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정치권 보수 진영 통합

李가 ‘채 상병 특검·대통령 가족 의혹’ 제기했지만… 尹은 침묵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尹·李 회담]

29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첫 양자 회담에선 민생 현안은 물론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특검 도입과 이태원참사특별법 등 정치적 쟁점 사안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이 대표는 언론에 공개된 발언을 통해 윤 대통령 가족 등 주변 인사 관련 의혹 규명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 대표는 과도한 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감 표명 등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 변화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은 일부 법리적 문제가 해소되면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 대표가 요구했던 해병대원 특검이나 윤 대통령 가족, 국정 기조 전환 같은 문제는 비공개 회담에서 추가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사실상 이러한 문제들을 외면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해온 정치 쟁점 사안에선 각자의 입장을 확인하는 선에서 회담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날 회담과 관련한 별도의 합의문은 채택하지 못했다.

◇이태원참사특별법·해병대원특검법

이 대표는 모두 발언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제1 책무이고 국가가 곧 국민”이라며 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과 해병대원 특검 도입을 수용해달라고 했다. 이 대표는 “159명의 국민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던 이태원 참사나 채 해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이라고 했다. 이태원참사특별법은 민주당이 지난 1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했으나,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21대 국회 종료 전에 이 법을 다시 표결 처리하는 데 필요한 가결 요건(200석)을 맞추기 위해 여당의 협조를 윤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비공개 회담에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구조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에서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고 논의하면 좋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법리 문제 등이 해소되면 법 제정에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라고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과거 세월호특조위 사례 등을 언급하며 독소 조항이 해소되면 동의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 측은 “윤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해병대원 특검 문제는 비공개 회담 때는 추가로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관련 사안을 수사 중인 만큼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란 입장을 취해왔다. 정치권 관계자는 “양측의 견해차가 명확한 사안이어서 양측 모두 추가로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 대통령 가족 등 주변 인사 의혹

이 대표는 공개 발언 때 “이번 기회에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윤 대통령)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들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가 누구인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선 김건희 여사 문제를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우회적으로 특검 수용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 대표는 다만 비공개 회담 때는 이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김 여사 관련 특검법은 대통령이 이미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에서 재표결을 거쳐 부결된 사안”이라며 “이 대표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입장을 밝힐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국정 기조 변화

이 대표는 공개 발언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 중징계가 이어지고 있고, 보도를 이유로 기자·언론사에 대한 압수 수색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우리 국민께서도 혹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가는 것 아닐까 걱정하는 세상이 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여당이 참패한 총선 민심을 거론하며 “국민은 편 가르기나 탄압이 아닌 소통과 통합의 국정을 대통령과 여당에 주문하셨다”고 했다.

비공개 회담에서 이 대표는 2022년 대선 때 있었던 언론 보도에 대해 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강제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을 거론하며 “이런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다고 민주당은 밝혔다. ‘김만배 허위 인터뷰’ 관련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보고받지 않았다”면서도 “가짜·허위 판단의 문제, 조작일 경우에 대해서는 국가 업무 방해 행위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으로 수사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표는 또 특정 방송사 제재가 이어지는 상황을 직접 거론하며 “대통령께서 알고 계시냐”고 물었다고 한다. 민주당 천준호 당대표 비서실장은 “대통령은 내용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며 “(이 대표가) ‘보고를 잘 받아보시기 바란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언론 활동 위축과 관련한 이 대표 우려에 “명백한 가짜 뉴스 대응은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다”는 취지로 답했고, 언론사 제재를 두고서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은 독립 기구라서 관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국제 관계

이 대표는 공개 발언에서 윤 대통령에게 “강력한 안보 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계신 것을 안다”면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대화와 협력에도 조금 더 관심 가져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치 중심의 진영 외교만으로는 국익도 국가도 지킬 수가 없다”며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의 기조 전환을 요구했다. 독도, 과거사, 핵 오염수 같은 대일(對日) 관계 의제를 거론한 이 대표는 “국민의 자긍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남북 관계와 대외 기조를 두고 의미 있는 대화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에 관한 발언이 구체적으로 있었느냐’는 질문에 “제가 열심히 적었는데 다시 봐도 일본과 관련한 것은 없다”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 쟁점에선 양측이 이견을 확인하는 데 그친 셈”이라면서 “이 대표는 국민이 시청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에게 할 말을 했다는 효과를, 윤 대통령은 의료 개혁 등 일부 민생 현안에 대한 이 대표의 지지를 끌어내는 효과를 본 것 같다”고 했다.

[최경운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