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작가 신작…"그 시절 존재들이 모두 정당히 기억되기를"
30대 여성 영두는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된다. 한적한 섬마을 석모도 출신인 영두는 중학생 때 창덕궁 담장 옆 동네인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서 잠시 유학을 한 적이 있다. 영두는 창경궁이라는 말을 듣자 마음이 서늘해진 것을 느끼며 일을 맡기를 주저하게 되고, 당시 하숙을 했던 낙원하숙 주인 할머니 문자와 그의 손녀 리사와 함께 생활했던 일을 회고한다.
주인공 영두가 써 내려가는 창경궁 대온실 수리 백서는 단순한 문화재 수리 보고서가 아니다. 우리의 아픈 근대사와 상처받은 생의 한순간을 복원하고 재건하는 치유의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창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대온실을 보수하는 공사 도중 모두를 놀라게 하는 비밀이 땅 밑에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반전을 맞고, 영두는 하숙집 주인 할머니 '문자'의 사연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하고 더욱더 그 일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소설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평생 비밀을 간직해온 하숙집 주인 할머니 문자, 그 비밀을 파헤치면서 자신의 상처와도 직면하게 되는 영두 두 인물 외에도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혼자 남게 된 영두와 공인중개사로 일하며 혼자 아이를 키우는 친구 은혜, 일찍 철이 든 은혜의 딸 산아 세 사람이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일상의 고민을 나누는 대목들은 또 다른 대안 가족의 모습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하는 개성 넘치는 직업인들의 작업을 세세히 묘사하는 대목, 작가가 실제 창경궁 대온실 공사의 총책임자였던 후쿠다 하야토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창조한 캐릭터 후쿠다 노보루의 이야기 등 중심 서사를 풍성하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흥미로운 독서 체험을 선사한다.
창경궁 대온실 |
일제의 잔재로 낙인찍혀 환영받지 못하다가 숱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창경궁 대온실은 격동의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숭고한 생의 의지를 표상하는 것 같다.
작가는 이런 창경궁 대온실을 '생존자'에 비유했다.
"한때는 근대의 가장 화려한 건축물로,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대중적 야앵(夜櫻·밤 벚꽃놀이)의 배경지로, 역사 청산의 대상으로 여러 번 의의를 달리한 끝에 잔존한 창경궁 대온실은 어쩌면 '생존자'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건축물과 함께 그 시절 존재들이 모두 정당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에게도 이해되기를."('작가의 말'에서)
아픔의 역사와 맞물린 내밀한 사연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솜씨 좋게 엮은 이 소설 한 권을 들고 가을의 고즈넉한 고궁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창비. 420쪽.
yongla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