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팀 소속으로 파리 올림픽 역도 종목에 출전하는 모라 로메로. 사진 출처 : 파리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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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터널 끝에 빛이 보이지 않아도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파리 올림픽에 난민팀 소속으로 참가하는 역도 선수 모라 로메로(27)는 올림피안의 꿈을 이룬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쿠바 출신으로 현재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로메로는 10일 열리는 역도 남자 102kg급에 출전한다. 난민팀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내전 등을 피해 모국을 떠난 선수들로 꾸린 팀으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부터 올림픽에 참가했다.
로메로는 37명으로 구성된 파리 올림픽 난민팀에 올해 5월 선발됐다.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는 로메로의 올림픽 도전기를 ‘감동적인 여행’이라고 표현했다. 로메로가 난민팀 선수라는 것 외에도 가족을 위해 잠시 역도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했던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로메로는 12세 때 쿠바에서 역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기보다 굵은 팔뚝과 두꺼운 다리를 가진 또래 친구들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역도장에 살다시피 한 로메로는 빠르게 기량이 성장했고, 여러 지역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15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21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역기를 내려놓아야 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로메로가 찾아간 곳은 서커스단이었다.
서커스단에서 공중 곡예사로 일하게 된 로메로는 2019년 영국 블랙풀에서 공연을 했다. 로메로는 “1600명의 관중 앞에서 공연했을 때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커스단에서 받는 돈으로는 쿠바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었다. 로메로는 “주급은 200파운드(약 35만 원)에 불과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고용주의 집을 청소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서커스를 그만두고 잠시 쿠바로 돌아간 로메로는 2021년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에서 망명 신청을 한 뒤 호텔 방에 머물던 그의 머릿속에 과거 어머니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역도 선수로 성공해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약속이었다. 역도 훈련을 하다가 부상을 당해 다리를 절뚝이는 아들에게 얼음주머니를 건네며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역도를 하라고 주문했던 어머니였다.
로메로는 영어가 서툴렀고,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았지만 무작정 런던 역도 아카데미를 찾았다. 당시 이 아카데미의 코치는 “네가 정말로 역도로 성공하고 싶다면 매일 오전 8시 30분까지 아카데미로 와라”라고 말했다. 역도 선수로 재기하겠다는 다짐을 한 로메로는 매일 오전 6시 30분까지 아카데미에 도착했고, 간절함을 알아본 아카데미 측은 훈련을 할 수 있게 했다.
다시 역기를 들기 시작한 로메로는 2022년부터 영국에서 열리는 역도 경기에 출전했는데, 2022년에는 89kg급에서, 2023년에는 96kg급에서 영국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이런 이력을 바탕으로 로메로는 난민팀 소속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게 됐다. 로메로는 “다시 훈련을 시작했을 때 스스로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면 올림픽 출전의 꿈도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메로는 자신에게 역도 선수의 길을 다시 열어 준 영국에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영국 국적을 얻어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영국 국가대표로 역도 종목 출전해 메달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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