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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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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클래식 음악계 정상급으로 성장한 ‘진은숙 키즈’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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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키즈’ ‘김연아 키즈’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 음악계에는 ‘진은숙 키즈’가 있다. 작곡가 진은숙(63)을 사사한 김택수(44) 신동훈(41) 등 40대 한국 작곡가들이 독일 베를린 필과 미국 뉴욕 카네기홀 등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잇따라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모두 10여 년 전 서울시향 현대음악 프로그램인 ‘아르스 노바’를 통해서 당시 상주 작곡가였던 진은숙을 사사한 인연이 있다.

베를린 필에서 신작 발표하는 신동훈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신동훈씨는 내년 베를린 필(지휘 투간 소키예프)을 위한 신작 비올라 협주곡을 최근 완성했다. 그의 협주곡은 내년 1월 베를린 필의 비올라 수석인 아미하이 그로스의 협연으로 세계 초연된다. 한국 작곡가가 베를린 필을 통해서 작품을 발표하는 것도 윤이상·진은숙 등 보기 드문 경우다. 그는 26일 전화 인터뷰에서 “‘작곡가가 곡을 쓰는 일은 카드 빚을 갚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진은숙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일단 곡을 위촉받으면 신이 나지만, 제때 완성하지 못하거나 품질이 떨어지면 세계 음악계에서 ‘신용 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이 작곡가의 숙명”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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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2019년 영국 비평가협회의 ‘젊은 작곡가상’과 2021년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상’ 수상 등으로 유럽 무대에서 주목받았다. 그 인연으로 베를린 필이 젊은 단원 육성을 위해 창설한 ‘카라얀 아카데미’의 연주로 2022년 첼로 협주곡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베를린 필을 위한 협주곡으로 ‘체급 향상’을 한 셈이다.

보르헤스와 카프카의 소설은 물론, 만화책까지 탐독하는 다독가(多讀家)다. 이번 협주곡도 ‘여전히 부를 노래들은 있어라, 인간의 피안에’라는 20세기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1920~1970)의 시구(詩句)에서 착안했다. 요즘에는 ‘20세기 소년’으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에 바탕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플루토’에 빠져 있다. 그는 “소설이나 만화의 짜임새는 음악 작품의 구성에도 도움이 된다. 바흐의 곡이든 일본 만화든 다른 작품에서 영향을 받더라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올해만 카네기홀을 세 번 찾은 김택수

작곡가 김택수씨는 올해만 뉴욕 카네기홀을 세 차례나 찾아갔다. 지난 3월 뉴욕 청소년 심포니가 그의 관현악 ‘더부산조’를 연주했고, 현대음악 전문 단체인 ‘알람 윌 사운드(Alarm Will Sound)’도 신작 ‘릴라’를 뉴욕 초연했다. 곧이어 5월에는 창단 30주년을 맞은 세종 솔로이스츠가 그의 곡 ‘위드/아웃(With/Out)’을 연주했다. 미 서부 샌디에이고 주립대 교수인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올해 작품 연주 기회가 늘어서 미 동서부를 부지런히 횡단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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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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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 영국 명문 악단인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지휘 김은선)에서도 그의 작품 ‘스핀 플립’을 연주했다. 영미권에서 주목받는 작곡가로 급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더부산조’와 ‘스핀 플립’ 등 국립 심포니를 통해서 이미 한국에서 연주한 작품들이 해외로 ‘역수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그는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화학과에서 화학을 전공한 ‘과학 영재’ 출신. 한국적 색채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녹이는 점도 특징이다. ‘릴라’는 한국 전통 굿에서 착안해서 꽹과리·바라 같은 한국 전통 악기들을 서양식 관현악에 가미했다. 오는 11월에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지휘 최수열)의 연주로 플루트와 국악 타악기를 위한 국악 관현악 협주곡 두 곡을 초연할 예정이다. 그는 “‘작곡이란 인생 전부를 거는 것’이라는 진 선생님의 말이 언제나 가슴속에 남아 있다. 내 삶의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적 정체성에 눈감는 것도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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