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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클로즈업 필름]더럽게 찬란한 청춘이여…'오키쿠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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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오키쿠와 세계'만큼 더러운 영화는 없다. 똥으로 시작해 똥을 보여주다가 똥으로 끝나버린다. 당연하게도 구역질과 불쾌로 채워져야 할 90분이지만, 사카모토 준지(阪本順治·66) 감독의 이 이상한 영화는 산뜻하고 유쾌하다. 게다가 종종 아름답기까지 하다. 말하자면 '오키쿠와 세계'는 밑바닥을 뒹군다. 몰락이 있고 굴종이 있고 발악이 있고 비통이 있으며, 천하고 비루하고 박복하다. 그래도 이 영화는 삶이라는 것, 그 중에서도 청춘이라는 것엔 절망만 있진 않은 것 같다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시간은 흐르고 삶은 제자리인 것 같지만, 세계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우린 아직 젊다. 그래서 이 말이 자꾸 입안을 맴돈다. "청춘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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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쿠와 세계'는 시(詩)다. 몰락한 사무라이의 딸 오키쿠(쿠로키 하루), 인분을 사고 파는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 폐지를 모아 팔다가 야스케를 따라 인분 장사에 합류한 츄지(칸 이치로)의 이야기엔 명료한 스토리가 없다. 영화는 이들이 지나가는 2년여 시간 중 일부를 떼어내 이어 붙인다. 서장과 종장 사이 7개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단일하게 연결되는 사건들을 보여주고 연결하는 대신 사건 이후와 삶의 찰나에, 바뀌어버린 마음과 잠깐의 대화에, 말로는 표현되지 못한 채 몸으로 발산되는 감정에 주목한다. 익숙하지 않은 화법이지만 정교하기에 이 시는 어렵지 않게 관객 마음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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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당황스러운 표현일지 모르나 '오키쿠와 세계'는 똥의 영화다. 이 작품에서 똥은 밑바닥 인생을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너절한 청춘을 상징하는 것 같다. 생존이란 손에 똥을 묻히는 것도 모자라 온몸에 똥을 뒤집어 써야 할 정도로 시급한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고, 똥거름을 통해 자라난 농작물이 우리 입에 들어가 다시 똥이 돼 나오는 순환을 보여줌으로써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야스케와 츄지는 항상 똥 지게를 지고 뛰어다니고, 사람들은 다들 똥을 싼다. 야스케와 츄지와 오키쿠 세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변소 앞이었다. 오키쿠 역시 똥을 싼다. 그래서 오키쿠는 츄지의 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이런 나라도 괜찮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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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쿠와 세계'는 틀림 없는 청춘 영화다. 19세기 말 일본이 배경이고 사무라이나 인분 등이 소재로 쓰여 생경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이 작품이 그려내는 캐릭터는 청춘이라는 시기에만 담겨 있는 감각을 뿜어내는 데 거침이 없다. 오키쿠처럼 변할 수 있는 것도 청춘이기 때문이고, 츄지처럼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려는 것도 청춘이기 때문이며, 야스케처럼 꿈을 잃지 않는 것도 청춘이기 때문이다. 고달픈 삶이지만 웃을 수 있고 그 가운데서도 사랑을 꽃피우려 하며 속내를 꺼내보이는 게 어설픈 것도 그들이 청춘이기 때문이다. 발이 꽁꽁 얼어붙어도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려 하는 것도 청춘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오키쿠와 세계'는 흑백 영화인데도 찬란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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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분위기와 극의 분위기 그리고 이야기의 맥락을 빠짐 없이 반영해 보여주는 '오키쿠와 세계'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가 해야 하는 일이 뭔지 알 수 있다. 세 사람이 변소 앞 처마에서 비를 피하는 풍경, 강변을 걷는 야스케와 츄지의 걸음 걸이, 츄지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오키쿠의 얼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으로 인분을 쓸어 담는 야스케의 의지가 담기 그 모습들은 아름답게 보여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게 아니라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특히 츄지가 오키쿠에게 마음을 전하는 시퀀스는 앞으로 고백을 얘기할 때 수도 없이 회자될 장면이 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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