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던 현지 총책 샤리프 사망 밝혀
베이루트·후티 반군 저항의 축 연쇄폭격
이스라엘, 수개월 간 레바논 침투 작전
네타냐후 ‘3면전’ 수행 자신감 … 이란 하메네이는 ‘진퇴양난’
이스라엘 ‘저항의 축’ 연쇄 공습
네타냐후, 라이벌 정당 손잡고
연정 확대해 안정적 과반 확보
“비비 왕이 돌아왔다” 언급 나와
이란 지도부선 보복 놓고 격론
레바논 파병 가능성엔 선 그어
CNN “이란, 이스라엘 공격 계획”
헤즈볼라도 군사작전 지속 의지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난민촌을 공습해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의 고위 간부를 또다시 암살하고, 이스라엘에서 1700㎞ 떨어진 예멘 반군 후티의 근거지도 폭격했다. 이스라엘군이 끊임없이 전선을 확대하며 중동 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본격적 채비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29일(현지시각)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현장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나스랄라는 지난 28일 베이루트 남쪽 다히야의 민간인 거주지 건물 지하에 설치된 조직 벙커에서 회의 중 이스라엘의 표적 공격으로 폭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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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새벽 베이루트 서남부의 주택가 알콜라에 있는 주거용 건물 한 채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받았다. 폭격으로 헤즈볼라와 연계된 수니파 무장단체 자마 이슬라미야 조직원 1명이 숨졌고 적어도 16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계열 강경파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의 지도부 3명도 이번 공습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레바논에 있는 난민촌에도 공습이 이어졌다. 하마스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하마스의 레바논 총책 파타 샤리프 아부 알아민이 레바논 남부 알바스 난민촌의 집에 있다가 공습당해 일가족과 함께 순교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도 성명에서 “샤리프를 제거했다”고 확인했다. 이스라엘군은 샤리프가 레바논의 하마스 조직을 이끌며 대원 모집, 무기 확보, 헤즈볼라와 작전 조정 등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29일에는 예멘 반군 후티의 근거지도 폭격했다. 예멘 반군이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으로 즉각적 보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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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까지 ‘3개의 전선’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하는 중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27일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한 뒤 “지역 내 힘의 균형을 수년간 바꿀 수 있다”면서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설욕전에 나서 지난 7월 헤즈볼라 고위 지휘관과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야를 암살했고, 27일에는 헤즈볼라 수장 나스랄라를 암살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적으로도 연정을 확대하며 입지를 다지는 상황이다. AP통신 등은 네타냐후 총리의 오랜 라이벌 기드온 사르가 이끄는 우파 정당 ‘새로운 희망’이 네타냐후 총리 연립정부에 합류한다고 보도했다. 의회 의석 4석을 가진 새로운 희망이 연정에 합류하면서 네타냐후 총리 내각이 확보한 의석은 전체 120석 중 68석으로 늘어 과반을 공고히했다. 이번 연정 확대로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 내 극우 파트너의 영향력에서도 한층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나흐만 샤이 전 디아스포라(재외동포) 장관은 “비비(네타냐후 총리의 별칭) 왕이 돌아왔다. 비비를 10개월 전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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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총리의 독주 배경으로는 이란이 중동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 등에 따르면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레바논 파병 가능성과 관련해 “어떤 요청도 없었다”며 “추가 병력이나 의용군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칸아니 대변인은 “저항세력은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파병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것으로 전쟁 개입 여부를 둘러싼 이란 내부의 진통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이란 지도부 내에서 대이스라엘 보복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촉발됐다고 전했다. 강경파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전선을 이란으로까지 옮겨오기 전에 얼른 이스라엘을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저항의 축 구성원들의 굴욕을 이란이 그대로 방치할 경우 네트워크 운용 동력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렸다. CNN방송은 이날 미 당국자를 인용, 이란이 나스랄라 암살 뒤 이스라엘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하고, 미 군사 태세의 변경과 함께 공격을 막기 위한 공동 방위가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반면 온건파들은 전쟁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반체제시위의 불씨가 여전한 상황인 데다 서방 제재로 고립된 경제가 전쟁으로 치명상을 입으면 체제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란 최종지도자이자 최종결정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지난 29일 성명을 통해 “저항군의 운전대를 잡고 이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헤즈볼라일 것”이라고 밝혔는데,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새넘 배킬 중동국장은 NYT에 “하메네이의 성명에서 이 순간의 심각성과 조심성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참혹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예멘 후티 반군 시설에 대한 폭격으로 서부 항구도시 호데이다에 불길과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 모습. 호데이다=신화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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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작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헤즈볼라 2인자 나임 가셈은 이날 연설에서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적과 계속 마주하겠다”면서 “우리는 전투 지속 계획에서 최소한의 부분만 이행하고 있을 뿐이며 전투는 길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2006년 이스라엘과 대항했을 때처럼 승리할 것이며,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18년 전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에 납치된 군인 2명을 구출하려 국경 ‘블루라인’을 넘어 레바논에 지상군을 투입했다가 병력 121명을 잃고 34일 만에 교전을 마무리한 일을 가리킨다.
나스랄라 암살로 공석이 된 헤즈볼라의 수장 자리에는 나스랄라의 사촌이자 헤즈볼라 집행이사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는 하심 사피에딘이 임명됐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CNN은 나스랄라 살해가 이스라엘에 단기적으로 중요한 보상이지만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40년간 유지되어온 헤즈볼라는 조직을 재건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임명한 뒤 다시 이스라엘에 저항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사례를 되짚어보면 지도자 암살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저항의 축 무장세력을 무너뜨리거나 약화하지는 못했으며, 이번에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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