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사진 |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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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소시민의 짙은 페이소스를 보여왔던 배우 설경구가 달라졌다. 요즘 그를 찾는 배역은 주로 엘리트다. 대통령 후보(‘킹메이커’)이거나 조직의 보스(‘길복순’), 조선 명문가의 학자(‘자산어보’)였다. 지난 달 28일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에선 국무총리다.
50대에 접어들면서 ‘지천명 아이돌’이란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세련된 이미지가 한몫 했다. 설경구는 ‘돌풍’에서 대통령을 시해하는 국무총리 박동호를 연기했다. 정치적 스승이자 대통령(김홍파 분)이 불순한 경제 권력과 손잡은 사실을 안 후 그를 시해하고 그릇된 정치적 인사를 처단하겠다는 각오로 피바람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설경구. 사진 |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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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는 “정치물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영화 ‘킹메이커’(2022)에 이어 이번 작품이 두번째인데 당시에는 시대적 배경과 실제 인물이 있었다. ‘돌풍’은 결이 달라 새로웠다. 평소 하지 않는 말도 있었고, 무게감이 있었다. 농담 한마디가 없어서 편한 대사에 갈증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국무총리 박동호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위험한 신념을 갖고 있다. 어쩌면 오만하게 비치는 박동호의 얼굴에 설경구는 자연스러움을 불어넣었다. 드라마 속 사건들은 판타지에 가깝지만, 실제로 벌어질 것만 같은 긴박감을 만들었다.
“위험한 신념과 타락한 신념이 부딪힌다는 말이 ‘돌풍’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죠. 박동호는 자기가 다 쓸어버릴 수 있다는 위험한 신념을 갖고 있죠. 판타지적인 인물로 접근했어요. 현실성은 가미하되 특정인물이 떠올리지 않게 연기했죠.”
1994년 KBS1 아침드라마 ‘큰 언니’에 출연한 이후 무려 30년 만의 드라마 출연이다. 오랫동안 작품만 좋다면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지만 막상 출연을 결정하자 부담이 몰려왔다.
“드라마라는 장벽이 제 안에 있었어요. 지레 겁을 먹었죠. 대본을 읽어보고 강력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마지막 회까지 읽어보곤 ‘독하게 쓰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하나 따지면 이해는 안 가는데, 묘한 쾌감이 있었죠.”
‘돌풍’ 스틸컷. 사진 |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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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을 통해 드라마에 대한 불안은 완전히 씻어냈다. 더이상 겁먹지 않을 것 같다고 다짐했다.
“‘드라마도 대본이 좋으면 할 것’이라고 말해 왔는데 선뜻 결정을 못 했죠. 막상 해보니까 별 건 아니더라고요. 대사도 많긴 했지만, 숨 막힐 정도는 아니었어요. 다음 작품도 드라마예요. 이제 편해졌어요. 하하.”
지난해 개봉한 영화 ‘더 문’과 개봉을 앞둔 허진호 감독의 신작 ‘보통의 하루’에 이어 넷플릭스 ‘돌풍’까지, 배우 설경구와 김희애는 무려 세 작품을 연달아 같이 했다. 다만, ‘더 문’에선 한 번도 부딪힌 적 없었고, ‘보통의 하루’ 역시 가까운 사이가 아니란 점에서 연기 호흡을 맞출 기회가 적었다. 이번에는 전투적으로 맞선다.
“김희애는 저에게 과분한 상대역이죠. 현장에선 환경이 주는 긴장감 때문에 사담은 잘 안 나눴어요. 뭔가 차가운 느낌이 있었어요. 대통령이 죄를 지었다고 느꼈을 때 박동호에겐 희망이 다 무너진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다 싸우기로 한 거고요. 김희애 덕분에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돌풍’에서 두 사람은 국가 최고 권력을 두고 아득바득 싸운다. 죽이지 못하면 죽어야 하는 살얼음판 정치 싸움에서 둘은 목숨 건 사투를 벌였다. 연기로 맞붙은 권력 싸움이지만, 절대로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일념이 두사람의 얼굴에 엿보였다. 강하게 몰아치는 박동호 요리조리 피해 가며 카운터펀치를 꽂는 정수진(김희애 분)의 알력 다툼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공격과 수비의 무한 반복이잖아요. 진이 쭉 빠져요. 소리도 지루고 기싸움도 많이 했어요. 지면 안 되니까요. 김희애 덕분에 연기하는 맛을 느꼈어요.”
설경구. 사진 |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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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연극 ‘심바새매’로 시작해 국내 최고의 배우로 손꼽히는 설경구지만, 여전히 그에게 좋은 연기는 숙제다. 새 작품을 만날 때마다 성장보다는 자신이 가진 무기 하나를 내놓는 느낌이라고 한다.
“연기는 제게 해결되지 않는 숙제예요. 해결하려고 바둥대는 인간이 배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한 해가 가면서 작품을 할 때마다 무기 하나를 던지는 기분이에요. 어떤 직업은 3~40년 되면 경지에 오르는데, 작품마다 ‘이젠 무슨 카드를 꺼내야 하나’ 싶어요. 그래도 아직 숙제를 받고 있어요.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게 배우잖아요. 현장에서 계속 재충전하고 싶습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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