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피해자 A씨가 금융서비스 앱의 '송금 메모'란을 통해 받은 협박 메시지 캡쳐 화면 /서울시 |
“내 손에 죽고 싶어? 지금 안 나오면 불 질러 버린다”
작년 12월, 서울에 사는 20대 여성 A씨는 자신의 계좌에 누군가가 ‘1원’을 송금했다는 앱 알림 메시지를 120번에 걸쳐 연달아 받았다. 의아한 마음에 앱에 접속해 이체 내역을 확인한 그는 스토킹 가해자인 전 연인이 남긴 협박 메시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폭력과 욕설, 스토킹을 일삼은 가해자에게 헤어짐을 고한 뒤 전화와 메신저 앱 등을 모두 차단했는데, 연락할 길이 끊기자 가해자가 금융 서비스 앱을 이용해 ‘찾아가 죽이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A씨는 자신의 거주지와 직장 위치를 모두 알고 있는 가해자가 실제로 찾아와 폭력을 가할까 공포에 떨었고, 고민 끝에 서울시 스토킹 피해자 지원사업단 문을 두드렸다.
지원사업단은 A씨가 이미 한 차례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음에도 가해자가 또다시 범행을 반복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긴급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 거주지 이전 비용을 지원해 A씨는 일주일만에 새 거처를 구할 수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찰 신고 이후에도 가해자가 스토킹을 지속할 경우 ‘재신고’를 할 수 있지만 이를 모르는 피해자들이 많다”며 “다시 신고하는 것이 두려워서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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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작년 9월 시작한 스토킹 피해자 지원 사업을 통해 약 4개월간 총 136명의 스토킹 피해자에게 심리상담 및 법률자문 등 지원을 제공했다고 31일 밝혔다.
서울시는 스토킹 피해자를 전담 지원하는 ‘스토킹 피해자 원스톱 지원 사업단’을 시범 운영을 작년 9월 시작했다.
이곳에선 경찰과의 협조를 통해 긴급 지원이 필요한 스토킹 피해자를 선발하고, 심리 및 의료 상담부터 법률 자문, 긴급 이주비 지원, 민간 경호원 제공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스토킹 피해자들이 주로 호소한 피해 유형은 폭행이 41.7%(30건)로 1위, 협박이 23.6%(17건)로 2위 순이었다. 감금 및 강간 피해가 9.8%(7건)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30대 여성 B씨는 이미 한 차례 성폭행과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중고 거래’ 앱 채팅을 통해 스토킹 피해를 입었다. 가해자는 보호조치 상태에 있었음에도 중고 거래 앱에서 B씨가 거주하는 동네를 검색해 B씨에게 연락, “죽기 싫으면 당장 나와라”라며 협박했다.
30대 여성 B씨가 '중고 거래' 앱에서 스토킹 가해자로부터 받은 협박 메시지 캡쳐 /서울시 |
스토킹 피해자 지원사업단은 B씨에게는 가해자를 재신고 할 것을 안내한 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와 심리 상담을 집중 지원했다. 반복적인 스토킹에 노출된 B씨가 극심한 공포로 심리적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오는 2월부터 정식으로 ‘스토킹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를 개관하며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다.
우선 가해자가 피해자의 거주지를 알고 있어 생기는 피해를 막기 위해 이주비 지원을 기존 20명에서 50명으로 확대한다. 피해자가 긴급하게 거주할 수 있는 ‘스토킹 피해자 긴급주거시설’도 기존 2개에서 3개로 늘린다. 이 긴급주거시설은 최대 30일 동안 이용이 가능하며, 이후 최대 6개월 이용이 가능한 장기보호시설로 옮길 수도 있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최근 스토킹범죄가 신종 수법으로 진화할 뿐 아니라 강력범죄를 동반하는 유형이 많아 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센터 개관과 함께 민간경호, 이주지원 같이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강화해 보다 빠른 일상회복을 도와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김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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