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문건 ‘참고자료 전달’로 판단한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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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의견 반영 위한
재판 시나리오·대응 문건
“대외관계 영향 점검 차원”
직권 남용 아니라 판단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지난 26일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법원행정처가 일제 강제징용 소송에 외교부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재판 시나리오와 각종 대응 방안 등을 검토한 것이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건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이 대법원 재판부로 넘어갔지만 이는 단순한 ‘참고자료 전달’이라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 소부가 2012년 피해자들 승소로 판결하자 사법부 이익 도모를 위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고 위법한 지시를 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됐다.
이번 재판부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박근혜 정부 외교부 관계자들과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협의한 사실은 인정했다. 2012년 판결을 뒤집으려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야 했는데 대법원이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그 계기로 삼으려고 했다는 게 공소사실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2012년 판결을 뒤집으려는 방침이나 목적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을 기반으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여러 강제징용 소송 관련 문건들도 재판 개입 목적이 아니라고 했다. 법원행정처가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위해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 도입을 검토한 문건에 대해서 재판부는 “정책법원으로서의 일반적인 재판제도 개선에 대한 선행 검토 차원에서 이뤄진 것일 뿐”이라며 재판 개입성 문건이 아니라고 했다.
재판부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작성한 강제징용 소송의 재판 시나리오, 대응 방안 검토 문건도 판결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단순 검토했을 뿐이라고 했다. 한 문건엔 ‘외교부 측에 절차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방안’으로 ‘피고 측 변호인을 통해 외교부 입장을 담은 각종 서류를 간접적으로 제출하는 방안 가능’이라는 내용이 있다. 재판부는 이 문건들에 대해 “사법부의 대외관계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절차적 배려 방안을 검토하게 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작성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 문건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전략으로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면담 추진을 거론하며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 사건에 대해 청구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기대할 것으로 예상되니 처장이 이 실장을 직접 만나서 법원의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를 피력’이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검찰은 특정 재판을 청와대의 입법 협조 대가로 삼는 것 자체가 사법행정의 한계를 넘는다고 주장했다. 이 문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상고법원 도입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법 협조를 얻기 위한 새로운 전략 마련과 구체적 설득 방안을 검토한 것”이라며 “재판 개입을 검토한 것은 아니므로 직권남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원행정처 문건 중 일부는 강제징용 사건을 심리하던 대법원의 재판연구관실에 전달됐다. 검찰은 재판 개입 의도로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의 쟁점이 될 수 있는 자료가 법원행정처에서 대법원 재판부로 넘어갔지만 ‘참고자료 전달’이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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