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연휘선 기자] 한국 포크계 대부, 대학로 소극장 학전 설립자 고(故) 김민기가 영면에 들었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김민기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별도의 영결식은 없었으나, 영정으로나마 생전 고인의 정수가 담긴 대학로 소극장 학전의 자리(현 아르코꿈밭)을 둘러봤다.
이 자리에는 유족을 비롯해 김민기와 예술사를 함께 했던 가수, 배우 등 대중문화예술인들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장현성, 설경구, 황정민, 김대명, 방은진, 배성우, 이채경, 이황의, 최덕문 등의 배우들과 박승화(유리상자), 박학기, 알리, 이적 등이 영정 앞에서 묵념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소극장 학전의 터를 이어받은 아르코꿈밭극장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정병국 위원장과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도 함께 자리를 지켰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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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전북 익산 출생인 김민기는 미술에 매진했던 중, 고등학교 시절에 힘입어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했으나 정작 대입 후에는 음악에 빠졌다. 이에 1970년 그의 대표곡 '아침이슬'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가수 양희은이 부르며 더욱 유명해진 '아침이슬', '상록수' 등 모두 고인의 작품이다. 김민기의 곡들은 서정적인 선율에도 저항적인 메시지를 잃지 않는 강인함으로 1970년대에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1980년대에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김민기는 음악 못지 않게 연극에도 진심이었는데 1973년 김지하 희곡 '금관의 예수', 마당극 '아구' 제작에도 참여했다. 1978년에는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연출하며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고, 1983년 연극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등을 연출했다. 이후 1991년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하며 극단 학전의 대표까지 역임했다. 학전에서는 연극 뿐만 아니라 다양한 포크 가수들의 공연도 이뤄졌는데 김광석 또한 학전을 통해 탄생한 대표적인 스타다. 그 외에 밴드 YB의 보컬 윤도현 역시 학전 출신 뮤지션으로 활약했다.
학전 대표였던 1994년, 김민기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연출하며 한국 공연계에 획을 그었다. 독일 원작을 김민기가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한 '지하철 1호선'은 지난해까지 8000회 이상 상연돼 소극장 작품임에도 70만 명이 넘는 누적 관객수를 기록했다. 김민기는 생전 인터뷰에서 학전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2008년 상연된 '지하철 1호선'의 4000번째 무대를 꼽았을 정도다. 이러한 공로로 김민기는 생전 백상예술대상 음악상, 한국평론가협회 음악극 부문 연극상, 서울연극제 극본상 및 특별상, 제3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제6회 한국뮤지컬대상 특별상,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 은관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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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극장 불황기 속에 학전도 힘을 잃어갔다. 고인이 건강 악화에도 자리를 지켰으나 지난 3월 결국 학전은 문을 닫았다. 이후 그 정신을 받은 아르코꿈밭으로 재탄생했다. 폐관과 함께 학전 대표에서도 물러난 김민기는 계속해서 '학전의 뒷것'을 자처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는 김민기의 생애를 다룬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고인의 조카이자 학전 김성민 총무팀장에 따르면 학전 홈페이지 아카이브를 토대로 고인의 마지막 작업이 담긴 대본집, 무대, 음악 등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아르코 예술기록원에서 2~3년 후 공개될 예정이다.
/ monamie@osen.co.kr
[사진] OSEN DB. 학전 및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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