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뒤로 밀리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
최근 발표된 미국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으며, 고용지표에서도 시간당 평균 임금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유가 역시 이달 들어 상승세로 돌아서며 물가 불안을 키우는 중이다. 우리나라 통화정책이 미국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는 만큼 시장에서는 올해 2분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키워왔으나, 이렇게 경제 지표가 계속 경로에서 벗어난다면 앞으로 불확실성은 더 심해질 수 있다.
미국의 금리인하 시점에 대한 기대는 꾸준히 미뤄지고 있다. 지난달 중순만 해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3월 금리인하 기대가 80%를 넘어섰으나, 이후 연준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과 다수 고용지표 결과 발표로 지난주에는 20%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에 인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5월로 이동했지만, 이 역시 미국 1월 CPI 발표 직후 뚝 떨어져 현재 시장은 5월에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60% 수준으로 보고 있다.
한은에서 보고 있는 미국 경기 전망 역시 지난해 말과 올해 초가 사뭇 다르다. 한은 조사총괄팀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경제전망보고서에서는 올해 상반기 미국의 경기 둔화가 이어질 거라 점쳤지만, 한은 뉴욕사무소가 지난 1월 펴낸 보고서는 이러한 우려를 일축했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지난해 말에는 올해 상반기에 경기 둔화가 체감상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있었는데 최근 지표들이 나오면서 그런 전망들이 많이 들어간 상황"이라며 "내부적으로도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미국의 조기 금리인하 기대가 물 건너간 건 물론이거니와, 상반기 금리 인하마저 불확실해졌다고 보고 있다. 박성우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여전히 5월 인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면서도 "연준의 금리인하 시점 지연 위험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도 "연준이 물가 안정을 위해 시장 예상보다 금리 인하 시점을 후퇴시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며 "상반기로 형성된 금리 인하 시점 기대가 하반기로 밀릴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올해 범금융권 신년사에서 정책에 관해 국내 여건에 더 큰 비중을 둘 여지가 커졌다고 언급했지만, 이는 대외 상황이 바뀌면 다시 초점이 옮겨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경기에 대해 바뀐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이 총재는 이달 초 한국최고경영자포럼에서 나서 “미국 성장이 강하다 보니 연준이 금리를 금방 내리지 않을 것에 대해 우리 통화정책이 영향을 받으므로 금리 하락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 두 달간 하락세였다가 이달 들어 상승세로 돌아선 국제유가 탓에 소비자물가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동 분쟁이 길어지며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데다 중국의 경기부양 노력 등으로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주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협상 지연 소식 이후 국제유가는 7거래일 연속 올랐다. JP모건은 주요 산유국들의 자발적인 감산까지 전제에 두며 상반기 중 브렌트유가 배럴당 10달러 더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날 수정 경제전망치를 발표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존 전망(2.6%) 대비 소폭 낮은 2.5%에 그칠 것으로 보면서도, 지정학적 요인에 따른 유가 상승이 향후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위험이 상존한다고 우려했다. 최근 공개된 1월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한 금통위원이 "소비자물가가 앞으로도 1년 이상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며, 공급 측면의 상방리스크도 상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물가상승 불안요인에는 그간 유동성이 공급됐던 영향도 있어 국제유가가 안정되더라도 단기적인 문제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에도 금융시장이 경색을 맞이하니까 정부가 유동성을 풀었던 게 부작용으로 나타나면서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며 "그런 효과 때문에 우리의 금리인하 시점은 더 미뤄질 가능성이 크고, 정책당국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