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맵과 네이버지도 등에 ‘독립운동사적지’ 등록을 하고 있는 배달라이더 안욱현씨가 1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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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차 배달라이더 안욱현씨(36)의 스마트폰 포털 지도는 음식점 대신 독립운동 사적지 표시로 가득하다. 서울에 저장된 곳만 해도 1500여 곳에 이른다. 서울 중구 정동길에만 어서각 터, 관립 법어학교 터, 보구여관 터, 정동교회 이필주 사택 터 등 10여 곳이 나타났다. 안씨는 지난 1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역사가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면 좋겠다”며 “포털 지도에서 맛집뿐 아니라 사적지를 찾아다니는 날을 꿈꾼다”고 했다.
답사에서 길 잃고 헤맨 뒤 지도 만들겠다 결심···사상계 터 동판 사라진 것 신고도
배달라이더 안욱현씨가 자신의 포털 지도 플랫폼에 저장해놓은 서울 중구 정동길 인근 독립운동 사적지(왼쪽). 등록된 사적지 조회수와 좋아요 등 알림 서비스(오른쪽). 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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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 독립운동 사적지를 본격적으로 기록한 것은 지난해 1월 역사 답사를 다녀온 뒤부터다. 평소 역사 다큐멘터리 등을 챙겨보며 실제로 가보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막상 잘되지 않았다. 그는 “밀양의열단 답사에서 (독립운동가) 황상규 묘소를 가보려고 했는데 주최 측에서 알려준 주소에는 웬 구치소가 있더라”며 “내비게이션은 구치소를 통과하라고 하는데 구치소는 출입이 통제되니 꼬박 30분을 헤맸다. 처음부터 ‘황상규 묘소’로 등록돼 있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 느낀 난처함이 지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독립기념관·국가보훈부 홈페이지 등에서 국내외 독립운동 사적지 주소를 모았다.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배달일을 하며 틈틈이 현장 사진을 찍었고, 카카오맵· 네이버 지도·구글 맵에 ‘장소 등록’을 신청했다. 안씨는 “홈페이지 주소를 캡처해 등록할 때도 있고 사진을 찍기 위해 직접 현장에 갈 때도 있다”면서 “등록한 사적지 사진 조회 수가 1000명이 넘었다는 알림을 받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1월부터 13개월여 동안 카카오맵에 등록한 독립운동 사적지는 475곳. 많게는 하루 20곳을 등록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의 이한열 피격 현장, 종로구 우미관 터, 한강 인도교 폭파 현장 등 역사의 현장을 지도에 남겼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할 때는 고 김오랑 중령 흉상을 등록하기도 했다.
사적과 기록물이 사라진 현장도 발견했다. 안씨는 지난해 11월19일 배달을 하다 보신각 인근의 ‘사상계 터’ 동판이 없어진 것을 발견해 장준하기념사업회 등에 알렸다. 알고 보니 서울시가 수도관 공사 때문에 표석을 치운 것이었다. 안씨는 “사적지를 지도에 새겨놓으면 감시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신청 절반은 반려···반려 사유 제대로 알 수 있었으면”
카카오맵과 네이버지도 등에 ‘독립운동사적지’ 등록을 하고 있는 배달라이더 안욱현씨가 1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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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함만 있는 건 아니다. 등록 신청한 장소 중 절반은 반려됐다. ‘내부 지침’ ‘정보 부정확’ 같은 모호한 사유들이었다. 카카오맵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터나 지명은 이용자가 많이 검색하거나 이용자에게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만 예외적으로 장소를 생성한다”고 설명했다. 안씨는 “포털이 역사를 알리는 표시에 왜 이렇게 야박할까 하는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고 했다.
지난해 논란이 된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흉상은 등록이 두 차례 반려됐고, 혜화동 로터리 여운형 서거지도 등록이 안 됐다. 안씨는 “지도 앱 담당자와 직접 만나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서울에 남기고 있는 기록을 전국과 해외에까지 넓히기 위해 지난해 9월 ‘지도에 역사를 새기는 사람들’이란 모임도 만들었다. 현재 활동 중인 회원 10여 명은 카카오톡방에 각자 자신이 등록한 사적지 링크를 공유하고 있다.
안씨는 “보훈부 홈페이지에 독립유공자 묘소 찾기 항목이 있는데 전체 1만7800여명 중 절반 정도밖에 묘소를 찾지 못했다”며 “보훈부와 국민들이 협력해 나머지 절반을 모두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독립운동가 묘소를 다 방문해보는 게 버킷리스트”라고 했다. 보훈부와 카카오맵 등을 설득해 사적지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일도 해보려 한다. 안씨는 “이미 배달의민족과 고용노동부가 함께 만든 ‘전국 이동노동자 쉼터’라는 사례가 있다”며 “보훈부가 현충 시설 데이터를 제공하고 포털이 이를 반영하면 사적지 지도를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맵과 네이버지도 등에 ‘독립운동사적지’ 등록을 하고 있는 배달라이더 안욱현씨가 1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2.14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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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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