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식객' 등 인기 만화 그린 한국 대표 만화가 데뷔 50주년 인터뷰
"웹툰 연재에 새롭게 도전…'도전만화'나 인스타그램서 익명으로 공개할 듯"
포즈 취하는 허영만 작가 |
'식객', '타짜', '각시탈' 등 인기 만화를 그린 허영만(75) 작가는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작업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1974년 만화 '집을 찾아서'로 데뷔한 허 작가는 올해로 만화 인생 50주년을 맞았다.
'한국 만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웹툰에 도전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식객'이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등 출판만화를 온라인에서 연재한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웹툰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허 작가는 "요즘 웹툰을 보니까 그림을 너무도 잘 그리더라"라며 "나는 그렇게 화려하게 하기는 싫고, 간단하되 감동과 재미는 큰, 짧은 컷의 만화를 생각 중"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웹툰이나 카카오페이지 등 주류 플랫폼에서 작가 이름값을 내세우기보다는 익명으로 아마추어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실험에 나설 계획이다.
허 작가는 "허영만이라는 이름을 걸고 출판사나 웹툰 회사들에 부담을 갖게 하는 것보다 '도전만화' 같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루트를 그대로 밟아볼까 한다. 인스타그램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계급장을 떼고 웹툰 작가 지망생들이 데뷔를 위해 밟는 과정에 그대로 도전해보겠다는 것이다.
포즈 취하는 허영만 작가 |
올해 반백 년을 맞은 그의 만화 인생도 함께 짚어봤다.
전남 여수 출신인 허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만 던져두고 만화방에 가서 2시간씩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세가 기울자 아예 만화가로 진로를 정하고 그림 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당시 만화를 그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며 "내가 우유부단한 성격인데도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만화가 박문윤, 엄희자, 이향원 아래서 문하생 생활을 7년간 했는데 이 시절의 경험이 모두 만화가로 일하는 데 뼈와 살이 됐다고 했다.
허 작가는 "화료를 받으면 명동 책방에 가서 일본 만화와 사진이 들어간 2차 세계대전 관련 책을 많이 샀고, 신문에 '주말 명화'라고 짤막한 스토리가 있으면 모두 잘라서 붙여놓으며 공부했다"며 "그때 스토리, 연출, 그림, 스튜디오 이끄는 법 등을 모두 배웠다"고 회고했다.
1975년 소년한국일보 공모전을 통해 데뷔하고서는 그해에 바로 '각시탈'로 큰 성공을 거둔다. 주인공이 일제에 맞서 싸우는 이 만화는 큰 인기를 얻었지만, 검열 당국의 트집 때문에 조기 완결된다.
그는 "굉장히 열심히 그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광화문에 있는 도서잡지윤리위원회에서 날 부르더니 '만화판에 온통 탈이 나오는 만화가 많아졌다. (원조인) 당신이 그만둬라'고 하더라"라며 허탈해했다.
1985년에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요청을 받고 만화 '오! 한강'을 그렸다.
이와 관련해 그는 "당시 안기부가 만화를 그려달라길래 '연재가 끝날 때까지 간섭 안 하겠다'는 약속받았다"며 "이만큼 이데올로기를 만화에서 다루는 것이 위험한 시대였는데, (안기부가) 뒤에 있으니 이용하자는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비트'(1994년), '타짜'(1999년), '식객'(2003년) 등 쉬지 않고 인기작을 만들었다.
허 작가는 "'타짜'로 한 소재를 끌고 나가는 방식을 만들었고, '식객'은 지금까지 해왔던 만화 그리는 능력을 집대성한 것"이라며 "(내 스타일은) '타짜'를 거쳐 '식객'에서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표작이 많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SF만화 '망치', 단편 '동래학춤'을 꼽았다.
그에게는 아직 그려야 할 만화도 많이 남았다. 여수 출신인 만큼 이순신 장군 만화와 여순사건을 소재로 한 만화는 그려야겠다는 것을 숙제처럼 마음에 품고 있다고 했다.
만화 '식객' 한글판·일문판 |
대본소(만화방) 시절부터 만화 잡지, 신문 연재, 웹툰의 탄생과 성공까지 한국 만화 역사의 변화를 모두 지켜본 만화가로서, 오늘날의 만화계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기업 중심으로 웹툰이 제작되면서 빚어지는 다양성 부족 문제에 우려를 표했다.
"요즘은 웹툰을 회사에서 그린다더라고…. 그러면 다양성이 부족해져요. 중국집에서 짜장면만 팔다 보면, 짜장면 싫어하는 사람은 중국집을 아예 안 가지 않겠어요? 웹툰도 마찬가지죠. 학원폭력 만화만 있으면 아예 (웹툰을) 안보는 사람이 생겨요. 소위 '돈은 안되더라도 작품성이 높은 만화'가 있어야 하고, 이를 연재할 공간이 마련돼야 만화판이 튼튼해지거든요."
후배 작가들을 향해서도 "만화가여야지, 회사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그림도, 스토리도 할 수 있어서 자기 몫을 충분히 하는 작가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만화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인공지능(AI)에 대해서는 본인이 활용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맥아더가 이렇게 말했잖아요. '올드 솔져스 네버 다이, 데이 저스트 페이드 아웃'(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마찬가지예요. 허영만 만화도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됐고 AI로 지지부진하게 남아 있기보다는 그저 사라져야 한다고 봐요."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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