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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재판 개입 인정하고도 ‘대법원장은 몰랐다’고 판단한 법원[양승태 ‘사법농단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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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가까운 심리 끝 ‘모든 혐의 무죄’ 판결 논란

경향신문

법원 나서는 양승태 ‘사법농단’ 혐의 전체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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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제청 한 재판부에 법원행정처가 재결정 전달’ 인정
양승태 공모는 불인정…법조계 “몰랐다는 건 납득 안 가”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1심 법원은 5년 가까운 심리 끝에 지난 26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부 재판 개입과 법관 독립 침해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대법원장은 이에 공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대법원장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취지의 판결을 두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번 판결은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를 일부 인정한 바 있는 다른 사법농단 사건 판결과도 배치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가 무죄 결론을 내린 데에는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사법행정 실무자들의 공모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판부의 무죄 선고를 두고 일각에서는 “사법농단에 실체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이번 재판부도 법원행정처에서 일부 재판 개입과 법관 독립 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법원행정처가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한 재판부에 직권취소 및 재결정 의견을 전달하고, 매립지 귀속 분쟁·판사 비위 관련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에 선고 시기에 대한 의견을 전달한 것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에게 헌재 내부 사건 정보·동향 수집을 지시하고,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담당 재판부에 대한 특정 법리 전달 등을 지시한 사실도 인정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의 공모를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임 전 차장·이 전 위원으로부터 사전에 관련 내용을 보고받거나 승인, 지시한 적이 아예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혐의는 앞서 이 전 위원에게 유죄를 선고한 1·2심 재판부가 모두 양 전 대법원장과의 공모관계를 인정했던 부분이다. 이 전 위원의 일정파일에 ‘인사모 CJ(대법원장) 보고(강경대응 주문)’ 등이 기재돼 있고, 이 전 위원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 문제는 내 임기 중에 정리하겠다’고 들었다는 검찰 진술 등이 근거였다. 이 전 위원도 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재판부는 이 전 위원이 법정에 나와 양 전 대법원장에게 대책 마련 지시를 받지 않았고 사후에 보고한 기억이 없다고 증언한 점 등을 근거로 공모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위원 사건 1심 재판부는 헌재 정보 수집 지시, 통진당 행정소송 개입에 대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의 공모를 인정한 바 있지만 이번 재판부는 이를 모두 부인했다. 법조계에선 ‘법원행정처 실무자들이 대법원장 의사에 반해 업무를 할 수 있느냐’며 이번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번 재판부는 박 전 처장은 위헌제청 결정,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은 법관 비위 관련 사건의 재판 개입에 가담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대목에서는 ‘권한 없이, 남용 없다’는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직권’이 있어야 하는데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애초에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로 판사들로 하여금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하게 한 혐의도 이번에는 무죄가 나왔지만 앞선 재판에선 유죄가 선고된 부분이다. 이 전 위원 사건의 2심 재판부는 “중복가입 해소 조치의 실질적 목적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제재였고, 법관의 학술적 결사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반면 이번 재판부는 “법관은 일반 국민과 같은 정도로 연구·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법원행정처에 재량권이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행정처 쪽 시각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판결에는 문제가 있는 법원행정처의 문건들에 대해 정당한 사법행정이라고 판단한 대목도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사건에 관한 법원행정처 문건에는 청와대가 크게 불만을 표시했다는 내용과 함께 “재항고 인용 결정→양측(청와대와 대법원)에 윈윈의 결과가 될 것임” 등의 내용이 나온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사건의 진행 방향을 예측하고 재판 결과에 따라 사법행정에 미칠 파장을 미리 검토해보는 성격일 뿐”이라며 “청와대와의 협상을 위해 재판에 개입해 영향을 미치기 위한 문건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재판을 청와대와의 거래 대상으로 언급하는 보고서 작성 자체가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문건에 재판에 개입한다는 내용이 직접적·구체적·명시적으로 적혀 있지 않으면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논평을 내고 “이것이 과연 법과 양심에 기초한 판결이냐, 무슨 범죄를 저질러도 법관은 무죄인 ‘법관무죄’ 시대가 아니냐”며 “사법권 독립을 법원 내부에서부터 침탈해버린 사법농단의 작태를 방치하고도 국민들 앞에서 법과 정의를 말할 수 있느냐”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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