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안전보건관리자 자리 4개월 공석 방치
기본지식 없는 직원 형식적 관리자로 임명키도
불법파견 드러날까봐 과거 ‘손가락 절단’ 산재 은폐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가 24일 수원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태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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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23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와 그의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이 구속기소 됐다. 박 대표에게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 기업 대표에게 이 법이 적용돼 구속기소 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수원지검 전담수사팀(안병수 2차장검사)은 24일 박 대표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산업재해치사), 파견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또 박 총괄본부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 파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이밖에 아리셀 임직원 등 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아리셀 등 4개 법인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각 불구속기소 했다.
박 대표는 지난 6월 24일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노동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화재 사고와 관련해 유해·위험요인 점검을 이행하지 않고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을 구비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박 총괄본부장 등은 전지 보관 및 관리(발열감지 모니터링 미흡)와 화재 발생 대비 안전관리(안전교육·소방훈련 미실시) 상 주의의무를 위반해 대형 인명 사고를 일으킨 혐의다.
이들은 2021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무허가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 320명을 아리셀 직접생산 공정에 허가 없이 불법 파견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박 총괄본부장은 이번 화재와 별개로 방위사업청과 전지 납품 계약을 체결하고 전지 성능이 미달하자 시료 전지 바꿔치기, 데이터 조작 등 위계로 국방기술품질원의 품질검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기술 없이 노동력만으로 이윤을 추구한 끝에 벌어진 최악의 참사’라고 규정했다. 검찰 수사 결과 아리셀은 박 대표가 운영하는 모회사인 에스코넥에 종속된 구조였다. 지분의 96%를 에스코넥이, 4%를 박 대표가 소유했다.
아리셀은 2020년 5월 사업 시작부터 모회사 출자 등으로 자금지원을 받고도 매년 적자를 냈다. 검찰은 박 대표가 매출 증대를 위해 기술력 없이 노동력만을 투입하여 무리한 생산 감행했다고 판단했다.
아리셀은 안전·보건 예산은 최소한으로 편성·집행하고, 담당부서 인력을 감축했다. 안전보건관리자가 퇴사한 뒤에는 약 4개월간 자리를 공석으로 방치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전지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는 직원을 형식적인 안전보건관리자로 임명했다. 해당 직원은 인수인계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소방·안전 업무를 수행했다.
검찰은 아리셀이 비용절감을 위해 비숙련 이주노동자를 불법으로 파견받았다고 봤다. 불법 파견업체인 메이셀로부터 노동자를 공급받은 아리셀은 이들에게 안전교육도 하지 않은 채 고위험 전지 생산공장에 투입했다. 참사 당시 숨진 23명 중 20명이 불법파견된 노동자였는데 이들은 입사 3∼8개월 만에 사고를 당했다.
인력을 제공한 메이셀이나 이들을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한 아리셀 모두 파견 노동자들의 안전에 무관심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비상대피 등 안전교육 없이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일하다가 변을 당했다.
불법 파견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파견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은폐한 사실도 확인됐다. 아리셀은 파견 노동자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났음에도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하지 않고 공상 처리했다.
검찰은 아리셀 측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다수의 전지들을 나누지 않고 적재하거나 전지 발열 검사를 생략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조치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은 것이 연쇄 폭발과 대규모 인명 피해를 야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최초 폭발한 전지가 불에 타버려서 단락이 발생한 원인은 특정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 경영책임자는 안전을 도외시한 경영으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에 두고, 오로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영에만 치중했다”면서 “재판과정에서 피고인들에게 책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검찰이 구속 기소를 결정했지만 피해자들의 재발방지대책 수립과 교섭 요구는 여전히 묵살되고 있다”면서 “정부는 피해자의 교섭 지원에 적극 나서고, 불법파견, 위험의 이주화, 위험성 평가 전면 개편 등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즉각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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