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8 (수)

[단독] '아나운서 출신 레이싱 선수' 오정연 "자유와 희열 느꼈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모터사이클 레이싱 선수 된 아나운서 출신 오정연
올해 열린 대회(태백 레이디컵)서 3위 입상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삶... 모터사이클 도전하며 자유와 희열 느껴"
한국일보

오정연이 모터사이클 레이싱 대회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본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도전은 인생을 흥미롭게 만든다고 했던가. 이 말에 꼭 맞게 하루하루를 열정으로 채워가는 이가 있다. 바로 방송인 오정연이다. 엄격한 아버지 아래서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았던 오정연은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KBS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이후 연기와 예능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활약해왔다.

"30대 중반까지는 나를 억눌렀고 스스로에 대해 잘 몰랐다"고 털어놓은 오정연은 최근 놀라운 변화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모터사이클 선수로 정식 데뷔해 TTF R-Lady Cup(태백 트랙 페스티벌 R-레이디컵)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한 것. 한때 심각한 번아웃과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했던 그는 여러 건강한 취미들을 통해 삶의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바이크 외에도 스쿠버 다이빙, 테니스, 골프, 축구, 프라모델, 기타, 윈드서핑, 태권도 등을 배우며 다양한 도전을 이어왔다.

오정연은 최근 개인 채널 '쾌걸 오정연'을 통해 대회 영상을 공개, 18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라이딩 슈트에 헬멧을 눌러 쓰고 질주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55년 살면서 여자에게 멋있다는 생각을 한 게 오늘이 처음이다" "인생은 즐기면서 사는 것" "취미인 줄 알았는데 속도 장난 아니다. 안전하게 타시길" 등의 댓글을 달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와 멋지게 질주하며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고 있는 오정연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일보

오정연이 모터사이클 레이싱 대회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본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오정연이 모터사이클 레이싱 대회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본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하 오정연과의 일문일답.


-정말 놀라운 변신인데, 모터사이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교 때 캠퍼스가 광활해서 교양수업에 가려면 30분씩 걸어 다녀야 했어요. 당시 가장 부러웠던 사람들이 스쿠터를 타고 기동성 있게 움직이던 친구들이죠. 그땐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탓에 그림의 떡이었던 이륜차의 꿈을 뒤늦게 실현하게 된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정도로 깊고 오래 빠져들지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타면 탈수록 매력과 장점이 어마어마한 취미라 지금까지 온 것 같고요. 앞으로도 새롭게 갈 길이 무궁무진해요."

-오정연에게 모터사이클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바이크의 종류와 목적에 따라 의미가 각기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모터사이클 위에서는 오직 저에게만 초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 비교적 어린 나이(22살)에 아나운서가 되어 늘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왔기에, 헬멧을 쓰고 바이크를 운전하는 첫 순간부터 엄청난 자유로움과 희열이 새롭게 가슴 속 깊이 느껴졌어요."

-영상을 통해 근육통이 있다면서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부분은 개선된 상태인지?

"바이크를 탈 때 정석은 상체에 힘을 빼고 하체로 기계를 움직이는 거예요. 일반 도로에서는 그 정도로 능숙하지만, 트랙 레이싱을 하며 코너를 돌 때엔 속도도 빠르고 바이크를 땅 가까이 많이 기울이기에 난이도가 훨씬 높아요. 그러다 보면 상체에 힘을 주며 기계를 컨트롤하려는 본능적 움직임이 생기는데 그럴수록 바이크는 엇나가기 일쑤거든요. 하체와 시선으로 바이크를 움직이고 상체에 힘을 빼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직 잘 되지 않아서 근육통이 생긴 거죠. 레이서로서 점점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 생각해요."

-2024 태백 트랙 페스티벌에서 넘어지는 모습이 공개됐는데 당시 부상은 완전히 회복됐나.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지.

"당시 넘어진 후 다음 날이 모터사이클 레이서로서의 인생 첫 경기였기에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경기 완주를 했어요. 그 후 병원에 갔더니 엄지 손가락에 금이 가 있더라고요. 트랙에서의 사고는 제 실력 이상으로 오버페이스 주행을 해서 나는 게 대부분이에요. 트랙 입문 첫 달에 몇 번 전도가 되어보고 나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한 상태라, 안전을 절대적 1순위로 두고 즐기고 있어요. 그래서 위험한 상황이 닥친 적은 한 번도 없죠. 평소에도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되 절대 넘어지지 말라'는 말을 꼭 되새기고 바이크를 타요."

-모터사이클 레이싱 선수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일단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 선수로서 계약이 돼있어요. 올해는 트랙 입문 첫 해라 몸풀기 정도로 생각하고, 내년 시즌 전까지 기량을 향상시키려 해요. 내년 시즌에 제가 출전하는 TTF R-Lady Cup(태백 트랙 페스티벌 R-레이디컵)에서 당당하게 1등을 해보고 싶은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남자들과 함께 겨루는 혼성 경기에도 출전해 포디움에 올라보고 싶어요."

-최근 채널A '4인용식탁'에서 2세를 원한다고 이야기했다. 미래에 2세가 모터사이클을 취미로 갖고 싶다고 한다면 지지해줄 생각인가.

"그 질문을 많이 하시던데 당연히 지지할 겁니다. 다만 최대한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교육하고 함께 라이딩하며 능숙해질 때까지 예의주시할 거에요. 최민수씨 가족 모두 함께 라이딩하는 게 좋아 보였어요. 그 외에도 가족 라이딩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라이딩하는 동안 무선으로 연결돼있기에 가족끼리 대화하는 것도 정말 좋은 장점이라고 해요. 제가 출전하는 레이디컵의 최연소 선수인 김민채는 현재 중학생이에요. 한국 모터사이클 레이싱의 미래인 친구이고 아주 실력이 뛰어나죠. 취미로 바이크를 탔던 아버지가 모터사이클 레이싱을 추천해 일찍이 선수가 됐는데, 대회 때마다 온 가족들이 와서 응원하는 걸 보면 참 좋아 보이더라고요."

-바이크에 도전하고 싶지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접 타보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주위의 얘기에 큰 두려움을 가져요. 저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섣불리 말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아요. 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능숙한 기량으로 타면 장점이 더 많은 취미이자 스포츠인데, 알려고 하기도 전에 선긋는 분들이 아직 꽤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올해 '오정연과 함께하는 바이크 투어' 참가자들을 모집해 일본을 2회 다녀왔어요. 고속도로를 다른 자동차들과 똑같이 달렸는데 생각보다도 더 안전하다고 느꼈죠. 외국에서는 선수들의 연봉이 상상초월일 정도로 모터사이클 레이싱이 인기 스포츠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륜차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좋은 건 많은 분들이 함께 나눴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한국일보

오정연이 모터사이클 레이싱 대회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본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모터사이클 선수 프로필을 공개한 후 전현무와 한석준이 SNS에 응원 댓글을 남겼더라. 두 사람이 평소 많이 응원해주는 편인가.

"친정인 KBS에서 친해진 오빠들이잖아요. 종종 편하게 서로 연락 주고받으며 안부도 묻고 응원도 해요. 직장 인연인데 소중하게 남아 아마도 평생 가지 않을까 싶어요. 전현무씨는 워낙 서로 장난도 많이 치고 고민도 허심탄회하게 나누던 동기라서 오빠 없는 제게 친오빠 같은 면이 있어요. 한석준씨는 돌이켜보면 가장 처음 제게 바이크라는 취미를 권했던 인물이에요. 그땐 제가 심드렁하게 반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가 권유했을 즉시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겠단 마음이 들어요. 진짜 좋은 취미라고 했는데, 왜 추천한 건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배우로도 활동했는데 액션 연기에도 욕심이 있는지.

"물론 있어요. 제가 주인공을 맡았던 2021년작 영화 '죽이러 간다'에서 액션 장면이 많이 나와요. 와이어 액션과 1 대 1 격투씬을 소화한 적이 있죠. 몸 쓰는 건 뭐든 자신이 있는 편이라 꼭 다양하게 도전하고 싶어요."

-오정연이 생각하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자제력을 지닌 채 살아온 것 아닐까요. 큰 욕심부리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절약하며, 미래를 대비하며 살았더니 갈수록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멈춘 채 삐끄덕거렸던 저 또한 사랑스럽게 느껴져요. 결국은 스스로 당당히 더 잘 살고자 한 고민과 노력의 산물이었으니까."

-40대가 된 후 마음가짐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 요즘 오정연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지.

"나이가 들수록 안정되어 가는 것 같아요. 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사람들이나 이 세상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기에 무슨 일을 맞이하든 기복 없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죠. 단, 마음은 늘 아이처럼 해맑게 가져가려고 노력하며 살아요. 요즘은 순간순간 행복해요. 집에서 창으로 흘러드는 가을바람을 누리며 좋아하는 노래를 튼 채 집안일을 하는 데 참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오정연처럼 '갓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 저는 갓생이라 생각한 적은 없어요.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했던 건 거의 없고, 점차 노력해서 조금씩 발전시켰던 것들이 많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죠. 어릴 땐 좌절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악바리같이 매달렸던 경험들이 저를 더 단단히 만들어줬어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좋아하는 것에 순수하게 마음껏 열중해 보시길 바라요. 그 순간들은 분명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자양분이 되어 인생을 빛나게 해줄 거라 생각해요."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