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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신형 태권V' 박태준, 한국 태권도에 8년만의 금메달 안겼다…남자 58㎏급 첫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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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한국 태권도에 8년 만의 금메달을 안기 박태준. 파리=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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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태권V' 박태준(22·경희대)이 한국 태권도에 8년 만의 금메달을 안겼다.

박태준은 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결승에서 상대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비이잔·26위)의 부상으로 기권승을 거뒀다.

부상이라는 돌발 변수가 승부를 갈랐다. 마고메도프는 박태준과 결승전에서 1라운드 1분 7초를 남겨두고 발차기를 시도했다가 서로 다리가 엉키면서 쓰러졌다. 마고메도프는 왼쪽 정강이 부분을 만지며 고통을 호소했다. 언제 경기를 포기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지만, 마고메도프는 다시 일어나 싸우는 투지를 보였다. 박태준은 2라운드 1분 2초를 남기고 마고메도프가 고통스러워하는 중에도 몸통 발차기에 적중하며 공세를 늦추지 않아 기권을 받아냈다. 박태준은 한동안 마고메도프의 상태를 살핀 뒤에야 태극기를 들고 그랑팔레 팔각 매트를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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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대에 선 박태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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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박태준은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이 체급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태권도 레전드 이대훈(32·은퇴)이 2012 런던올림픽에서 딴 은메달이 종전 최고 성적이었다.

박태준은 종주국 한국 태권도의 자존심도 세웠다.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노골드' 굴욕을 당했던 한국 태권도는 8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한국이 올림픽 태권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00 시드니올림픽 이후 도쿄가 처음이었다. 남자 선수로 범위를 넓히면 무려 16년 만의 금메달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손태진(68㎏급)과 차동민(80㎏ 초과급)이 마지막 올림픽 남자 금메달리스트였다. 박태준의 금메달은 한국 선수단의 12호 금메달로 기록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도복을 입은 박태준은 한국 태권도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이다. 그는 2022년 고교생(한성고 3년) 신분으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태권도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고교 무대는 일찌감치 평정했다. 1학년 때부터 전국 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지난 3년간 진 건 딱 한 번이다. 훤칠한 키(1m80㎝)에 곱상한 외모는 아이돌 가수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매트에 서는 순간 그의 표정은 맹수처럼 변한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주눅 드는 법이 없다. 매서운 발차기로 상대 선수를 바닥에 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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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메도프(왼쪽)를 부축하며 시상대에 오르는 박태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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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은 지독한 '연습버레'다. 그는 지난 2월 국가대표 선발전(3전 2승제)에서 대표팀 수퍼스타 장준(24)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장준은 2019 맨체스터 세계선수권 금메달, 도쿄올림픽 동메달 그리고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이 체급 최강자였다.

지난해까지 장준을 상대로 6전 6패로 절대적인 열세를 보였던 박태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파리올림픽 선발전을 앞두고 '기본자세를' 아예 반대로 바꾸는 파격적인 전략으로 나섰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왼발을 앞에 두고 경기를 했다. 그런데 장준을 넘기 위해 오른발을 앞쪽에 두고 싸우는 훈련을 했다. 사실상 모든 것을 바꿨다고 볼 수 있다. 축구로 치면 오른발로 슈팅하던 공격수가 득점 찬스에서 왼발로 슈팅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른발을 앞에 둔 박태준의 움직임과 발차기는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공격 패턴을 읽을 수 없어 예측이 불가능해진 선수가 되면서 장준을 상대로도 역전 드라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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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을 따고 공중제비를 도는 박태준. 파리=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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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의 별명은 '신형 태권V'다. '태권V'로 불렸던 레전드 이대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박태준은 실력은 물론 성장 과정까지도 선배 이대훈과 빼닮았다. 체급도 이대훈과 똑같은 58㎏급이다. 고교 3학년이던 2010년 첫 태극마크를 달았던 이대훈은 2021년까지 11년간 세계 정상을 지키며 아시안게임 최초 3연패, 올림픽 은·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준은 이대훈의 한성고 후배다. 이대훈의 후배가 되고 싶어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를 택했다. 이대훈처럼 박태준도 고교 3학년 때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다.

이대훈은 은퇴한 이후에도 모교를 수시로 찾아가 박태준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했다. 덕분에 박태준은 돌려차기, 나래차기 등 변칙 기술에다 이대훈의 전매 특허인 발 커트(발로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기술) 기술까지 습득했다. 이대훈과 박태준을 모두 지도한 전문희 한성고 태권도부 감독은 "(박)태준이는 이대훈 못지않은 괴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준은 지난 5월 중앙일보를 통해 "세계 무대를 석권하고도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이)대훈 형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켰다.

시상식 후 박태준은 "내가 지금까지, 20년을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내 선수 생활이 담긴 금메달"이라고 기뻐했다. 그러면서 "올림픽 금메달은 모든 스포츠인의 꿈이다. 뜻깊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취재진과 처음 만나 "꿈 아니죠?"라고 물었던 박태준은 "금메달을 딴 순간 그동안 준비했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순간 울컥했다"고 돌아봤다.

박태준은 그전까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한국 겨루기의 간판 장준을 꺾은 게 자신감을 찾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박태준은 "장준 형은 워낙 잘하고 세계적인 선수였다. 올림픽에서 메달도 한 번 딴 선수"라며 "(이긴 후) '더 해야겠다', '할 수 있다'는 다짐, 각오가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결승전을 앞두고 노래를 들었다. 박태준이 듣고 있던 노래는 가수 데이식스의 히트곡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였다. 박태준은 "오늘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들었다"고 웃었다.

파리=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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