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레전드 리포터·MC 조영구-가수 이병철, 김민교
같이 있을 때 없던 희망도 생긴다는 세 사람. 왼쪽부터 이병철-조영구-김민교. 매일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고 신이 나 웃는 사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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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어렵고 힘들 때 먼저 연락하고, 밥이라도 사주고, 용돈이라도 손에 쥐어 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 고마움은 헤아리기 쉽지 않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다시 살고 싶은 용기가 생길 수도 있다.
인생 밑바닥까지 추락해보면 주변 사람들의 실체가 보인다고 한다. 평생 가까이 지낼 사람과 정리하고 지워야 할 사람이 갈리는 타이밍이다. 이럴 때 자기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이 있다. 평생 은인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포터이자 MC 조영구(56·영구크린 전무이사)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두 명의 가수 형님들에게 그렇게 불린다. 자신에게는 절대 돈을 쓰지 않는 걸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스스로를 ‘자린고비’라 말한다. 덕분에 연예계에서 ‘짠돌이’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몇 차례 사업에 실패했으나 2008년 ‘조영구 이름에 먹칠 하지 말자’는 각오로 시작한 청소 서비스, 포장 이사 사업은 관련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경쟁력 있는 업체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유독 평생 자기 것을 나눠주고 싶어하는 깐부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트로트 가수 이병철(58), 또다른 한 명은 1994년 국내에 농구 붐을 몰고 온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타이틀곡을 부른 가수 김민교(57)이다.
조영구에게 두 사람은 수학에서 ‘A=B=C’로 표현하는, 같은 집합처럼 여겨지는 존재다. 그런데 이병철과 김민교는 다르다. 자신들은 ‘조영구’라는 전체 집합에 속해 있는 ‘부분 집합’일분이라고 말한다.
“주머니에 10원도 없었어요. 휴대전화만 손에 있었죠. 그 때가 늦가을이었는데 두꺼운 옷 몇 개만 걸치고 공원에 하루 종일 멍하게 있다가 벤치에서 자던 기억 밖에 안 나요.”(이병철)
트로트 가수로 최근 사랑을 받고 있는 이병철의 ‘흑역사’ 시절 이야기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가족과 주변 사람과도 멀어져 세상 그만 살려고 할 때였다. 중년이 된 지금은 욕심이 과하게 생길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도록 마음을 컨트롤해주는 소중한 기억이다.
20대 초반 일본으로 음악 유학을 떠났던 그는 하고 싶은 음악 공부에 노래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돈도 꽤 벌었다. 그룹도 결성했다. 사업에도 뛰어들어 라이브카페를 6개까지 운영해봤다. 결혼도 했고, 아들도 얻었다.
“노숙자가 되니 알던 사람들이 피하더라고요. 그럴 때 오는 비참함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이병철)
이 때 조영구가 인생 밑바닥에 쓰러진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둘은 1994년 무렵 연예인축구단에서 처음 만난 사이. 이병철은 “쫄딱 망해서 갈 데가 없었는데 영구가 전화를 해서 ‘형, 잠깐 집에 와봐’라고 하더라. 그래서 영구 집으로 갔는데 거기서 5년을 눌러 있었다”고 했다.
-돈을 빌려 주는 것도 아니고 집으로 들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가진 것 없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서 일을 할 때, 병철이 형은 일본에서 돈을 조금 벌었거든요. 연예인축구단 초청도 하고, 저한테는 신발도 사주더라고요. 정이 많은 사람이었요. 특히 저한테 잘해줬죠. 그런데 이 형이 삶의 끈을 놓으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마포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을 때였는데 뒤로 안보고 무작정 형보고 들어오라고 했죠.”(조영구)
“같이 살면서 더 친해지려면 서로가 노력을 해야 하잖아요.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받기만 하면 누가 계속 도와주겠어요. 내 집에 사는데, 내가 어디 외출하고 오면 집이 지저분하고, 설거지도 안 돼 있으면 짜증이 나겠죠. 그런데 형이 고마웠어요. 집 청소도 다 해주지, 빨래해 주지…. 행사를 가면 운전도 해주고요. 형을 보고 사람의 관계라는 건 서로 노력을 해야 잘 유지가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냥 형이 우리 집에서 놀기만 하고 밥이나 달라고 했으면 꼴도 보기 싫었겠죠. 병철이 형은 늘 나한테 미안해 했고, 더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보였어요. 감동을 받게 하니 같이 살지, 안 그랬으면 어떻게 5년을 한 침대에서 같이 잤겠어요. 하하.”(조영구)
-그래도 자신을 챙겨주는 동생이 있어서 무척 안심이 되고 뿌듯했겠습니다.
“영구 어머님한테 죄송했죠. 어머니가 영구 집으로 오시면 반찬을 해놓고 가시거든요.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 오실 때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영구도 장가를 가야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고 미안해지더라고요. 안 되겠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오시기 전에 제가 미리 밖으로 나가 있었죠.”(이병철)
“맞아. 저는 형이 집안 일을 해주니까 너무 좋은데, 우리 어머니가 형을 탐탁치 않아 했어요.형을 너무 편하게 생각하니까 장가를 안 간다는 이유였죠. 하하.”(조영구)
거처는 해결이 됐지만 조영구는 이병철의 ‘벌이’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집에만 있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 형도 동생의 마음을 알아 챘다. 고마운 마음에 조영구의 운전 기사 노릇을 많이 했다. 그런 형을 조영구는 띄워주고 싶었다. 동생 덕에 이병철은 초대 가수가 아닌데도 즉석으로 노래를 부를 기회가 가끔씩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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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실패로 오갈 데 없는 노숙자가 된 이병철(오른쪽)을 무작정 자기 집으로 데려온 조영구(왼쪽). 이병철에게 조영구는 평생의 은인이다. 그래서 조영구가 부르면 만사 제쳐놓고 어디든지 달려간다. 유튜브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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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형이 노래를 포기 안했으면 했다. 의지를 보고 싶었다.
“형이 세상과 인연을 끊을 절박한 상황까지 갔으니까, 저로서는 무조건 이 형이 다시 노래를 하도록 돕고 싶었죠. 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작정 돈을 주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돈이 있으면 힘든 시간을 넘길 수는 있지만 잠깐입니다. 궁극적으로 형이 가수로 돈을 벌도록 하는 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행사가 있으면 같이 가자고 하면서 형을 무대에 올렸죠.”
● “돈으로 도와주는 우정은 오래 못 가”
-그러다 형의 음반을 제작해준 거군요?
“내 노래가 있으면 무대에 올라가서 자신감도 생기고, 그러면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죠. 대접도 달라집니다. 이것이 병철이 형의 길이었어요. 그 길을 뚫어주고 싶었어요.”(조영구)
“영구한테 고맙죠. 정말 행사장을 다녀보니 음반이 있고 자기 노래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무명 가수라고 해도 한 50만 원은 받아요. 그런데 다른 가수들 노래만 부르면 몇 곡을 불러도 10만 원도 못받습니다. 잘 아는 영구가 ‘형 음반은 하나 있어야 되겠다’고 밀어 부쳤죠. ”(이병철)
그래서 조영구는 2007년 이병철을 중심으로 3인조 혼성그룹 ‘쓰리쓰리’를 결성하고 앨범 제작을 했다. 제작비를 다 댔다. 본인도 멤버로 합류했다. 같이 무대에 서주면 사람들이 이병철의 이름을 더 알아줄 것 같았다. 앨범이 잘 됐으면 더 좋았겠으나, 일단 동생 덕에 스스로 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문턱을 넘어갈 수 있었다.
동생의 지원으로 열심히 팔도를 누비는데 또 갈 곳이 없어졌다. 조영구가 결혼을 하면서 5년 동안 살았던 집을 나와야 했던 것.
“영구 네가 나 앨범 만들어준다고 1억 4000만 원 까먹고, 그걸 만회하려고 주식 투자했다가 13억 원인가를 날렸잖아. 고마움의 연속인데, 영구가 결혼할 때 막상 내가 갈 곳이 없었는데 또 집을 마련해줬어요. 사실 영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서울 양천 쪽에 반 지하방, 보증금 500만 원, 월 40만 원 짜리 방을 얻었어요. 영구가 ‘형은 집 어떻게 하기로 했냐’고 물어봐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너나 결혼 준비 잘해’라고 했죠. 그런데 영구가 다음날 여의도에 아파트 전세 계약을 했더라고요. 저 때문에.”(이병철)
“형이 갈 데가 없는데 월세방 구했다고 하니 또 마음에 뭐가 계속 걸렸죠.”(조영구)
“저도 영구가 신경 쓰여서 빨리 월세방이라도 잡은 건데…. 신혼인데 아내한테도 잘해야 될 때라 신경끄라고 했죠. 영구는 와이프한테도 얘기 안하고 집을 잡아놨더라고요.”(이병철)
“형. 그 당시 1억 원이면 큰 돈이에요. 하하.”(조영구)
“맞아, 그런데 재밌는 게 또 있어. 원래 영구 마포 아파트로 처음 들어갈 때 사정이 힘든 작곡가 한 명을 데리고 갔어요. 그런데 여의도 들어갈 때는 한 명이 더 붙어 왔었어. 하하. 여의도 아파트는 방 2개에 거실이 있었잖아. 집을 옮기자마자 몇 번 안 본 연예 매니저가 전화가 온 거야. ‘여기 한강고수부지인데 어디 갈 데가 없다고 죽고 싶다’는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또 데리고 들어 왔지. 외면할 수 없더라고. 영구 네가 ‘형, 일단 데리고 와’라고 해줘서 너무 고마웠었어.”(이병철)
“하하. 여의도 집은 형한테 준거니까 알아서 하라고 한 거죠.”(조영구)
“영구가 그렇게까지 배려해주는데 열심히 안 살 수 없겠더라고요. 영구에게 감사하면서 살았죠. 그런데 언젠가 민교가 ‘형, 나 아무리 혼자 해도 안 뜬다. 형이 행사를 많이 다니니까 같이 노래를 해보자’라며 도와 달라 그러더라고요. 별 수 있나요. 영구한테 받은 마음, 나도 써야 했죠.”(이병철)
● 전성기 다시 찾고자 노력하는 형들 … 동생이 평생 도와줘야할 이유
솔로 가수로 ‘미스터리’, ‘보고 싶다 내 사랑’, ‘오빤 강북 스타일’ 등을 꾸준하게 내놓다가 2016년 ‘인생 뭐 있나’는 곡으로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이병철은 2019년 ‘국민 MC’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아바타인 ‘유산슬’과 같이 한 예능방송에서 고속도로 휴게소 공연을 펼치며 존재감을 세상에 다시 한 번 알렸다. ‘고속도로 휴게소 싸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조영구의 도움으로 행사 전문 가수로 ‘홀로서기’는 제대로 했다. 동생 때문에 되찾은 감을 이제는 한 살 터울 동생 김민교를 위해 쓰고 있다.
김민교의 제안으로 둘은 그룹 ‘원 플러스 원(1+1)’을 결성해 한 몸처럼 활동 중이다. 2022년 첫 싱글 앨범 곡으로 발표한 ‘휴게소’는 제법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열심히 달렸다면 쉬어 여기서 놀다 가시게
세상사 피곤하면 쉬어 어서와 맛 좀 보시게
인생 바쁘다고 말하시지만 잠깐 쉼표 한번 찍자고 Oh Oh
웃기만 해도 모자란 세상 인상 풀고 어서옵쇼
내가 그대만의 휴게소 인생길 막힐 땐 휴게소
내 님 달래줄 땐 휴게소 비비비 비비고 지지지 지지고
난 너의 휴게소
서산에 가면 어리굴젓 가평엔 잣 막걸리
광천에 가면 새우젓 사천엔 왕 돈가스
인생 바쁘다고 말하시지만 잠깐 쉼표 한번 찍자고 Oh Oh
웃기만 해도 모자란 세상 인상 풀고 어서옵쇼
내가 그대만의 휴게소 인생길 막힐 땐 휴게소
귀에 쏙쏙 박하는 노래에 맞춰 둘은 고속도로 휴게소 공연에 특화된 가수 컨셉으로 밀고 나갔고, 조영구도 무릎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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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인기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타이틀곡을 불러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휩쓸었던 김민교. KBS 가요 톱텐에서는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골든컵을 수상했다. 유튜브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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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구과 함께 연예인축구단에서 처음 만난 둘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희한하게도 비슷하다. 둘 모두 죽다 살아난 시점이 2005년 말이다.
‘마지막 승부’ 한 곡으로 스타가 된 김민교는 2005년, 11년 만에 가수로 복귀했다가 그해 12월 위암 선고를 받았다. 오랜만에 스타일을 바꾼 세미 트로트로 복귀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마지막 승부’ 에 이은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사느냐 죽느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마지막 승부’로 지상파 방송 가수상도 받았고 잘 나갔죠. 그 당시 병철이 형도 일본에서 좋을 때였거든요.”(김민교)
“희한해. 민교가 암이 걸릴 무렵에 나도 노숙자가 돼 세상에서 떠나려고 했고. 신기하게 인생 궤적이 똑같았어요.”(이병철)
지금도 둘은 엇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본다. 이병철은 “영구가 형들을 아직까지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을 보면, 나나 민교가 여전히 정상적인 인생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철은 “나도 크게 히트를 친 노래는 없고, 3곡 정도가 보통 수준으로 떴다고 말할 수 있다. 민교도 ‘마지막 승부’를 30년 가까이 우려먹고 있다. 하하. 그러다보니 다른 신곡을 발표했는데도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라고 했다.
같은 생각에 김민교는 형에게 SOS를 쳤고, 의기 투합을 해서 ‘원 플러스 원’이 탄생했다. 김민교는“병철이 형과는 에너지가 비슷하다. 그래서 같이 뭉치면 시너지 효과가 크겠다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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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과 김민교가 ‘원 플러스 원’으로 의기투합해 흥겨운 복고풍 트로트곡과 퍼포먼스를 내세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가대표 고속도로 휴게소 공연 전문 가수로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게 꿈이다. 전국 어디든지 팬들만 있으면 둘은 첫 싱글곡 ‘휴게소’곡 안무를 보여주고 흥을 돋운다. 이병철 제공/ 유튜브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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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마지막 승부’ 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건 아닐까요.
“저나 영구가 보는 민교는 그런 성격이 아니에요. ‘나 옛날에 ‘마지막 승부’로 잘 나갔었는데 인정 안 해줘?’ 라며 어깨에 힘주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러니 저랑 ‘원 플러스 원’ 도 하죠. 빨간 양말도 신고 춤도 추잖아요. 고급스럽게 ‘마지막 승부’ 한 곡으로 평생 ‘가오’ 잡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여요. 민교가 혼자 이미지 바꾸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그럼에도 민교의 새로운 노래에 사람들이 귀를 열어주지 않더라고요.”(이병철)
“혼자로는 벅차서 병철 형과 함께 둘이 ‘마지막 승부’를 넘는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해보겠다는 거죠. 형과 둘이 ‘마지막 승부’를 부르면 예전보다 더 힘있게 부르는 것 같아요. ‘내 전부를 거는 거야. 모든 순간을 위해~’ 라는 가사가 지금 저에게 해당되는 얘기인 듯 해요.” (김민교)
‘원 플러스 원’ 의 멤버 김민교(오른쪽)가 행사에서 이병철과 함께 자신의 레전드 히트곡 ‘마지막 승부’를 부르고 있다. 김민교는 “셀 수 없이 부른 노래인데 형과 부르면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엄청난 기운을 받아 소리를 낸다”고 했다. 유튜브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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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벌이를 3분의 1로 또 나눠 챙겨주는 동생
듀엣이 나선 형들이 일을 더 할 수 있도록 조영구는 이제 자기 일도 똑같이 3등분한다. 돈도 똑같이 나눈다.
“영구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행사가 생기면 ‘원 플러스 원’을 끌고 가려고 해요.”(이병철)
“예를 들어 행사 섭외가 왔는데 저한테 300만 원을 준다고 하면, 저는 셋이 가서 다양한 재미를 드릴테니 100만 원씩 받겠다고 하죠. 같이 행사하면 재밌고, 형들도 일하고 돈 벌어서 좋잖아요. 만약에 행사 주최 측에서 저희 비용을 못 맞춰준다고 하면….”(조영구)
“저희가 열심히 해서 팁이라도 받아가겠습니다고 하죠. 하하.”(김민교)
“영구가 가자고 하면 가는 겁니다.”(이병철)
동생이 중심이 되서 죽이 잘 맞는다.
-최근에 보니 무릎 줄기세포 광고에도 세 분이 나오던데.
“공치사가 아니라 이 광고도 저만 찍기로 되어 있었어요. 1억 원을 받기로 했었죠. 그래서 또 똑같이 나눴죠.”(조영구)
● 무연고 어르신 장례 봉사하려는 ‘우리’
세 명의 깐부는 행복나눔봉사단의 이사장과 단장, 부단장으로 바쁜 스케줄에도 봉사 활동은 건너뛰지 않는다. 유튜브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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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서 좋고 잘 풀리니, 다른 사람을 도울 마음도 커진다. 조영구나 이병철은 둘 다 어렵게 자랐다. 평생 노래를 하고 행사해서 돈 버는 것도 좋은데, 봉사로 받은 걸 돌려주고 싶어 한다. 당연히 김민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조영구는 18년 전 ‘행복나눔연예인봉사단’을 조직해 요양원, 경로당, 장애인 단체를 찾아다니면서 피자를 대접하고 위문 공연을 했다. 어르신들이 의외로 피자를 접해본 적이 없어 맞춤 봉사를 했다. 조영구는 피자 회사 모델을 하면서 받아야할 1억 원을 받는 대신 피자를 구울 수 있는 트럭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끌고 봉사를 다녔다.
취약 계층 어르신을 자주 접하다보니 이들에게 꼭 필요한 봉사를 또 하게 됐다.
-앞으로 장례를 치러준다고 들었습니다.
“불우한 어르신들을 보면, 자식들도 먹고 살기 어려우니까 손을 벌리지 못하셔요. 그래서 돌아가실 때가 되도 ‘나는 가족이 없다’고 하십니다. 무연고 어르신이 되는 겁니다. 서울시에서는 무연고 어르신에게 생활지원금이 나옵니다. 서울시에만 무연고 어르신이 18만 명이나 된답니다. 아셨어요?”(조영구)
-무연고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면 장례는 어떻게 치를까요?
“18만 명 어르신은 결국 자식이 장례 치를 능력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르신들이 알아서 자식들을 포기한 거 아니겠어요? 무연고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민간단체가 시신을 인수 받을 수는 없어요. 서울시 관할입니다. 서울시는 장례업체에 돈을 주고 의뢰를 하는 거죠. 그러면 장례업체는 시신을 모아 화장을 하죠. 저희가 양로원 등에 가면 어르신들이 ‘나 죽을 때 장례 치러줄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우리가 장례 지원을 해야겠다고 한 거예요. 이 얘기를 하면 어르신들이 엉엉 우세요. 어르신께서 ‘행복나눔 연예인 봉사단’에 장례 신청을 하고 자식 연락처를 주면, 저희가 전화를 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장례를 대신 치러드리겠다며 연락을 달라고 합니다. 연락이 오면 시신 화장 절차를 잘 밟아서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마무리해드리는 거죠. 연예인 봉사단이 자식까지 불러서 장례를 치러준다고 하면 마음이 편하실 거예요. 평생을 힘들게 사신 어르신들의 가시는 길이라도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이 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죽고 난 이후 장례를 걱정하는 어르신들이 계속 눈에 밟혀요.”(조영구)
다음달 2일 ‘행복나눔연예인봉사단’은 취약계층 어르신 장례 지원을 위한 기부콘서트를 연다. 유튜브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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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행복나눔 연예인 봉사단’은 서울시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장례 지원을 위한 기금 모금, 후원 유치 활동에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조영구는 봉사단의 이사장으로, 이병철은 단장, 김민교는 부단장이다. 다음 달 2일 봉사단은 기부콘서트를 연다. 조영구는 “셋이서 고독사하는 어르신들의 ‘인간다움’을 꼭 지켜드리겠다”고 말했다.
● “영구를 지키기 위해 인기와 신용을 쌓겠다”
연예인 최고의 마당발이라고 알려진 한 조영구에게는 소위 잘 나가는 스타 절친이 많을 것 같다. 이병철과 김민교도 넓은 인맥 중의 한 명으로 볼 수도 있다. 정작 조영구는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조영구는 연예 리포터로 각광을 받던 시절에 오히려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인들만 만나는 전문 MC였다. 리포터가 ‘조영구’여야 인터뷰를 하겠다는 톱스타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픈 속사정이 있었다. 연예 리포터로 할 일을 제대로 하면 할수록 그는 연예인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 조영구만 나타나면 연예인들이 자리 정리하고 피해다녔다고. 이 때부터 자기보다 어려운 동료, 후배들에게 마음을 쓰게 됐고, 순수한 이병철과 김민교의 풀리지 않는 삶이 너무 안타까워 자기 인생으로 끌어 들였다.
-잘 나가는 톱스타들과도 오래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왔을 것 같았는데….
“1994년 SBS 전문 MC 공채 1기로 28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죠. 14번 방송국에 떨어지고 15번째 시험에 합격한 거였어요. ‘한밤의 TV 연예’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는데 1년 동안 안 시켜줬어요. 1년 만에 기회를 받아서 첫 인터뷰를 하고 다시 기회를 안 줘서 힘들어 하고 있는데 3주 째에 서초동 법원으로 오라고 그러더라고요. 그 때부터 연예인들의 마약, 음주운전 등 사건사고 현장을 찾아다녔죠. 해당 연예인들로서는 좋지 않은 뉴스잖아요. 저는 신문에 난 것을 바탕으로 현장을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촬영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톱스타 연예인들 사이에서 제가 연예인들의 뒤를 심하게 파헤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방송에서는 제가 사건사고 내용도 리딩을 하니까 오해는 더 쌓여갔고요. 이후로 연예인들이 저를 만나면 불편해하고 힘들어했어요. 사람들, 연예인들 많은 자리에서 제가 보도한 스타들한테 공개적으로 면박 당한 적도 많고…. 연예 프로 기능상 어쩔 수 없이 한 건데 그러면서 저도 위축이 되고 사람을 피하게 되더라고요”(조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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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구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 리포터로 범접할 수 없는 족적을 남겼지만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아픔이 있었다. 민감한 연예계 사건, 사고 이슈 현장을 쫓아다니다보니 연예계에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 할 일을 했지만 되돌아오는 건 싸늘한 시선이었다. 유튜브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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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고 의지가 되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겠습니다.
“잘 나가는 톱스타들과 매일 지냈다면 어렵고 힘든 사람들 보살피고 도울 여유가 없었을 거에요. 제가 얻은 유명세로 도울 수 있는 착한 동생, 선후배들이 보였어요. 병철, 민교 형 둘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고 착하니까 도와주고 싶었죠.”(조영구)
-본인도 살면서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할 때도 있잖아요. 마음이 복잡한 상황도 생기고요.
“힘든 건 스스로 많이 이겨냈죠. 예전에 주식으로 많은 돈을 날리고 힘들 때, 또 연예계 활동하면서 나에게 누명이 씌워질 때, 누구 붙잡고 술만 마셨어요. 억울하고 분해서. 그런데 몸과 정신이 무너지더라고요. 그 때 알았어요. 힘들 때 자꾸 무엇에 기대면 안 되겠더라고요. 이제는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 산에 가거나 교회 가서 한참 앉아 있곤 해요. 또 지하철을 타고 많이 걷기도 해보면서 마음의 정리를 해요. 결국 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나밖에 없다라는 겁니다.”(조영구)
형들 입장에서는 동생에게 도움도 받았으니, 막상 동생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는 발벗고 뭐든 하고 싶을 거다.
-홀로서기 잘한 동생이 대견하고 대단해보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움이 보이기도 하죠?
“안쓰럽고, 가끔씩 고독하고 외로워하는 모습이 보이죠. 그런데 저나 민교가 영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냥 걱정이 되면 ‘괜찮냐’고 물어보는 정도죠. 영구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민교나 저는 영구가 어디 갈 때 함께 가주고, 재밌게 해주는 것 밖에는 없어요. 사람들이 살다보면 잘 나갈 때 억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만약 영구가 그 상황에 처해있다면 우리가 나서서 대변해주고 바로 잡아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제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고, 인기가 있어야 사람들에게 내 얘기가 설득력이 있을 것 아니에요? ‘조영구 씨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제가 사람들에게 믿게 하려면 신용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을 민교나 제가 쌓아가야죠.”(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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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있으면 하루 하루가 서로에게 감사할 일이 생긴다. 그래서 살 맛 난다는 세 사람. 이병철, 김민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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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모이니까 서로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
“형들에게 감사한 건 ‘제가 뭐 하자’고 했을 때 ‘싫어, 안 돼’ 가 없다는 거예요. 봉사 활동도 그렇고 무조건 형들이 저를 따라준다는 자체가 고맙죠.”(조영구)
“영구야,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네가 알려줬어. 영구하고 지내면서 느낀 게 있어요. 예전에는 사실 세상이 원망스럽고 나한테 거짓말하고 사기친 사람들이 참 미웠거든요. 영구를 보면서 ‘준비를 못한 내 욕심이 컸고, 내 잘못이 크다’는 생각으로 바뀌더라고요. 사업에 망할 때 당시 내 그릇은 작았는데 너무 큰 것을 넣으려고 하니 잘못된 거였어요.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나기를 기다린 거죠. 그래서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더 힘들었던 거고요. 영구 때문에 깨우쳤어요. 그것마저도 감사해요.”(이병철)
형들이 동생을 동생으로 보지 않는다. 관계가 특별하다. 무조건 동생이 중심이다. 형들이 동생보다 살아가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인정한다. 동생보다 모자른 부분이 많다는 것을 오히려 자랑한다. 그러니 동생이 하자는 일에 토를 다는 법도 없다.
막내인 조영구가 중심이 돼 끈끈한 의리로 뭉쳐진 세 사람.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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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런지 이해는 됩니다. 떼어 놓을래야 떼어낼 수 없어 보이네요.
“ ‘영구 사단’이죠. 영구가 가장 최상위에 있는. 하하. 민교나 영구를 높이 평가하는 주변 사람들한테 항상 이런 얘기를 해요. 늘 영구가 우대 받아야 한다고요. ‘영구 덕에 너희들이 이만큼 왔으니까 항상 영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곁에 있자’는 거예요. 영구가 많은 사람을 살린 덕을 발판으로 이 사회에 더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큰 프로그램을 맡았으면 해요. ”(이병철)
“아무도 안 알아주는 봉사까지 같이 나서주는 형들이 저의 진정한 ‘깐부’죠. 민교 형은 ‘마지막 승부’에 걸맞는 불후의 명곡을 불렀으면 해요. 병철이 형도 불멸의 히트곡을 가질 수 있도록 제가 노력을 해야죠. 저는… 형 말대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긴 했는데….”(조영구)
“뭐였는데?”(이병철-김민교)
조영구는 아쉬움을 크게 삼키며 답을 했다.
“전국…노래자랑 MC요…” (조영구)
바람이 이뤄졌다면 ‘전국깐부자랑’ 이 급격하게 ‘전국영구자랑’ 이 될 뻔 했다.
그래도 형들은 동생을 더 띄워 달라고 했을 거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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