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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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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수퍼스타에 푹 빠졌다…아이돌 콘서트 방불케한 농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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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필리핀에서 뜨거운 인기를 자랑한 정관장의 필리핀 국가대표 가드 아반도. 사진 정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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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석에서 제 이름만 외치더라고요. 신나서 힘든 줄도 모르고 뛰었습니다."

프로농구 안양 정관장의 가드 렌즈 아반도(26·필리핀)가 고향 팬 앞에서 코트를 누빈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정관장은 지난 10일 필리핀 세부의 라푸라푸 훕스돔에서 열린 2024 동아시아수퍼리그(EASL) 3-4위 결정전에서 78-76으로 이겼다. 지난해 대회 초대 챔피언 정관장은 대회 2연패는 실패했지만, 3위(상금 약 3억3000만원)를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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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크슛을 성공한 아반도(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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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반도는 이날 경기엔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결장했다. 대신 지난 8일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서울 SK와의 4강전에 출전해 11점 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세부의 한 호텔에서 만난 아반도는 "고향에서 경기 중계를 본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은 격려 메시지를 받아서 뿌듯했다. 필리핀 팬들의 성원에 더 좋은 경기력으로 화답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고 밝혔다.

농구가 국기인 필리핀에서 자국의 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아반도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정관장 선수단이 경기장에 도착하는 순간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수백여 명의 팬들이 아반도를 보기 위해 몰려 들었다. 아반도가 공을 잡으면 관중석은 열광했다. 마치 아이돌 콘서트를 보는 것 같았다. 반면 SK 선수가 아반도에게 반칙을 범하면 야유가 쏟아졌다. 선수단 호텔에서도 아반도를 보기 위해 무작정 기다리는 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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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에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는 아반도(왼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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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반도가 필리핀에서 큰 사랑을 받는 건 그가 '흙수저' 출신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북부의 작은 해안 도시 산토 토마스에서 나고 자란 아반도는 늘 가난과 싸웠다. 운동화를 살 돈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동네였다. 당연히 농구화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웠다. 아반도는 "어린 시절 나는 입고 사는 것보단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우리 가족은 음식의 간을 맞추는 소금조차 살 돈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타고난 것도 있었다. 폭발적인 탄력을 이용한 점프였다. 체공 시간이 워낙 길어 주변에선 '하늘을 나는 것 같다'는 칭찬을 받았다. 덕분에 그는 중학교 때까지 농구와 함께 배구와 육상 단거리 선수를 병행했다. 아반도는 "15세 때부터 덩크슛을 하게 됐다. 키는 1m75㎝에 불과했지만, 점프력이 워낙 좋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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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을 이용한 높은 점프로 레이업을 성공하는 아반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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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반도를 응원하는 필리핀 팬. 사진 EA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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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신체 능력에 노력을 더했다. 그는 팀 훈련이 끝난 뒤엔 길거리에서 3대3 농구를 하며 현란한 개인기를 연마했다. 특급 유망주로 성장한 아반도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여러 후원사의 지원 속에 필리핀 대학 농구의 특급 스타로 성장했다. 2022년엔 필리핀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아반도는 "나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밑바닥부터 최정상인 국가대표까지 됐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필리핀 국민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반도는 대학 졸업을 앞둔 2022년 여름 적잖은 아시아권 프로팀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 그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정관장 유니폼을 입고 2022~23시즌 KBL에 데뷔했다. 아반도는 "활달한 성격이 아니라서 해외에서 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수준 높은 선수들과 부딪혀 보고 싶은 승부욕에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의 불시착' '더킹' 등 한국 드라마와 블랙핑크의 노래를 들으며 한국행을 준비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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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반도는 KBL 데뷔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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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KBL에 연착륙했다. 데뷔 시즌인 2022~23시즌 아반도는 정관장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통합 우승에 힘을 보탰다. 1m88㎝의 비교적 작은 키에도 폭발적인 탄력으로 덩크슛을 종종 선보이며 정관장의 '돌격대장'으로 활약했다. 특히 2002~03시즌 이후 20년 만에 국내·외국인 통합으로 열린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화려한 윈드밀 덩크(점프해서 공을 한 바퀴 돌린 뒤 덩크)를 선보이며 2m대의 거구들을 제치고 '덩크왕'에 올랐다.

블록슛 부문에선 당당히 4위(경기당 0.9개)를 차지했다. 1~3위는 모두 2m급 빅맨이었다. 아반도는 "큰 키가 아니여서 영리한 농구를 하려고 노력한다. 덩크든 블록슛이든 탄력보단 타이밍이 중요하다. 프로 무대에서 목표로 삼았던 챔피언 반지를 낀 나는 행운아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 시즌은 지난해와 달랐다. 주축 멤버가 떠난 정관장은 정규시즌 9위에 머물러 있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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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타 덩크왕을 차지한 아반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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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반도는 시즌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고양 소노전 도중 허리뼈 골절, 손목 인대 염좌, 뇌진탕 등 진단을 받아 2개월 넘게 치료와 재활에 몰두했다. 이번 대회 직전 경기였던 지난 3일 소노전을 통해 복귀전을 치렀다. 그는 "고향 팬 앞에 서야 한다는 생각만을 하며 힘든 부상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아반도의 코리안드림은 명확하다. 그는 "여기까지 오는 데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이젠 그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다. 타지에서 활약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필리핀 국민이 큰 에너지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세부(필리핀)=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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