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너 |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통일 이후 쓰게 된 서독 마르크로 가장 먼저 되너를 사 먹었다고 한다. 기독민주당(CDU) 대표 시절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베를린의 되너 가게에 들렀다. 단골 가게 주인은 과거 인터뷰에서 소스는 항상 빼달라고 했다는 메르켈의 레시피를 전한 바 있다.
되너는 구운 빵 사이에 여러 가지 소스를 바르고 얇게 썬 다진 고기와 양파·양배추·토마토 등 채소를 끼워 넣은 요리다. 1970년대 초반 튀르키예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자국 전통음식 케밥을 패스트푸드로 변형했다. 그러나 독일 사람들은 되너를 베를린에서 개발된 독일 고유 음식으로 여긴다.
'나치는 되너를 몰래 먹는다' |
'되너-튀르키예와 독일의 문화사'의 저자 에베르하르트 자이델에 따르면 1960년대 이미 튀르키예에서 되너가 등장했다. 하지만 튀르키예인들은 길거리에서 음식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아 별로 인기가 없었다. 반면 학생과 이민자가 많은 가난한 도시 베를린은 가성비 좋은 되너에 열광했다.
되너는 50여 년 사이 베를린뿐 아니라 독일을 대표하는 패스트푸드가 됐다. 독일에서 찍은 넷플릭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도 프랑크푸르트의 유명 되너 가게가 등장한다. 한국의 편의점만큼이나 많은 되너 가게들이 전국에서 한해 약 70억유로(약 10조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통계가 있다. 인구 400만명이 조금 안 되는 베를린에서만 하루 40만개가 팔린다고 하니 베를린 사람들은 대략 열흘에 한번 꼴로 되너를 사 먹는 셈이다.
되너 체인점 운영하는 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 루카스 포돌스키 |
하지만 최근 되너에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렵다는 불만이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4유로(약 6천원) 정도였던 되너 가격이 배 안팎 올랐기 때문이다. 베를린은 7유로(약 1만원)를 넘었고 뮌헨은 평균 8.5유로(약 1만2천600원)다. 이 기간 식료품 가격 평균 상승률을 월등히 웃돈다. 그러나 되너업계는 에너지와 재료 가격 상승 때문에 10유로(약 1만4천800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되너 인플레이션'은 최근 독일 정치의 한복판에 섰다. 좌파당은 되너 가격 제동장치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가격을 최고 4.9유로(약 5천900원)로 제한하고 차액은 정부 예산으로 대자는 주장이다. 유럽의회 선거에 사회민주당(SPD) 후보로 출마한 프레데리크 아우구스틴(26)은 청년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며 되너 150개를 3유로(약 4천400원)에 파는 이벤트를 했다.
'모두를 위한 되너' |
올라프 숄츠 총리가 외부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청년들이 "되너 가격 좀 내려달라"고 외친다. 독일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총리로 꼽히는 그는 동영상 메시지에서 "가는 곳마다 젊은이들이 되너 가격 제동장치에 대해 물어 놀랐다"면서도 제도 도입에는 선을 그었다. 청년들은 시장경제와 인플레이션 둔화,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을 언급하는 재무장관 출신 총리의 메시지에 공감하지 못했다.
틱톡에서는 메르켈 전 총리가 되너 가격을 3유로로 돌려놓겠다고 취임 선서를 하거나 3유로보다 비싸게 팔면 형사 처벌하겠다고 발표하는 패러디 영상이 유행이다. 아무리 메르켈이라도 물가까지 마음대로 잡을 수는 없겠지만 지난해 숄츠 총리를 마주한 청년의 고함이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되너 하나에 8유로예요. 푸틴과 얘기 좀 해봐요."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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