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재단-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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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88의 사회를 넘자’
[4] 이름만 ‘자유로운 전문직’
신인 드라마 작가의 고충을 그린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한 장면. 기사 내용과는 관련없음. /tv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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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신인 작가 A씨는 지난 2021년 넷플릭스와 tvN 드라마를 만든 한 제작사와 12부작 드라마 극본을 집필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을 2년 6개월로 잡고 계약금도 약 1500만원 받았다. 하지만 최근 이 돈을 모조리 돌려줘야 했다. 계약 기간 내에 드라마를 편성할 곳을 찾지 못하면 극본의 저작권을 제작사에 양도하거나, 계약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편성이 되느냐 마느냐는 내가 노력해도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게 불공정한 계약이라는 걸 알았다”면서도 “업계 관행이라고 했고, 항의하면 계약을 못 하게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불공정한 계약 탓에 편성이 불발되고 나서 저작권을 지키려고 빚을 내 계약금을 돌려주는 작가도 있다”고 전했다.
‘K드라마’가 해외 곳곳에서 이름을 떨치면서 그 작품을 탄생시킨 국내 방송 작가들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수와 달리 다수의 신인 작가들이 관행이란 이름으로 불공정한 상황에 처한 사례가 적지 않다. 계약서에 제작사에만 유리한 조항을 넣은 뒤 신인 작가들에게 이를 사실상 강요하는 게 대표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런 일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2017년 방송 작가 표준 집필 계약서를 마련했으나 현장에서는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또 다른 신인 작가 B씨는 디즈니+ 드라마를 만든 제작사와 회당 500만원에 16부작 계약을 맺고 극본을 집필했다. 4회분 2000만원을 받았지만, 그 후 제작사는 보름에 한 번꼴로 70분짜리 2회 분량을 다시 써오라고 하는 등 약 2년 반 동안 수십 차례 수정만 요구했다. 그는 “진도는 나가지 않아 돈은 더 받지도 못한 채 수정만 하다 건강이 나빠졌다”며 “2000만원을 받고 2년을 버티자니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계약을 중도 해지했다”고 했다.
업계에선 최근 제작비가 증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편성이 되지 않는 드라마가 많아졌다고 전한다. 이 피해를 고스란히 프리랜서 작가와 스태프가 감당해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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