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쿠바 수교·상호 대사관 설치 합의…'20여년 노력' 결실
北, '반미' 토대로 니카라과와 밀착…"김정은·오르테가 교감"
쿠바 도심 달리는 현대차 |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남북문제와 관련해 그간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던 중남미에서 치열한 '외교전쟁'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반세기 넘게 북한 형제국임을 자인하던 쿠바가 한국의 손을 덥석 잡으며 국제사회에 놀라움을 준 지 한 달여 만에 이번엔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니카라과가 주한대사관을 일방 폐쇄하고 북한에 공관 설치를 추진하는 등 외교·안보 지형에 변화를 주는 예측불허의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쿠바 한글학교 창문에 붙은 태극기 |
◇ 한·쿠바, '조용히 빠르게 가까이'
29일(현지시간) 쿠바·니카라과 관보 및 한국 외교당국 등을 종합하면 지난 2월 전격 수교한 한국과 쿠바는 전날 상대국에 상주 공관을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
한국 정부 대표단은 24∼27일 쿠바 아바나를 찾아 임시사무소 설치 및 공관 개설 요원 파견 등을 위한 답사 등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쿠바를 겸임국으로 둔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에서는 최근 쿠바 내 영사협력원을 1명 추가해 2명으로 증원하기도 했다.
쿠바 관영 언론에서는 한국과의 수교 기사 이후 후속 절차에 대한 소식을 전한 것은 없다.
앞서 한국과 쿠바는 2월 14일 미국 뉴욕에서 양국 유엔 대표부의 외교 공한 교환을 통해 외교관계를 수립한 바 있다. 당시 정부 내에서는 중남미 현지 대사관을 포함해 협상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쿠바 공산혁명 이듬해인 1960년부터 쿠바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북한의 극한 반발과 방해 공작 가능성을 감안한 조처로 볼 수 있는데, 실제 북한은 지난 2월 이후 쿠바 관련 언급을 극도로 삼가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마철수 주쿠바 북한 대사도 귀임 조치 됐는데, 후임은 알려지지 않았다.
쿠바 아바나에 있는 북한 대사관 |
반면, 쿠바의 경우 한국과의 수교 발표 이틀 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2월 16일)에 연대 성명을 낸 데 이어 이튿날엔 미겔 디아스카넬(64) 대통령이 엑스(X·옛 트위터)에 직접 북한과의 우호 관계를 강조하는 글을 올리는 등 북한과의 관계 '관리'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또 지난 15일 김일성 생일 112주년에는 마치 북한에서 쓴 것 같은 '김일성 일가 칭송' 성명을 내기도 했다.
겉으로만 보면 한국과의 수교 이후 쿠바 내 외교 노선에 큰 변화는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물밑에서는 한국 공관 설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타 민감한 움직임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는 등의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성과는 한국의 적극적인 관계 개선 추진 노력의 결실이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 한국 정부는 20년 넘게 쿠바를 형용하는 '중남미 마지막 미수교국' 꼬리표를 떼기 위해 노력했고,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외교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해 공식 외교부 장관 회담을 갖기도 했다.
경제·통상·문화 등 민간 교류가 이어져 온 것도 수교 성사 자양분이 됐다. 연합뉴스는 양국 수교 직후 한국 언론 최초로 아바나와 마탄사스(한인 이민자 첫 정착지역)를 찾아 K팝을 위시한 현지 한류 인기를 직접 확인한 바 있다.
물 따르는 오르테가 |
◇ 북·니카라과, '점진적으로 어느새 가까이'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를 둘러싼 '일격'을 받은 북한은 중미의 소국, 니카라과와의 밀착으로 맞대응하는 듯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니카라과는 10년 만에 주한대사관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재정난'이라는 표면적 이유와는 달리 북한과의 우호 관계를 의식한 조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니카라과 국제관계 전문가의 분석이다.
2021년 니카라과 대선에 출마해 다니엘 오르테가(78) 대통령에 맞섰던 후안 세바스티안 차모로(53) 박사는 지난 26일 연합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 의도는 너무나 분명하게도 북한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는 오르테가 정권의 제스처"라고 단언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르테가 대통령에게 '양쪽(한국과 북한)에 모두 대사관을 둘 수는 없다'는 의중을 전달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주한대사관 폐쇄·북한 대사관 설치 합의는 두 사람 간 교감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베네수엘라·쿠바와 함께 중남미의 대표적인 '반미(反美) 3국'으로 꼽히는 니카라과는 점진적으로 북한과의 연대 강화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2∼3년 전까지는 상대방과 축전을 주고받으며 다소 '소심한 교류'를 이어오던 양국은 '반미'라는 공통 분모를 토대로 각각의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인적·물적 교류 협력을 꾀하다 결국 지난해 대사관 설치 합의를 끌어냈다.
'동병상련 외교'로도 볼 수 있는 이런 형국은, 비록 단교는 아니어도 한국 정부로선 껄끄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특히 니카라과 정부는 당장 지난 삼일절에도 오르테가 대통령 명의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축전 성격의 연대 성명을 보내는 등 최근까지도 대사관 폐쇄에 대한 구체적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과 니카라과 양국 모두 재외공관 숫자를 줄이는 분위기에서 나온 '공관 설치 결정'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차모로 박사는 "(니카라과의 경우) 지극히 정치적인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며, 이를 "악의 축에 동조하는 움직임"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니카라과에 거주하거나 체류 중인 700여명의 한인들은 당장 별다른 동요 없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현지에는 섬유 업계를 중심으로 30여곳의 한인 사업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니카라과 내 한 교민은 "긴장을 늦출만한 사안은 아니지만, 니카라과에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교민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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