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안전 뚫은 ‘흉기 난동’... 코인사기 피해의 민낯
사건은 28일 오후 2시24분경 서울 양천구 신월동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일어났다. 하루인베스트 대표 이모씨의 재판이 진행되던 중 방청석에 있던 50대 남성 A씨가 갑자기 일어나 20㎝ 길이의 과도로 이씨의 목을 수차례 찔렀다.
가상자산 예치업체 하루인베스트 대표에게 법정에서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체포된 50대 남성 A씨가 30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A씨는 '1조 원대 코인 출금 중단' 사건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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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법정은 아수라장이 됐다. 법원 경비원들이 즉시 뛰어들어 A씨를 제압했고, A씨는 6분 만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씨는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은 이씨가 보석으로 풀려난 후 불구속 상태에서 출석한 첫 번째 공판이었다.
◆ “80억원대 피해자가 휘두른 흉기”... 법정 난동의 배경
31일 서울 양천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하루인베스트 사태의 피해자로 조사됐다. A씨는 약 100개의 비트코인을 하루인베스트에 예치했다가 출금이 중단되면서 80억원 상당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출금 중단에 따른 손해에 불만을 품고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주변 증언에 따르면 A씨는 범행 이전부터 “인생 포기하고 저지른 죄에 대해 벌 받겠다”는 취지의 말을 자주 했다. A씨는 노후 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재산 대부분을 하루인베스트에 예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과도는 어떻게 법정으로?… 드러난 ‘허술한 보안’
A씨는 금속 탐지기가 있는 법원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금속성 재질의 칼을 반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수개월 전 집 근처 마트에서 구입한 과도를 가방에 넣어 법정에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분석, 엑스레이(X-ray) 검색기 작동 여부에 대해 당시 근무자 등을 상대로 확인 중이다. 법원의 보안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29일 전국 각급 법원에 보안 강화 지시를 내렸다. 지시 내용에는 출입 인원 검색 철저, 도검류와 인화성 물질 등 반입금지품목에 대한 엄격한 검사, 우발상황 대비 보안관리대원 근무 수칙 준수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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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조4000억원 규모 코인 사기 사건의 전말
하루인베스트 사태는 지난해 6월13일, 회사가 갑자기 고객들의 코인 출금을 중단시키면서 시작됐다. 1만6000여명의 피해자들이 하루아침에 막대한 재산을 잃었다.
2020년 3월부터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를 시작한 하루인베스트는 무위험 운용을 통해 원금을 보장하고 업계 최고 수익을 지급할 것이라며 고객들을 유치했다. 특히 한류스타 배용준이 설립한 키이스트의 자회사가 발행한 ‘배용준 코인’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워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검찰은 올해 2월 이씨 등 하루인베스트 경영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코인 시장의 등락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무위험 차익거래’ 운용 전략이 있다고 거짓 홍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배용준 코인’의 가치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는 허위 정보를 퍼뜨린 혐의도 받고 있다. 약 1조3944억원의 재산상 이득을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씨 등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 “하루인베스트 관계자와 생을 마감하고 싶어”… 예견된 피습이었나
흉기 피습이 발생하기 전, A씨를 포함한 하루인베스트 피해자들은 이씨의 보석 허가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 탄원서에서 A씨는 “삶을 포기한 그들에게 법이 무슨 소용이며, 처벌 또한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매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치열한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다른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것조차도 힘겹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삶을 포기한 피해자들로부터 구속이 만료되는 (또 다른 회사 관계자) 방씨와 함께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듣는다”며 극단적인 심리 상태를 나타냈다.
A씨의 지인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며 “전부터 계속 그런 얘기를 해서 이런 일이 언젠가 터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계속 말렸었다”고 말했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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