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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국회의장과 한국정치

공대생 국회의장, 공대생 대법관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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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출신 지도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다. 학부생 시절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1986년 당시 동독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양자역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한 뒤 백신 접종 등 독일 정부의 방역정책을 놓고 일부 정치인과 국민이 의문을 제기할 때 메르켈은 “나는 과학자”라며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곤 했다. 퇴임을 앞둔 2021년 7월 마지막으로 연 기자회견 당시 그의 앞에는 ‘메르켈 박사’(Dr. Merkel)라고 적힌 단출한 명패만이 놓여 있었다.

세계일보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 우 의장은 연세대 토목공학과, 이 후보자는 포항공대 산업공학과 출신으로 우리 정계와 법조계에서 드물게 보는 공대생 출신이다. 뉴시스·대법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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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도자 대다수가 이공계 출신이다. 한때 권력 서열 1위로 개혁·개방 노선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이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외친 이래 이공계 부상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국가주석을 지낸 장쩌민(江澤民)은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후진타오(胡錦濤)는 수리공학을 각각 전공했다. 시진핑(習近平) 현 국가주석 또한 학부생 시절 화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맹추격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공계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다고 하겠다.

한국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의 유력 대권 주자로 부상했을 때, 그리고 2012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됐을 때 ‘한국 최초의 이공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됐다. 하지만 탄핵소추를 당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면서 첫 이공계 출신 지도자로서 존재감도 희미해졌다. 2017년 이후 한국 정치의 주도권은 법률 전공자들한테 완전히 넘어간 느낌이다. 현 대통령도, 유력한 차기 주자들도 모두 법조인이다.

얼마 전 우원식 국회의장이 취임한 데 이어 27일에는 이숙연 판사가 새 대법관 후보로 제청됐다. 우 의장은 연세대에서 토목공학을 배웠다. 이 판사는 포항공대(포스텍) 산업공학과 졸업생이다. 공대생 국회의장에 공대생 대법관이니, 무척 신선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의사 출신(정의화)도 있긴 했으나 거의 대부분 법학이나 정치학을 공부한 이들이 국회의장을 거쳐갔다. 대법관의 경우 서울대 법대 출신이 독식하는 자리였다. 우 의장과 이 판사가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와 사법에 새 물결을 일으키길 기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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