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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일)

함익병 눈물, 가난했던 어린시절 공개..딸 “일 중독 父, 이해됐다” (‘아빠하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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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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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박하영 기자] ‘아빠하고 나하고’ 딸 함은영이 아빠 함익병의 가정사를 듣고 이해했다.

18일 방송된 TV CHOSUN ‘아빠하고 나하고’에서는 ‘일 중독 아빠’ 함익병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고등학교 교사 출신 아버지에 관한 가슴 아픈 사연을 공개했다.

그동안 함익병은 ‘워커홀릭’ 면모를 드러내며, 가족들의 원성을 자아냈다. 또한 딸과 첫 카페 데이트를 나선 함익병은 평범한 대화가 아닌, 미국 금리를 물어보는 등 빅토크를 해 딸을 힘들게 하기도.

결국 딸 함은영은 함익병의 빅토크를 견디지 못했고, 다시는 카페를 오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두 사람을 위해 아내 강미형이 대게로 푸짐한 밥상을 준비했다. 이를 본 함익병은 “나는 대게를 볼 때마다 옛날 생각난다. 아빠는 대게를 먹을 때마다 부자가 됐구나 생각이 든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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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인터뷰에서 함익병은 “어릴 때 우리집은 정말 가난했다”라고 고백했다. 당시 함익병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지만 칠남매의 장남이었다고. 월급으로 동생 6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은 물론 할머니도 큰아들 월급으로 나눠 써야 하는 등 아버지가 챙기는 식솔만 10명이었다고 이야기했다.

함익병은 “엄마가 안 해본 장사가 없다. 엄마가 지나가듯 말했는데 아버지가 결혼했는데 자식을 낳지 말자고 했다더라. 책임질 식구가 많으니까 자식을 낳지 말자고 했다”라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어 “무슨 돈이 있냐. 맨날 돈이 없다. 엄마가 돈 없다는 애기를 한다. 아버지는 불가능한 돈 이야기를 엄마한테 들으면 터질 거 아니냐. 그러면 아버지는 꼭 밥상을 엎었다. 성질난다고. 순식간에 얼음이 된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있었다. 내가 밥상에 앉으면 말 많이 하는 게 밥상에서 생긴 버릇이다. 부모님의 싸움을 회파하려 생긴 버릇”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함익병은 “엄마가 돈 얘기 시작해서 한번만 하면 되는데 엄마도 쌓인 게 있으니까 말의 꼬리를 물고 계속 한다. 그럼 아버지가 ‘어떡하라고’ 하면서 확 엎는다. 그 와중에 나는 밥을 주워와서 먹었다”라며 “그때는 몰랐는데 내 나이가 드니까 슬퍼”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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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가장의 역할에 대해 함익병은 “집에서 돈이 없다는 얘기가 안 나와야 한다. 돈 얘기가 화제가 되지 않아야 하는 게 가장의 역할인 것 같다”라며 “대게를 처음 먹을 때 다른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맛있는 걸 먹을 때 부자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전했다.

그러자 전현무는 “아버지에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시는데 이유가 있냐”고 물었고, 함익병은 “아버지가 (62세 나이에) 일찍 돌아가셨다. 아쉽죠”라며 “지금 계셨더라면 모든 걸 해드렸을텐데. 공직에 있으면 월급을 4인 가족이 살 만큼 준다. 여러 사람이 나눠쓰니까”라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심지어 함익병은 10살 무렵 아이스케키를 팔아본 적도 있다고. 그는 “아이스케키가 먹고 싶은데 돈은 없는 거다. 열 개 팔면 하나를 먹을 수 있다. 생각의 차이다. 아이스케키가 먹고 싶고 부모가 돈이 없음연 어떡하냐. 먹고 싶은 욕망이 강하면 그렇게 하는 거다. 할머니(엄마)가 몰랐다. 장사하는 걸 누가 보고 엄마한테 일렀다. 걸려서 뒤지게 혼나고 못했다”라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또 7살 무렵 함익병은 부잣집에만 있었던 세발자전거가 타고 싶어 집주인 아들을 밀어주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대신에 나도 한 번만 타게 해달라고 했다. 이건 딜이 되지 않나. 계속 밀어주니까 허리가 아프지 않냐. 새끼줄로 끌면 편하다. 내가 30분 끌어주면 내가 타는 거다. 그렇게 탔다. 근데 그 모습을 엄마가 봤다. 뒤에서 미는 건 부모가 봐도 애들끼리 노는 건데 앞에서 끌어주는 걸 엄마가 봤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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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중학생 시절, 책장 살 돈이 없어 직접 통나무를 사와 리어카를 끌고 제재소에서 판자로 만든 뒤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고. 그는 “리어카 끌고 가는데 여학생이랑 눈이 마주친 거다. 너무 창피하더라고 그거는 정말 싫었던 기억이 난다”라고 회상했다.

이에 함은영은 “아빠가 어렸을 때 정말 고생이 많았던 것 같고, 저는 그렇게 키우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시고 어쩌면 더 유복하게 해주시려고 했던 노력이 느껴져서 존경스럽다. 앞으로는 남은 생은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원래 꿈은 대학교 교수였다는 함익병은 “근데 열심히 해도 자리가 나올 같지 않아. 개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피부 레이저 만드는 장비 업체에 전화를 했더니 기계가 너무 비싼 거다. 95년 당시 돈으로 한 대에 1억 5천~2억이랬으니까.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돈이 없으니까 집을 팔아서 병원 개업했다. 근데 다른 동료들이나 선배들은 미친놈이라 그랬다. 워낙에 돈을 많이 투자를 하니까”라고 개업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함은영은 “집 담보 받을 때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이 없었냐”고 물었고, 함익병은 “돈을 지르고 시작할 때는 두려웠다. 잘못되면 다 날아가니까”라며 “개업한 그날부터 일요일에도 계속 일했다. (1년 동안) 구정하고 크리스마스. 이틀 쉬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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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개업하고 10년만의 생긴 첫 휴가라고. 그동안 휴가 없었냐는 질문에 함익병은 “휴가가 어딨냐. 일을 해야지. 잘못되면 길바닥에 나앉는데 어떻게 하냐. 젊은 사람들이 ‘저 사람 돈에 미쳤구나’ 돈에 미쳐야 돈을 번다. ‘난 돈 좋아해’ 그러면서 돈이 저기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돈이 벌리냐고요. 우리 같은 직업이나 연예인이나 매한 가지 아니냐. 내가 움직여야 돈이 나온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함은영은 ‘일중독’ 아빠에 대해 “저는 아빠가 안 행복해 보였다. 불행까지 아니고 너무 힘들어보였다. 왜 저렇게 여유가 없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그것도 잠시, 함익병의 과거를 알게 된 직후 함은영은 “우리를 힘들게 했던 강압들이 가난에서 비롯됐구나 생각하니까 다 이해가 된다. 순화되지 않은 잔소리들이 더 많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저렇게 가난했으니까 ‘뭐 먹고 살지’ 걱정했겠지. 아빠가 하고자 한 말은 열심히 살라는 거구나.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더 된 것 같다”라고 아빠를 이해했다.

/mint1023/@osen.co.kr

[사진] ‘아빠하고 나하고’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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