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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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의 정점으로 여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법원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판단이 논란이 되고 있다. 법원은 앞선 사법농단 재판에서도 ‘재판개입은 했지만 사법행정권자에게는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어 직권 남용은 안된다’는 논리를 반복해왔고 이번에도 유사한 판단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주어진 권한을 넘어 재판에 개입했다면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할 것 같지만, 법원의 법 해석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처벌하는 직권남용죄는 2014년까지는 연간 기소 인원이 20명 미만이었던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박근혜 특검팀’과 서울중앙지검에서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를 하며 직권남용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8년에는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인원이 53명까지 늘었다. 특히 뇌물 등 다른 여러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사법농단 사건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주요 피고인의 대표적 혐의로 직권남용이 적용됐다.
이에 대해 법원은 대체로 ‘직무권한’이 없으면 ‘남용’도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왔다. 이런 논리는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됐지만 2022년 4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건부터 지난 26일 5년 만에 1심 판결이 나온 양 전 대법원장 사건까지 적용됐다. 임 전 부장판사 사건에서 1·2심은 ‘재판개입’이라면서도 “재판에 개입할 직무권한이 없으니 직권남용도 없다”는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재판장 이종민)도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재판개입 행위 자체는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에게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어 직권남용도 없었다는 논리를 반복했다.
하지만 법원이 항상 같은 논리로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사법농단 사건에서도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1심 재판부는 ‘직무권한 범위 내의 남용’(재량적 남용)뿐만 아니라 ‘직무권한 범위 밖의 남용’(월권적 남용)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다만 항소심은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월권적 남용’ 법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월권적 남용을 직권남용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학계에서도 나온다.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논문(2019년)을 통해 대법원의 직권남용 해석이 너무 좁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직권남용죄의 남용 개념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월권적 남용’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1년 대법원은 해군본부 법무실장이 국방부 검찰수사관에게 수사기밀사항을 보고하게 한 행위는 ‘직무권한의 범위를 넘어 직무 행사처럼 보이게 한 부당한 행위’라며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이같은 혼란이 생기는 이유는 직권남용죄의 모호함 때문이다. 법원의 좁은 직권남용죄 해석을 꾸준히 비판해 온 양경승 전 부장판사는 한겨레에 “직권남용죄는 처음부터 (모호하다는) 태생적 한계를 가졌다”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도 판례가 엇갈리고, 법조인들도 기준을 정하기가 어려운 법”이라고 설명했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2007년 직권남용죄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법원 해석을 통해서도 ‘직권을 남용한다’는 의미를 파악해 내기 쉽지 않다. 이 조항은 의미가 추상적이어서 불명확하고 그 적용 범위 또한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라며 홀로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때문에 ‘직권남용’의 개념을 ‘월권적 남용’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법해석 확대가 아니라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2년 공무원의 ‘직무권한’뿐만 아니라 ‘지위’ 남용으로 인한 불법행위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지위남용죄’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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