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아름다움을 버리고 돌아와 나는 울었다' 출간 인터뷰
신작 시집으로 돌아온 최영미 시인 |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초판은 풍자시를 1부에, 연애시를 2부에 배치했었어요. 이번에 개정판을 내려고 다시 읽어 보니 역시 풍자보단 연애더군요. 제겐 연애시가 더 좋았던 거죠. 그래서 연애시를 앞으로 뺐어요."
1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최영미 시인은 시집 '아름다움을 버리고 돌아와 나는 울었다'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번 시집은 최 시인이 2013년에 낸 '이미 뜨거운 것들'의 개정증보판이다. 새로 쓴 시와 과거 미발표작 등 10여편을 추가하고, 제목과 책의 구성도 바꿨다.
최 시인은 1994년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사랑을 꿈꾸면서도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해온 그는 2018년에는 '괴물'이라는 제목의 시로 문단 내 성폭력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해 문학계 '미투' 운동을 선도했다.
그런 최 시인이 사랑 노래를 앞세운 시집으로 독자들을 찾아온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아름다운 건 연애시죠. 아름다운 연애시는 상처받은 가슴에서 나와요. 영어 속담에도 있듯이…."
새 시집에 실린 '편집회의'는 시인의 이런 마음을 대변한다.
'풍자보다 사랑이 좋지/세상을 바꾸는 건 풍자가 아니라 사랑이야.' '산뜻하게 잘 빠진 연애시를/내가 또 쓸 수 있을까/상처를 받아야 시가 나오는데…/실연 좀 당해 봤으면 좋겠다.'
맨 앞에 수록된 시 '팜므 파탈의 회고'는 최 시인이 문학계 미투 운동을 촉발하면서 수년 동안 헤쳐온 고통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나는 뜨거운 사막을 걸었다/모래에 파묻힌/칼날이 반짝였다/나를 노리고 있었다.' '오아시스 호텔에서 수영을 즐기고/수박 주스를 마시고/지루한 소문이 귀걸이처럼 달린/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나갔다.'
이 시는 시인의 경험을 투영한 것을 넘어 그와 같이 어딘가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심상으로 채워져 있다.
최영미 시인의 새 시집 '아름다움을 버리고 돌아와 나는 울었다' |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최 시인은 미술사 강의를 준비하다가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접하면서 이 시를 착상했다고 한다.
새 시집에서도 최 시인의 스포츠 사랑은 여전하다. '팜므 파탈의 회고'에선 그가 즐겨 읽어온 영국 축구 잡지 '월드사커'의 한 구절을 영어 원문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새벽에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를 시청했다고 털어놨다.
"제가 축구를 워낙 좋아해서 한때는 '월드사커'를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샅샅이 읽었어요. 너무 축구에 빠져 사는 것 같아 '내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이젠 이 열정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최 시인은 2019년 1인 출판사(이미출판사)를 설립해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이후 주요 문학 전문 잡지의 원고 청탁이 끊기면서 시를 발표할 창구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과거에도 문단의 '왕따'긴 했지만, 이젠 확실히 왕따가 된 느낌"이라며 웃었다.
예전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기만 하면 됐지만, 이젠 책을 내면 서점에 신간 등록을 하는 것부터 홍보 활동까지 스스로 다 하고 있다. 이번에 낸 시집의 보도자료도 직접 썼다.
"제일 힘든 게 홍보 활동인 거 같아요. 제가 자신을 홍보한다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죠."
가까운 동네 서점엔 직접 책을 배달하는 등 육체노동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어깨가 너무 아파요. 출판사 대표 일을 하면서부턴 몸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니까요. 요즘은 우아하게 글만 쓰는 작가들이 부러워요."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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