와 내 아들의 나이가 똑같다. 남편으로, 아버지로 사는 삶은 저와 잘 맞는 부분이 있다. 서도철은 직업이 형사고 저는 직업이 배우일 뿐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것은 같다. 그런 점에서 서도철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수월했다."

황정민은 서도철을 우리네 삶에 발붙인 캐릭터로 연기해 냈다. 이는 황정민이 가진 서민적 매력도 있지만, 생활 연기의 능수능란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직업인으로서 완벽한 사람이 가정에서까지 완벽하리라는 법은 없다. 게다가 아버지, 남편의 롤은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베테랑이 되는 것도 아니다. 황정민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서도철의 고군분투와 시행착오를 현실적으로 다뤄내고자 했다.

류승완 감독과 황정민은 후반부 서도철의 반성과 각성을 통해 '사과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황정민은 "후반부 박선우를 심폐 소생시키는 서도철의 모습과 서도철이 아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특히 아들과 나누는 대화 장면에서 '나는 다 성장했으니 어른이야'가 아니라 우리는 때때로 형편없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하나둘 배우면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모든 사회가 복잡하지 않고, 정도(正道)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황정민의 연기는 예나 지금이나 최고다. 특히 그의 행보가 '서울의 봄' 전두광에서 '베테랑2'의 서도철로 이어지며 전 작품의 가면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피도 눈물도 없는 욕망의 화신에서 사회정의를 외치는 소시민 형사로 완전무결하게 돌아온 것이다.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황정민의 연기는 교본으로 삼을 만하다. 연기 학도를 대신해 일차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황정민처럼 연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연기는 타고 나는 건 절대 아니다. 당연히 공부가 필요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꾸자꾸 훈련을 시켜줘야 하고, 많이 읽고 보고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기술이기 때문에 연마도 분명히 필요하고, 그만큼 시간도 걸린다. 관객들이 보기에 배우가 연기를 단기간에 잘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처럼 보이는 거다. 나의 경우도 30대 초반에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찍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열심히 작품을 하면서 연기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해 왔다. 그것들이 잘 쌓여서 지금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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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하나 더, 그가 연기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를 재생시키는 비결이 있다면 연기의 본류(本流)인 연극과 주기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황정민은 2018년 연극 '리처드 3세'로 '웃음의 대학' 이후 약 10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갔다. 2000년대 이후 '극단 출신=연기파 배우'는 영화계 하나의 흐름이 됐지만 영화 매체에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배우가 연극 무대로 귀환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영화 '공작'을 마친 황정민은 '리처드 3세'의 원캐스트로 약 한 달간 공연했고, 이는 영화계와 연극계에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그는 2019년 '오이디푸스', 2022년 '리처드 3세', 2024년 '맥베스'에 이르기까지 2~3년에 한 번꼴로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특히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나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을 올리며 아내이자 공연 전문가인 김혜미 샘컴퍼니 대표와 함께 '고전의 부활'에 이바지하고 있다.

황정민의 연극 진출은 후배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박해수, 박성웅, 전도연 등의 배우들도 잇따라 연극 무대에 오르며 연기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영화와 연극을 오가는 그의 행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황정민은 매 작품, 쉽지 않은 길을 간다. 그러면서도 지치지 않는다. 이 캐릭터에서 저 캐릭터로 완전하게 이동하는 비결은 뭘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지긋지긋하도록 연기하고 작품이 끝나면 바로 정을 떼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잘 빠져나온다. 지긋지긋하니까. 촬영이 끝났다고 하면 그냥 바로 '누구세요?' 하면서 빠져나온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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