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에 포함된 송갑석 의원(앞에서 넷째 줄 가운데)과 하위 10%를 통보받은 윤영찬 의원(앞에서 셋째 줄) 등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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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정당’이 아니라 ‘멸문 정당’으로 가고 있다.”
27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를 마친 뒤 친문재인계(친문) 핵심인 홍영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날 선 감정을 토해냈다. 이날 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가 친문계 인사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사실상 공천 배제(컷오프)하자, ‘이재명 지도부가 화합은커녕 친문계를 멸하려 한다’고 반발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딴 ‘명문 정당’은 민주당의 계파 간 화합을 상징하는 조어다. 홍 의원은 의총에서 이 대표를 향해 “남의 가죽을 그렇게 벗기다간 손에 피칠갑을 하게 된다. 당신 가죽은 안 벗기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앞서 공천 관련 반발에 이 대표가 “혁신은 원래 가죽을 벗기는 것”이라고 말한 걸 비판한 것이다.
2시간 40여분간 진행된 이날 의원총회에선 27명이 발언했는데, 다수가 임 전 실장의 공천 배제를 도화선 삼아 지도부의 공천 관리를 성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의원은 “임 전 실장 공천 배제는 ‘명문 정당’도, 통합도 깨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여러 의원에게서 나왔다”고 전했다. 박병석 의원(6선)은 “정권은 유한하고 권력은 무상하다”며 “바른길로 가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의총에 참석했으나, 듣기만 했을 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의총 뒤에도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의원님들께서 여러 가지 의견을 주셨는데, 당무에 많이 참고하겠다”고만 했다.
친이재명계(친명) 지도부는 그간 ‘검찰 정권 출범 책임론’, ‘공천 신청이 불가능한 전략 지역’ 등 다양한 방식과 논리로 임 전 실장의 서울 중·성동갑 공천을 꺼려왔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출신인 임 전 실장이 출마할 경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운동권 청산론’에 갇혀 수도권 판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반면, 이날 중·성동갑에 전략공천된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20대 총선(2016년) 때 보수 강세지인 서울 강남을에서 당선된 점을 고려했다는 게 당의 설명이다.
하지만 비주류는 임 전 실장 공천 배제가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결정’이라고 본다. 당내 86그룹·친문 인사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임 전 실장의 정치적 재기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 말곤 공천 배제의 명분을 찾을 수 없단 것이다. 한 비주류 의원은 “임 전 실장을 뺀 것은, ‘성동은 져도 상관없는데 당신이 당선되는 꼴은 못 본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중·성동갑은 집값 상승 등으로 여당 지지세가 올라간 ‘한강 벨트’의 한곳인 까닭에 중량감 있는 ‘필승 카드’를 뽑아 써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임 전 실장은 홍익표 원내대표 이전 16∼17대 국회에서 해당 지역 국회의원을 지낸 데다 대중 인지도가 높은 까닭에 전략적 안배에 맞춤한 인사로 전망됐다.
당 안에선 끝없는 공천 파동이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재선’을 노리는 이 대표의 불안감 탓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총선 뒤 이 대표와 각을 세울 수 있는 비주류의 중심이 될 만한 인사는 미리 ‘싹’을 자르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임 전 실장은 물론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를 받은 송갑석 의원(광주 서갑), 이날 지역구인 서울 성북을이 전략공관위로 이관된 기동민 의원이 모두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된다. 전략공관위에선 기 의원을 공천배제할 수도 있고 경선에 붙일 수도 있다. 기 의원은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는데, 함께 기소된 친명계 이수진 의원(비례)은 이미 비명계 윤영찬 의원 지역구(경기 성남중원)에서 경선이 결정돼 형평성 논란도 있다.
이날, 현역 평가 하위 10%에 포함된 박영순(초선·대전 대덕) 의원은 탈당해 이낙연 공동대표가 이끄는 새로운미래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설훈(5선·경기 부천을) 의원은 28일 탈당을 예고했는데, 무소속 출마와 새로운미래 합류를 저울질 중이다. 그밖에도 하위 평가를 받았거나 공천 과정에 반발하는 일부 비주류 의원들은 2008년 총선 때 ‘공천 학살’로 무소속 출마했다가 당선 뒤 복당한 ‘친박연대’ 모델을 고민 중이다.
임종석 전 실장은 이날 선거운동을 전면 중단하고 참모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28일 기자회견을 예고한 임 전 실장이 탈당을 고민 중인 현역 의원들과 결합한다면, 민주당은 ‘분당’ 수준의 진통을 겪을 수도 있다. 공관위가 아직 경선 여부를 발표하지 않은 이인영(4선·서울 구로갑), 전해철(3선·안산 상록갑), 홍영표(4선·인천 부평을) 등 친문계 중진 의원들의 거취가 반발의 진폭을 결정할 마지막 열쇠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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