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절반인데 역대 총선 법정 제재 벌써 ‘1위’
“정권 비판하면 선거 관련 없어도 제재” 지적
선방위는 어쩌다 ‘폭주·과잉심의’ 논란 불렀나
백선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선거방송심의위원장이 지난달 15일 서울 양천구 방심위에서 열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6차 정기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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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서 일어난 일을 보도한 게 왜 선거방송 심의 규정에 저촉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 회의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 10차 회의에 불려나온 유창수 CBS 제작1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 부장이 이날 출석한 이유는 지난 1월17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방송이 선방위 심의에 올랐기 때문인데요. 선방위원들은 해당 방송 내용 중 패널인 진중권 교수가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비난한 부분이 ‘일방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왜·선(이게 왜 선거방송)’이냐는 유 부장의 의견진술에도 선방위원들은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심의를 이어갔습니다. 선방위는 이날 CBS에 법정 제재를 의결했습니다. 방심위 법정 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에서 감점 사유가 됩니다. 선방위원들은 지난 21일 11차 회의에서 구체적인 수위를 ‘관계자 징계’로 확정했습니다. ‘과징금’에 이어 2번째로 강한 제재 수위입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란?
총선·대선·지방선거 등 주요 선거가 있을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설치되는 위원회입니다. 시청자들의 민원을 받아 선거 관련 방송의 공정성 준수 여부를 심의합니다. 1997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방송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의 전신)에 법정기구화됐고, 2008년 방심위 출범 이후엔 방심위에 속해 있습니다. 위원은 총 9명으로 국회 교섭단체 정당이 각 1명,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명, 방송사·방송학계·대한변호사협회·언론인단체·시민단체가 나머지 위원을 추천합니다.
총선·대선·지방선거 등 주요 선거가 있을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설치되는 위원회입니다. 시청자들의 민원을 받아 선거 관련 방송의 공정성 준수 여부를 심의합니다. 1997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방송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의 전신)에 법정기구화됐고, 2008년 방심위 출범 이후엔 방심위에 속해 있습니다. 위원은 총 9명으로 국회 교섭단체 정당이 각 1명,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명, 방송사·방송학계·대한변호사협회·언론인단체·시민단체가 나머지 위원을 추천합니다.
벌써 법정 제재 1위···이태원도 선거방송?
선방위가 정부·여당 비판 보도에만 법정 제재를 지나치게 자주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 선방위 의결 내역을 집계해보니, 선방위는 11차 회의까지 총 15건의 법정 제재를 내렸습니다. 임기가 절반가량 지났는데 벌써 역대 총선 선방위 법정 제재 건수 1위를 기록했죠. 특히 역대 2회에 그쳤던 ‘관계자 징계’가 이번 선방위에서는 무려 9회나 쏟아졌습니다.
현재까지 이번 선방위에서 법정 제재를 받은 보도 15건은 모두 정부·여당에 불리한 보도였습니다. 제재도 특정 방송사에 쏠려 있습니다. 15건 중 10건은 MBC에 대한 제재였습니다. YTN과 CBS가 각각 2회, cpbc가 1회를 받았습니다.
제22대 선거방송심의위원회 법정 제재 목록 (3월21일 11차 회의까지) |
이번 선방위의 압도적인 법정 제재 건수가 단순히 ‘민원이 많이 접수됐기 때문’일까요. CBS 유 부장의 말처럼, 선방위가 선거와 관련없는 보도까지 무더기로 법정 제재를 의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여당에 불리한 보도들이 선거와 관련 없는데도 계속 안건에 올라간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11차 회의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뉴스를 다룬 cpbc라디오 <김혜영의 뉴스공감> 1월30일 방송분이 법정 제재인 ‘주의’를 받았습니다. 패널이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만 재판에 넘겨지고 아무도 참사에 대해 책임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민원이 제기됐습니다. 김 전 청장 외에도 23명이 기소되고 6명이 구속됐으니 패널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고 민원인은 주장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비판한 것도 민원 사유가 됐습니다.
지난 21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열리는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 앞에서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관계자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박채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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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 측은 의견진술에서 “핵심 피고인에게 첫 선고가 내려진 것은 2월14일로, 방송일인 1월30일 시점에 ‘책임진 사람은 없는 상태’라는 게 사실관계 왜곡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선거와 무관한 사회적 참사에 대한 국민적인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내용이었다”고 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선방위가 이 안건을 논의하는 것을 규탄했습니다.
이외에도 김건희 ‘여사’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이 심의에 올라 행정지도를 받았습니다.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MBC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은 법정 제재를 받았고, 정부가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이라 언급한 것을 비판한 발언을 내보낸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는 행정지도가 의결됐습니다. 선방위원들의 판단대로라면 김건희 ‘여사’ 호칭과 민생토론회, 북한과의 갈등 등을 다룬 보도는 모두 ‘선거와 관련 있는 보도’인 셈입니다.
“우리가 판단하겠다”···‘확대해석’ 지적도
선거와 관련 없어 보이는 안건들이 심의에 올라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이번 선방위원들은 ‘사실관계가 틀리지만 않으면 모두 안건화하자’는 입장입니다. 선거 관련성 여부는 위원들이 판단하겠다는 겁니다.
“잠깐 부연설명 드리면 저희가 지난 차수 선방위까지는 민원인의 민원 내용이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관계가 없는 내용은 위원님들 논의를 거쳐서 양해해 주시면 사무실에서 자체 처리를 했었습니다.”(이성우 방심위 지상파방송팀장)
“사실관계가 명확히 아닌 게 아니면 올려주세요.”(최철호 위원)
“그것(심의 여부)은 저희가 판단하겠습니다.”(백선기 위원장)
“사실관계가 명확히 아닌 게 아니면 올려주세요.”(최철호 위원)
“그것(심의 여부)은 저희가 판단하겠습니다.”(백선기 위원장)
- 1월25일, 제22대 총선 선방위 제4차 정기회의 회의록
선방위원들이 선거 관련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주 큰 절차적 하자는 아닙니다. 사무처가 민원의 선거 관련성 여부를 판단하게 되면 공정성 등에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처도 ‘심의권을 가진 위원들이 양해해 준 경우에 한해서만’ 자체 처리했던 것이죠. 방심위 관계자도 “(안건화에 대한) 위원들의 판단이 선방위마다 다르긴 했다”고 했습니다.
실제 선방위원들이 선거와 아주 무관한 안건을 심의하지 않은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2월29일 8차 회의에는 국민의힘 시의원의 성추행 사건을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 1월16일 방송분이 안건으로 올라갔는데요. 민원인은 이날 뉴스에 함께 나온 ‘경비원 폭행범을 잡았다며 사적제재를 가한 유튜버’ 관련 보도도 묶어서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백 위원장과 여야 추천 위원들 모두 “이걸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의견을 모았고, 선방위는 해당 보도에 대한 판단은 제외한 채 심의를 이어갔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 같은 기준이 ‘류희림 청부민원 의혹’ ‘이태원 참사’ ‘김건희 여사 호칭’ ‘민생토론회’ 등 보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정부·여당 관련 보도에 대한 이번 선방위원들의 자의적 판단이 편향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태원 보도는 선거와 무관한 이슈’라는 cpbc 측 주장에 백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사안에 대해 심의하는 게 아니라, 패널인 김준일 뉴스톱 에디터의 발언이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심의는 프로그램 자체의 편성, 구성, 패널과 사회자의 역할을 지적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MBC의 ‘유튜버 사적제재’ 관련 보고 안건 심의를 건너뛰었을 때와는 결이 달라진 겁니다.
백선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선거방송심의위원장과 위원들이 지난달 15일 서울 양천구 방심위에서 열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6차 정기회의 시작 전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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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현업단체 등은 선방위원들이 무리하게 자의적 심의를 한다고 비판합니다. 이진순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는 “선거방송과 무관한 시사현안들에 대해서 모두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치면 우리 일상의 이런저런 사회적 사안은 모두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하기 시작하면 선거와 무관한 일은 없다. 자의적 권한 남용이고 월권이며 법적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지부장은 “현행 선방위는 선거방송에 해당되지 않는 방송에 대한 심의를 하는 권한남용 심의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선거방송심의 사례에 비춰 너무나 과도한 제재를 내리는 과잉심의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언론계에서는 선방위원 구성 자체가 편향됐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습니다. 보수 성향인 종합편성채널·언론단체 등에 심의위원 추천권을 몰아줬다는 비판입니다. 이 대표는 “이전까지는 학계·현업단체 등 추천은 전통적으로 대표성이 인정되는 곳에서 받아 왔다”며 “이번에 한국기자협회 대신 추천한 한국방송기자클럽은 대표성 있는 단체라고 하기 어렵고, 공정언론국민연대는 신생 단체다. 특정한 정치색을 맞추기 위해서 추천 단체를 그렇게 설정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습니다.
방통위도 ‘감점 강화’ 예고···“위협효과”
선방위의 이 같은 ‘무더기 법정 제재’는 제재를 받은 방송사들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법정 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에서 감점 요인인데요.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심위가 ‘공정성·객관성 위반’이라고 평가한 방송사들의 감점을 올해 더 확대하겠다고 지난 21일 밝혔습니다. 제재 빈도는 늘고, 효과는 더 강력해진 겁니다.
☞ 방통위 “허위·왜곡 방송 제재 강화”···정부 비판 언론 위험해지나
https://www.khan.co.kr/national/media/article/202403212114001
이 대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헌적 판정들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낸 방송들이 알아서 기고 몸사리기를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제도적인 협박·위협 효과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방심위의 제재들이 법원에서 연달이 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있는 점은 변수입니다. 지난해 11월 뉴스타파의 ‘윤석열 수사 무마 의혹’을 인용보도한 MBC·KBS·YTN·JTBC 방송사 4곳에 내린 방심위의 과징금 제재는 모두 효력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전문가들은 선방위가 ‘합의제’의 취지에 맞게 더 신중히 심의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제21대 총선 선방위원이었던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선방위가 (일방적·자의적으로) 어떤 보도든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이라고 판단하려 들면 누구라도 다 걸려들 수 있고, 그렇다고 규정을 엄격하게 두면 작은 물고기까지 다 걸려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 부작용을 막고자 합의제 위원회를 구성한 것인데, 해석의 문제에 있어 신중함이 결여된 탓에 과잉규제나 표적심의 논란을 가져오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습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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