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음악영화제서 데뷔 50주년 토크…"신상옥에게서 99% 배워"
"이승만·박정희 다큐 내년 개봉 목표…뮤지컬 영화도 만들고파"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데뷔 50주년 기념 스페셜 토크 참석한 이장호 감독 |
(제천=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제가 영화 경력이 길었다면 겁을 먹었을 텐데 철부지였던 때라 무서운 걸 몰랐어요. 아마추어 같은 생각으로 밀고 나갔지요."
이장호 감독은 6일 제천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데뷔 50주년 기념 스페셜 토크 행사에서 데뷔작 '별들의 고향'(1974)을 촬영하던 당시를 돌아보며 이같이 말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조직위원장인 그는 전날 개막한 제20회 영화제에 참석했다.
이 감독은 "'별들의 고향'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가 오늘 어떻게 촬영했는지도, '레디 고'를 외치는 순간도 기억나지 않았다"며 "늘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연출했다"고 회상했다.
최인호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별들의 고향'은 첫사랑에게서 버림받은 여자 경아(안인숙 분)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로 대종상,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현 백술예술대상) 등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이 감독의 감각적인 영상과 탄탄한 원작, 가수 이장희가 부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당시 한국 영화로는 역대 최다 관객인 46만여 명을 동원했다.
이 감독은 "영화가 나오기 전에 음악이 라디오에서 방송돼 히트했고, 소설은 베스트셀러이지 않았느냐"면서 "나는 앉아서 덕만 본 것"이라고 웃음 지었다.
"관객이 10만명을 돌파하니까 '베스트셀러가 맞는구나. 최인호 덕이다'라고 생각하다가 20만명을 넘기자 '이야, 이장희 음악도 큰 역할을 했네' 생각했죠. 30만명이 되고 나니 그제야 '나도 영화 좀 만드네' 했어요, 하하. 그런데 40만명까지 넘어가니 이상하게 센티멘털해졌습니다. 영화가 저 혼자 뛰어가는 말처럼 느껴졌거든요."
이 감독에게 큰 성공을 안겨준 데뷔작이지만, 연출이 확정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원작을 탐내는 쟁쟁한 감독들이 워낙 많았던 탓에 최 작가를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 감독과 최 작가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나온 동기로 20대까지도 친분을 이어오며 당대 청년 문화를 이끌었다.
젊은 시절 촬영 현장에서의 이장호 감독 |
이 감독은 "(판권을 얻기 위해) 대학생인 친동생의 등록금을 빌려서 인호(최 작가) 아내에게 건넸다"면서 "이후 술에 잔뜩 취한 인호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 맘대로 한 번 만들어보라'고 하더라"고 떠올렸다.
어렵게 판권을 따낸 그는 신상옥 감독이라는 큰 산도 넘어야 했다. 신 감독은 이 감독이 '별들의 고향'을 연출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불러 자신이 '별들의 고향' 제작을 맡고, 촬영감독으로는 이 감독의 선배를 기용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감독은 "속으로 '아, 이거 잘못 걸렸구나. 그렇게 되면 내가 (실질적으로) 연출하는 게 아니게 되겠구나' 싶었다"며 "신 감독님 방에서 나오자마자 짐을 꾸려서 신필름(신 감독의 영화사)을 나왔다"고 돌아봤다.
이 감독을 영화계에 입문하게 해준 신 감독과 8년간 이어진 인연이 끊긴 순간이었다.
이 감독은 영화 검열관이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부터 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이 감독이 건축미술 학도였던 20대 초반, 그의 부친은 아들을 배우로 만들기 위해 평소 친분이 있던 신 감독을 함께 찾아갔다.
이 감독은 "카리스마가 넘치고 대단히 잘생긴 신 감독을 보니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이 차마 안 떨어지더라"며 "영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그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감독이 하고 싶다'고 대답해버렸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 감독은 신필름에서 연출부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 감독은 "지금도 신상옥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겁이 덜컥 난다"면서도 "저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고 그에게서 배운 게 99%"라고 강조했다.
젊은 시절 촬영 현장에서의 이장호 감독 |
이 감독은 '별들의 고향' 이후 '어제 내린 비'(1974), '너 또한 별이 되어',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바보선언'(1983), '무릎과 무릎사이'(1984),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 등을 내놓으며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로 거듭났다.
1990년대부터는 작품 활동이 뜸해졌고 2013년 '시선'을 끝으로 새 영화를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다큐멘터리 '하보우만의 약속' 작업에 들어갔다.
이 감독은 "죽기 전에 꼭 만들고 싶었던 영화 중 하나"라며 "이 전 대통령의 탄생 150주년인 내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대통령을 둘러싼 오해와 폄훼를 없애고 애국과 미래에 대한 신념을 갖게 해야겠다는 마음"이라며 "이 작품으로 돈을 좀 벌면 저와 제 친구들의 생애를 음악으로 풀어낸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ramb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