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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군단’의 토종에이스가 마련해놓은 승리의 발판을 포스트시즌 히든카드가 마무리했다. 이들의 합작은 함께 보드게임을 하면서 그려본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주연 원태인, 조연이자 씬스틸러 김윤수가 함께 연출한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삼성은 15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KBO리그 플레이오프(PO·5전3승제) 2차전에서 LG를 10-5로 이겼다. 지난 13일 1차전 10-4 승리에 이어 2경기 연속 10점을 뽑는 가공할 만한 화력으로 2연승을 챙긴 삼성은 2015년 이후 9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단 1승만을 남겨뒀다. 역대 5전3승제로 치러진 플레이오프에서 먼저 2승을 거둔 팀이 나온 사례는 18번. 그 중 15번은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확률은 83.3%로 삼성은 한국시리즈 진출을 위한 ‘8부 능선’은 넘어선 셈이다.
이날 원태인은 생애 첫 포스트시즌 선발 등판에 나섰다. 3년 전 첫 경험한 포스트시즌에선 선발이 아닌 불펜 등판으로 한 차례 나섰다. 2021년 두산과의 PO 2차전에서 1.1이닝 2실점으로 물러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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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3년 동안 원태인은 리그를 대표하는 토종에이스로 우뚝 섰다. 올 시즌에는 15승6패를 거두며 곽빈(두산)과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오르며 첫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평균자책점은 3.66으로 리그 전체 6위, 토종 투수만 따지면 1위였다. 올 시즌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인 토종 선발 투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삼성팬뿐만 아니라 10개 구단팬들이 입을 모아 원태인을 지목하는 정도의 임팩트다.
올 시즌 한정 NO.1 토종 에이스답게 원태인은 이날 6.2동안 104구를 던지며 역투를 펼쳤다. 피안타 7개, 볼넷 2개를 내주는 등 잦은 출루를 허용했지만, 빼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실점을 단 1점으로 최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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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불안했다. 1회 1사 후 신민재, 오스틴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1,3루 위기에 몰렸다. 김현수를 2루 땅볼로 유도했지만, 병살타로는 연결짓기는 다소 느린 타구라 신민재가 홈을 밟으며 선취점을 내줬다.
2회도 흔들렸다. 안타와 볼넷을 내주며 1사 2,3루에 몰렸다. 외야 플라이만 허용해도 한 점을 줄 수 있어 반드시 삼진이 필요한 상황. 이날 총 잡아낸 탈삼진이 단 3개에 불과했던 원태인이지만, 꼭 필요한 순간 삼진을 솎아냈다. 문성주 대신 9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2년차 우타 거포 김범석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 이후 홍창기를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실점없이 이닝을 마쳤다. 원태인이 꼽은 이날 경기의 전환점이 된 장면이었다. 그는 “오랜만의 실전이라 힘은 넘쳐나는데 정교함이 떨어졌다”라면서 “2회에 김범석 선수를 삼진으로 잡으면서 뭔가 엉켜있던 게 풀린 느낌이었다. 이후 정규시즌 때 잘 했던 피칭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3회부터 6회까지 1피안타 1볼넷만을 내주며 순항하던 원태인은 6-1로 앞선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불펜진이 불안요소인 삼성이기에 원태인이 최대한 이닝을 끌어주는 게 승리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선두타자 박동원에게 안타를 맞은 뒤 박해민을 삼진, 이영빈을 유격수 직선타로 처리한 원태인은 홍창기에게 중전 안타를 맞고 1,2루 위기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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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 감독이 마운드에 올랐다. 이미 투구수는 딱 100개를 채운 상황. 교체가 예상됐지만, 박진만 감독은 원태인에게서 공을 건네받지 않고 그대로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이 위기를 끄겠다는 원태인의 의지를 존중한 것이다. 시즌 내내 삼성 마운드를 이끌어온 에이스에 대한 사령탑의 믿음이었다.
그러나 원태인은 신민재에게 우전 안타를 맞고 2사 만루에 몰렸다. 결국 위기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LG 타자는 오스틴. 지난 1차전 7-4로 앞선 7회 2사 1,2루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라 오스틴을 3구 삼진으로 잡아냈던 삼성 불펜 내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김윤수가 이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만루포를 맞을 경우 6-5, 1점차까지 쫓길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김윤수는 1차전과 똑같은 볼배합으로 다시 한 번 오스틴을 이겨냈다. 초구를 151km 직구를 꽂아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김윤수는 2구는 127km짜리 커브를 던졌다. 1차전에선 2구 커브가 스트라이크존 상단에 걸쳐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지만, 이번엔 볼이었다. 김윤수는 다시 한 번 시속 152km의 직구를 던졌고, 오스틴은 이를 맞춰냈으나 힘없는 유격수 땅볼이었다. 김윤수가 또 한 번 ‘씬 스틸러’ 역할을 제대로 해낸 것이다. 자신이 초래한 위기를 김윤수가 막아내며 더그아웃에 돌아오자 원태인은 펄쩍 뛰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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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 대해 묻자 원태인은 “(황)동재와 (김)윤수 형은 합숙 기간 동안 함께 보드게임을 함께 하는 멤버”라면서 “어제도 함께 보드게임을 하면서 이런 위기 상황이 오면 (김)윤수형에게 꼭 막아달라고 얘기했다. 만루까지 몰리고 오스틴 타석이 되면서 ‘윤수형이 올라오겠구나’ 싶었는데, 마운드로 뛰어오고 있더라. 어제 우리끼리 얘기한 상황이 진짜 만들어진 것이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윤수형이 상대 흐름을 끊고 승기를 굳혀줘서 너무 고마웠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원태인의 맹활약에는 또 하나의 비결이 있었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로 꼽히는 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유니폼이었다. 원태인은 “전반기 막판에 너무 좋지 않았다.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오타니의 유니폼을 해외 배송으로 시켰다. 세계 최고의 선수의 기운을 받아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라면서 “후반기 첫 경기였던 7월13일 두산전에서 0.2이닝만 던지고 헤드샷으로 퇴장당한 경기 이후에 오타니의 유니폼이 배송되어 왔다. 그래서 등판 날마다 그 옷을 입고 출근했는데, 이후 8승1패를 했다. 다승왕은 오타니 유니폼을 입은 덕분이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도 좋은 기운을 받고 싶어 선발로 예정됐던 어제와 오늘 모두 오타니 유니폼을 입고 출근했다”라고 웃었다. 이어 “유니폼만이 아니다. 스파이크도 오타니와 같은 것을 신는다. 미신 아닌 미신인데,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라면서 “홈에서만 오타니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고 있다. 3,4차전이 열리는 잠실 원정이 끝나면 집에 가서 다시 빨래해서 깨끗하게 해야겠다”라고 덧붙였다.
대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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