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한국사회와 정치권엔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해결할 과제가 남겨졌다. 망가진 시스템 공천, 비례위성정당으로 대표되는 선거제 문제, 제3정당의 실패, 2030 세대의 정치 소외 등이 드러났다. 경향신문은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불식하고, 건전한 정치 시스템을 정착시킬 길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는 시리즈 기획을 진행한다.
김준우·김찬휘 녹색정의당 상임선대위원장 등이 지난 10일 국회에 마련된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굳은 표정으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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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에서 거대양당의 독점구도 혁파를 외친 제3지대 정당들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범야권은 192석의 압승을 거뒀으나 더불어민주당과의 협력 관계를 강조한 조국혁신당을 제외한 제3정당들은 4석을 얻는데 그쳤다. 20년간 원내를 지켜온 진보정당인 녹색정의당은 당선인을 내지 못하며 원외정당으로 추락했다.
어느 총선보다 거대양당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았고, 무당층이 많았음에도 제3정당의 성적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3정당 시도가 실패한 데는 제도적인 제약도 작용했지만 비전 제시 실패 등 각 정당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윤석열·이재명’ 개혁신당·새로운미래의 실패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이끈 개혁신당은 반윤석열의 선봉에 섰지만 이번 선거에서 3석을 얻었다. 이준석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지만, 개혁신당 정당득표율은 3.61%에 그쳤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끈 새로운미래는 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제3지대 개척에 나섰지만 어부지리로 1석을 얻었다. 김종민 의원이 민주당의 공천 철회로 제1야당 후보가 사라진 세종갑에서 당선됐다. ‘지민비조(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기조하에 선거를 치른 조국혁신당은 온전한 제3정당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결국 양당에 포섭되지 않은 제3당 의석은 4석에 불과하다. 총선 직전까지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약 20%의 무당층이 확인됐던 상황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특히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이 38석, 정의당이 6석이었고, 2020년 21대 총선에선 정의당이 6석, 국민의당이 3석이었다. 어느 때보다 제3지대 열망이 컸지만 제3정당의 지분은 오히려 줄어드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20년 만에 원외로 밀려난 진보정당
원내 진보정당의 명맥을 유지하던 정의당은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합류하지 않고 녹색당과 함께 진보정당 독자노선을 걸었다. 하지만 지역구 당선자를 내지 못했고 정당투표 3% 획득에도 실패해 원외로 밀려났다.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로 진출한 2004년 총선 이후 20년 만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녹색정의당이 의석을 잃으면서 앞으로 한국에서 기후위기, 노동, 여성, 지역 의제를 양대 정당이 담아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며 “의제가 양당에 의해 ‘그린워싱’ 될 수도 있는데 한국 정치의 희망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진보정당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라며 “정의당은 생태, 기후, 노동 의제 등을 가지고 새로운 정당을 재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민주당이 반녹색, 반페미니즘을 지향하면 정의당은 민주당과 싸워야 한다”고 했다.
‘지민비조’ 조국혁신당은 약진
민주당의 ‘우군’을 자처한 조국혁신당만 12석을 얻는 성과를 거뒀다. 조국혁신당은 이번 선거에서 정당득표율 24.25%를 받았다.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26.69%)과 불과 2.44%포인트 차이다.
조국혁신당이 내건 ‘지민비조’ 기조가 유권자들의 투표 포기 심리를 줄였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 소장은 “비명횡사 공천 논란으로 이탈한 소극적 야권 지지층이 조국혁신당 등장으로 투표장으로 나가게 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조국혁신당을 제3정당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박원호 교수는 “조국혁신당은 지역구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기에 민주당 위성정당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양당체제에 반대하면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정당을 제3정당으로 볼 수 있지만 조국혁신당은 그렇지 않다”며 민주당 파생정당으로 규정했다. 박상훈 연구위원도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양당체제를 굳건하게 해줬다”며 “낡은 정치구조를 정당화해주는 역할밖에 못했다”고 지적했다.
구조적 한계인가 전략의 실패인가
전문가들은 개혁신당이든 새로운미래든 거대양당 중심 정치의 새로운 대안을 찾겠다고 했지만 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박원호 교수는 “3지대가 새로운 의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박상훈 연구위원은 “제3지대를 말했던 세력들이 유권자들에게 너무 불성실했다”며 “(거대양당에서) 왜 나왔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비전도 별로 없이 기성정당에 대한 사람들의 식상함, 불만을 건드려서 선거하려는 안이함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는 ‘떴다방’ 정당을 꾸린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여야의 대선주자군에 드는 두 사람은 각각 당내 당권과 대권싸움에서 밀려난 뒤 새 정당을 출범했다. 지속가능한 제3지대를 추구하기보다는 총선이 끝나면 각각 원 정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으로 돌아가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상훈 연구위원은 “두 사람 다 내부 경쟁에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자기 당들을 좋게 변화시키지 못하고 패자가 돼서 밀려 나온 것 같다”며 “안에서 못 싸우면 밖에서도 못 싸운다”고 했다.
다만 두 정당의 실패를 두 지도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제3정당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절대적으로 불리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박원호 교수는 “3지대에 대한 국민적 수요는 있지만, 그런 수요와 선거제도는 무관하게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유권자들은 선거제도가 군소정당들에 불리한 걸 알고 군소정당에 대한 지지를 유보한다”며 “이번 선거에서도 심리적 사표 방지 효과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박상훈 연구위원은 “한국은 대통령 선거가 미치는 힘이 진공청소기처럼 두 정당으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자기 의제나 신념, 다원주의를 지키겠다는 각오가 없이는 제3지대에서 버티기 어렵다. 정주영 회장의 통일국민당, 김종필 전 총리의 자민련,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등 모든 제3지대 정당들이 결국은 스스로 큰 정당으로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3지대의 길은?
제3지대의 미래를 두고는 전문가의 전망은 비관론과 낙관론이 엇갈렸다. 신율 교수는 “대통령제 하에서는 결국 양당제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의원내각제로 바뀌지 않는 한 다당제는 요원하다”고 진단했다. 유력 대선후보가 없는 제3당은 유권자들이 외면하고 유력 대선 후보가 있더라도 제3당은 결국 양당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상훈 연구위원은 “제도가 주는 제약이 크더라도 결국 그 제도를 극복하려는 정치인들의 문제가 크다”며 “다원주의를 지키려는 정치집단이 꾸준하고 성실히 도전하면 제3지대의 가치가 빛을 발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병천 소장은 “양당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한국형 2.5당제로 가야 한다”며 “비례대표 의석을 현행 46석에서 80석으로 늘리고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하면 2.5당제가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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