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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양심’에 맡긴 목숨…할리우드가 택한 방법은?[죽어가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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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할리우드는 하고 한국은 못하는 것

美 감시 단체 AHA가 인증마크 부여

韓 동물 안위 모니터링 담당자 없어

편집자주‘영화, 드라마 촬영 중 어떤 동물도 죽거나 다치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아는 상식이지만, 지금 우리 촬영장에서는 지켜지고 있을까. 국내 최대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이하 카라)가 최근 미디어 종사자 15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대여 및 섭외한 동물들이 촬영 후 어떻게 됐는지 물었을 때 ‘업체나 반려인에게 돌려줬다’는 답변은 절반에 그쳤다. 나머지는 ‘입양 보냈다’(22%), ‘모른다’(8%), ‘폐사(사망)했다’(3%), ‘자연에 방사했다’(1%) 등으로 나타났다. 또 60% 정도가 '동물들이 촬영 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K-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졌지만, 오늘도 촬영장에서는 2~3초 영상을 위해 동물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동물 보호에 미흡한 우리 촬영장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고 할리우드 선진 사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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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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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 경주 장면이 들어간 영화 ‘벤허’(1925)를 찍는 과정에서 말 100마리 이상이 희생됐다. 영화 ‘빛 여단의 책임’(1936)에서도 말 25마리가 촬영 중 죽었고, ‘제시 제임스’(1939)에 등장한 말 21마리는 절벽에서 떨어졌다. 당시 미국 영화에 말이 단골처럼 등장해 희생되는 일이 늘자 미국 사회가 촬영장 동물 학대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 인도주의 협회(AHA)가 촬영에 동원되는 동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이는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다.
국내 동물 촬영 방식은 할리우드 100년 전 수준
AHA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통과한 작품에 인증마크를 발급한다. 영화 제작사에서 동물 촬영을 앞두고 AHA에 ‘모니터링’을 신청하면 AHA 담당자가 촬영장에 동석한다. 동물이 안전한 환경에서 가이드라인에 따라 촬영되는지 감시하고 지켜지면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식이다.

인증마크를 받은 영화는 상영 전, 후에 ‘어떤 동물도 다치지 않았다’는 자막도 띄운다. 관객은 인증마크가 삽입된 영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거나 없는 영화를 보이콧하기도 한다. AHA의 인증마크가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 관람 여부를 결정하는 ‘가치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영화 오프닝이나 엔딩크레딧에 들어가는 ‘동물이 안전한 환경에서 촬영됐다’는 보여주기식 문구와는 완전히 다르다.

권나미 카라 활동가는 “촬영장에 AHA 담당자가 동석하는 것이 법적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주요 할리우드 제작사 대다수가 신청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할리우드에는 촬영장 안 동물들의 안위를 살피는 전담 담당자가 있는 반면, 국내는 별도의 전담 조직이 없다 보니 모든 게 제작자 손에 달렸다. 권 활동가는 “국내에서는 돈을 받고 촬영장에 동물들을 내어 준 소유주나 대행업체, 훈련사가 동물을 관리한다. 이들 대부분이 현장에서 제작진의 말에 따라 맞춰가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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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감시 단체나 법적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운 없으면 걸린다’는 말이 나올 만큼 동물들의 안전이 허술하게 관리된다. 우리나라도 촬영장 동물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전담 기구·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영화 제작자 A씨는 “동물 촬영을 앞두면 어디에 문의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게 된다. 촬영장에서 60~70명이 넘는 제작진이 시간과 제작비에 쫓기다보면 동물 안위를 살피지 못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엄혹한 콘텐츠 시장에서 리스크 관리는 중요하다. 전담 인력이 촬영장에 동석하는 체계가 구축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형으로 만든 명작 ‘동물촬영 최소화’
미국은 일찌감치 소품이나 CG로 동물 촬영을 대체해왔다. 29년 전 촬영한 할리우드 영화 ‘브레이브 하트’(1995) 사례를 보면, 전쟁 상황에서 말들이 넘어지고 창에 찔리는 등 위험한 장면이 많았지만 촬영하며 죽거나 다친 말이 없었다. 동물과 위험하지 않은 장면을 촬영하고, 제작한 '인형'으로 낙마 장면을 찍었다. 카메라 앵글을 여러 각도로 달리해 실제 말처럼 보이게 연출했다. 위험한 장면은 CG로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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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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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카라가 미디어 종사자 15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실제 동물 대신 CG로 연출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58%를 차지했다.

‘카라’의 전신인 ‘아름품’ 창립 멤버로, 카라의 상임이사(2014~2021년)를 역임한 임순례 감독은 동물 촬영을 가급적 ‘지양’하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문제”라며 “촬영장에서 동물을 대체 가능한 소품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촬영장에서 굳이 동물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말고 특수효과(CG)로 대체하고, 카메라 앵글을 달리해서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촬영 후 CG 작업 시간을 확보하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부 영화에서 동물 촬영을 최소화하고 CG를 잘 활용한 선례를 남기며 변화의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영화 '외계+인'(감독 최동훈) 1·2부에 나온 고양이 우왕·좌왕이는 실제 고양이가 아닌 CG로 구현한 사례다. 지난 1월 종영한 MBC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도 인간이 개로 변하는 모습을 CG로 구현했다. 임 감독은 “훈련으로 연기가 가능한 동물은 많지 않다"며 "구체적인 법제화와 제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촬영장에서 동물을 대하는 제작진의 태도와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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