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5 (목)

이슈 검찰과 법무부

검찰, ‘사법 행정권 남용’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무죄에 항소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검찰이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76) 전 대법원장의 1심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것으로 2일 전해졌다.

조선일보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부터), 고영한 전 대법관, 박병대 전 대법관./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판5부(부장 유민종) 지난 1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7)·고영한(69) 전 대법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사법 행정권의 범위와 재판의 독립 및 일반적 직권남용과 권한유월형 직권남용의 법리에 관하여 1심 법원과 견해 차가 크고, 관련 사건의 기존 법원 판단과도 상이한 점이 있다”며 “사실 인정 및 법령 해석의 통일을 기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항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심 판결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사실관계에 관한 심리가 이루어진 만큼, 항소심에서는 직권남용 및 공모 공동 정범의 법리를 중심으로 신속한 재판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이종민)는 지난달 26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세 사람에게는 ‘재판 개입’ ‘판사 블랙리스트’ ‘법관 비위 은폐’ 등 47가지 혐의가 적용됐는데 모든 혐의가 무죄로 판정된 것이다. 2019년 2월 검찰이 기소한 지 4년 11개월 만이었다. 검찰은 작년 9월 결심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에게는 각각 징역 5년, 4년이 구형됐다.

이 사건은 애초 법원의 세 차례 자체 조사에서 “직권남용 등 범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려진 것이었다. 그런데 2018년 9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하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면서 검찰이 본격 수사를 벌였다.

그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고위 법관 총 14명이 기소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출신으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핵심 혐의는 숙원 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박근혜 정부의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소송 등에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인터넷 댓글 조작 사건, 전교조 법외(法外) 노조 사건 등 재판에 개입하려 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를 포함한 주요 혐의에 대한 공범으로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도 기소됐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대법원장도 재판에 개입할 권한은 없고, 권한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직권을 아예 행사하지 않거나 남용하지 않았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한 바가 없어 직권남용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적용된 다른 혐의들도 전부 무죄가 됐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일부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별도 관리하면서 다른 법원으로 전보 발령한 혐의 등도 받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일부 법관에 대해 불이익한 인사 조치를 한 것은 인정된다”면서도 “전보 등 인사와 관련해 인사권자에게는 폭넓은 재량이 있고 (개별 판사의) 근무 희망지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인사 조치는 재량권 남용이나 일탈에 해당하지 않아 위법하지 않다”고 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에게 연구회를 탈퇴하게 했다는 혐의, 현직 법관들의 비공개 온라인 카페를 와해시키려 했다는 혐의, 긴급조치에 따른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을 인정한 판결을 한 판사들을 징계하려고 했다는 혐의 등에 대해서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판사 출신인 변호사는 “이날 판결은 직권남용에 관한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정운호 게이트’ 관련 판사 비위를 감추려고 검찰 수사 기밀을 수집하려 했다는 혐의 등도 받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수사 기밀을 실시간으로 입수해 검찰 수사 확대를 저지할 방안을 수립하는 데 개입했다는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밖에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기획재정부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을 속여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정부 예산을 받은 뒤 대법원장 격려금 용도로 썼다는 혐의도 무죄가 됐다. 속임수를 쓴 적이 없거나 금전적 이득을 챙길 의사나 실제로 이득을 챙긴 사실이 없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한편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고위 법관 14명 중에 6명은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다른 4명은 항소심까지 무죄 또는 일부 유죄를 받고 대법원 재판 중이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 등 3명이 1심 선고를 받았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오는 5일 1심 선고를 받을 예정이다.

[방극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