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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20대 남성의 피부입니다”… DNA만으로 나이-신체부위 맞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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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진화하는 과학수사 기법, 해결 가능해진 미제사건

대검 과학수사부, 新 DNA 분석법 개발… 나이따라 달라지는 패턴 찾아내 수식화

미량으로도 오차범위 ±5세 나이 식별, 심장 등 피해 입은 부위 혈흔으로 알아내… ‘시신 없는 살인’ 용의자 혐의 입증 쉬워져

“DNA로 몽타주 제작하는 게 다음 목표… 미제 사건 사라지는 날까지 연구할 것”

동아일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DNA화학분석과 시료채취실에서 본보 장하얀 기자(왼쪽)가 김종식 연구사의 도움을 받아 면봉으로 유전자를 채취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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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없는 살인 범인도 잡는 DNA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와 이환영 서울대 의대 교수가 새로운 유전자(DNA) 분석법을 개발했다. 새 분석법을 활용하면 흉기에 묻은 피부세포로 용의자 나이대를 추정할 수 있고, 시신 없는 살인 사건도 범인을 찾을 수 있다.》

사건 1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압축된 용의자는 2명. 50대 남성과 그의 20대 아들이었다. 부자(父子)는 둘 다 ‘내가 한 게 아니다’라며 범행을 부인했다. 유일한 증거는 흉기로 쓰인 망치 한 자루뿐. 지문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수사 당국은 망치 손잡이에 남은 극미량의 피부 세포에서 유전자(DNA)를 추출했다. 이 DNA의 주인이 바로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피해자의 혈흔도 섞여 있는 탓에 범인을 확인할 방법은 남성에게만 있는 Y 염색체를 가려내는 방법뿐이다.

이 사건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새 DNA 분석법의 정확도를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사례다. 지금까지는 이런 사건에서 아버지와 아들 중 누가 범인인지 DNA만으로 가려내는 건 불가능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Y 염색체를 주고받는데, 기존 DNA 분석법으로는 둘을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자나 형제가 함께 용의선상에 오를 경우 진술의 신빙성이나 알리바이 등을 통해 진범을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검 과학수사부 DNA·화학분석 연구팀과 이환영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팀이 지난해 12월 공동 개발한 ‘후성유전체학을 이용한 인체조직 식별 및 연령 추정 기법’ 덕분이다. 이 분석법을 활용하면 DNA만으로 그 주인의 나이대를 밝혀낼 수 있다.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 중 누가 범인인지도 알 수 있다.

기존 DNA 분석법은 쉽게 말해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발자국을 용의자의 신발과 대조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추정기법으로 이제는 발자국만으로 범인의 발 크기를 알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술은 지난 30여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수사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 줄 신기술로 평가된다. 어떤 원리인지, 수사에 어떻게 도움을 줄지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 증거물 넣자 2시간 후 “20대 남성 DN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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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등으로 비췄을 때 형광으로 빛나는 부분 있죠? 아주 작은 부분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채취해야 합니다.”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1층 과학수사부 DNA·화학분석과 연구실에서 김종식 연구사가 말했다. 김 연구사가 조명을 끈 연구실에서 특수 플래시라이트로 망치를 비추자 맨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인체 조직이 형광으로 빛났다. 가상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밝혀낼 증거물이었다.

김 연구사는 소중한 증거가 오염될세라 조심했다. 면봉을 바꿔 가며 인체 조직을 긁어 미리 준비해 둔 시료통에 각각 담았다. 여기서 추출한 DNA는 분석하기에 충분한 양으로 증폭한 뒤 염기서열 분석기로 옮겼다.

진짜 ‘마술’은 이제부터였다. 약 2시간 후 모니터에 염기서열 분석 결과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이 값을 자체 개발한 나이대 추정 방정식에 대입했다. 이 방정식은 DNA가 나이대에 따라 다르게 분화하는 패턴을 연구팀이 찾아내 수식화한 것으로, 새 분석법의 핵심이다.

계산 결과, DNA의 주인은 20대 남성이었다. 가상 사건에서 범인은 아들이었던 것. 같은 분석법을 활용하면 지적장애 등으로 피해자의 진술이 불명확한 가정 내 성폭행에서도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다. 김 연구사는 “똑같아 보이는 DNA도 주인의 나이대 등에 따라 미세하게 다시 나뉘는데, 이번에 개발한 건 그 차이를 작은 오차로 특정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위아래로 다섯 살의 오차 범위 내에서 주인의 나이를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 ‘시신 없는 살인’도 DNA 출처 식별로 해결 가능

사건 2
A 씨가 실종됐다. 아니, 친구 B 씨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강력하게 의심된다. A 씨가 B 씨와 머물렀던 장소에선 피로 흥건한 옷과 칼이 발견됐다. 수사 당국의 끈질긴 추궁 끝에 B 씨는 자기가 A 씨를 칼로 찔렀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A가 죽지 않고 멀쩡히 도망갔다’고 잡아뗐다. 이 사건이 ‘시신 없는 살인’이라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B 씨는 살인죄보다 훨씬 가벼운 죄로 풀려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의 열쇠는 바로 옷과 칼에 묻은 인체 조직이 A 씨 몸의 어떤 부위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만약 그게 심장이나 뇌 조직이라면 B 씨는 거짓말한 셈이 된다. 치명상을 입은 게 분명한데 A 씨가 멀쩡하게 도망가는 걸 두 눈으로 봤다고 주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도 대검 과학수사부가 개발한 새 분석법으로 실마리를 풀 수 있다. 극소량의 DNA만으로도 그게 내부 장기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피부나 근육인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장기 중에서도 심장, 뇌, 콩팥, 간, 폐를 구별할 수 있고 피부 조직도 겉피부(표피)와 속피부(진피)를 분간할 수 있다.

이처럼 DNA만으로 주인의 인구학적 특성을 파악하는 피노타이핑(phenotyping) 기법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짧은연쇄반복(STR)’ 기법이 도입된 후로 2019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를 밝혀내는 등 DNA 분석 기술이 크게 발전했는데, 그다음 단계가 바로 피노타이핑이다. 미국의 경우 DNA 주인의 나이뿐 아니라 모발과 눈의 색상 등까지 파악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미국 등에는 뒤지지만, 우리 기술만으로 피노타이핑 기법 개발의 돌파구를 마련한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는 용의자의 DNA 분석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의뢰해 한참 만에 결과를 받아 보는 장면이 나온다. 강력범죄 수사는 신속성이 중요한데, 해외 기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자체 기술력을 갖춘 건 치안 수준 등 국제 위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검 연구팀과 이 교수는 4년에 걸친 연구 끝에 개발한 이번 분석법을 지난해 9월 국제학술지 ‘포렌식 사이언스 인터내셔널: 제네틱스’에 발표했고, 조직 식별과 나이 추정 마커(표지물)는 이달 18일 특허청에 특허 출원을 마쳤다.

● ‘육절기 살인’ 해결 후 “더 정교한 분석법 개발하자” 결심

대검 과학수사부 이한철 연구관과 김 연구사가 이번 연구에 착수하게 된 계기는 9년 전의 한 살인 사건이었다. 이들은 2015년 2월 경기 화성시 60대 여성 ‘육절기(고기 분쇄기) 살인 사건’에 투입됐다. 정육점에서 쓰는 분쇄기를 시신 유기에 악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수사 당국은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의 인체 조직을 찾았다.

총 3차례의 현장 지원을 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1차 감정 시 발견하지 못했던 혈흔과 유전자형을 검출했고, 범행도구로 쓰였던 육절기에서 피해자의 근육과 뼈, 지방조직을 추가로 감정했다. 결국 시신이 없어 미제로 남을 뻔했던 ‘육절기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살인 및 시체유기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현재도 복역 중이다.

연구실로 돌아온 이 연구관은 ‘만약 법의학실에서 분석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보다 세포조직이 더 작으면 어떻게 될까’ 고민했다. 그게 이번 연구의 시작이었다. 통상 살해 도구나 현장에서 발견된 조직 덩어리는 법의학실로 옮겨져 임상병리사 주도하에 조직 분석을 거쳐 어떤 신체 조직이었는지를 특정한다. 하지만 조직 덩어리가 분석할 만한 정도의 크기여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임상에서 조직학적으로 분석하기 힘든 미량의 시료라도 DNA 패턴 분석을 통해 어떤 신체 조직인지 식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연구사는 “시체를 잘게 토막 냈을 때를 가정해 신체 깊숙이 있는 조직을 표적으로 구별법을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조직 식별을 통해 시신이 없어도 피해자의 사망 여부를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할 수 있게 됐다.

● 단순 DNA 대조부터 ‘바이오 몽타주’까지

대검 과학수사부는 국과수나 경찰 과학수사대(CSI)보다 덜 알려졌지만, 국내에서 ‘최종 감정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 중 감식이 필요한 증거의 대부분은 1차 감정기관인 국과수로 보내진다. 이 중 추가 분석이 필요한 일부가 대검 과학수사부로 넘어간다.

시작은 1991년 5월 처음 설치된 DNA 감식실이었다. 이듬해 DNA 감식기법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이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괌 KAL기 추락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등 대형 사건·사고 때마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 희생자의 신원 파악에 앞장서 왔다. 2010년엔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

2011년 DNA 수사담당관실로 확대 개편하면서 ‘국산화’와 ‘선진화’ 실험에 박차를 가했다. 과거엔 외국에서 시약을 사 와 실험했지만 국내산 시약을 개발해 신원 확인에 사용하고, 세분화·고도화된 감식 기술 개발에 힘썼다. 하지만 채취한 DNA가 미량이면 사건 당사자의 신원 확인이나 DNA DB와의 대조 등이 고작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무궁무진한 정보를 가진 DNA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 연구관은 “DNA는 나오는 양이 엄청나게 적다. 그래서 한 번에 최대한의 정보를 얻어내는 게 중요하다. 표본 낭비를 막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 최종 목표는 “미제 사건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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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관은 “분석이 끝나면 공동감정관끼리 ‘우리 놓친 거 없어?’ 하고 물어본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마지막 시도라는 생각으로 분석에 임하는 만큼 케이스마다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얼굴 생김새나 키 등 외적 요소를 식별하는 DNA 분석법을 개발하는 것. 김 연구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키, 외모, 보이는 얼굴 특성 그런 부분적 특성도 DNA 분석을 통해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신체) 부분마다 DNA가 주는 단서를 모아 범인을 특정할 정보를 최대한 많이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김 연구사와 이 연구관은 같은 답을 했다.

“범인을 잡아 억울한 피해자도, 미제 사건도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거죠.”

장하얀 기자 jwhi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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