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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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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한 NBA 히트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 [SS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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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NBA 마이애미 히트는 현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과 미 스포츠 사상 감독 최고인 8년 1억2000만 달러 계약을 연장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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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LA=문상열전문기자]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처음 시작은 보잘 것 없어도 그 끝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NBA 마이애미 히트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53)에게 딱 어울리는 문구다. 최근 미 언론들은 스포엘스트라가 히트와 8년 1억2000만 달러(1587억 원) 계약 연장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연봉 1500만 달러. 지난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몬티 윌리엄스가 6년 7850만 달러, 샌안토니오 스퍼스 감독 사장 그렉 포포비치가 5년 8000만 달러가 NBA 최고액이었다. 이번 스포엘스트라의 연장 계약은 NBA뿐 아니라 미 스포츠 감독으로 역대 최고액이다.

히트는 미국 스포츠 사상 후발 주자로 가장 성공한 구단이다. 1988년에 창단돼 3차례 NBA 정상에 올랐다.

스포엘스트라는 농구 명문 출신도, NBA에서 활동한 적도 없다. 오리건주 포틀랜드 대학을 나온 포인트가드가 배경의 전부다. 1995년 히트의 비디오 코디네이터로 발탁된 게 NBA와의 인연이다. 거의 30년 만에 미 스포츠 감독으로는 최고 대접을 받는 위치에 올랐다. 처음 비디오 분석가로도 취직이 불투명했다. 여름이 지나서야 했다.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1995-1996시즌 명장 팻 라일리(78)가 오면서부터다.

사실 스포엘스트라가 오늘날 위치에 오른 것은 라일리 사장의 흔들리지 않는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다. 감독으로 성적이 부진하고 팬들이 라일리의 복귀를 원할 때도 젊은 스포엘스트라가 히트의 감독이라고 못을 박았다. 라일리는 1980년대 LA 레이커스의 ‘쇼타임’을 이끈 명예의 전당 지도자다.

NBA 프런트에서 오랫동안 일한 그의 아버지에 따르면 “라일리가 처음 히트 감독으로 왔을 때 계약서상 비디오 코디네이터 고용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운 좋게 비디오 분석가로 채용되면서 1997년에는 드디어 라일리의 코치로 승진하게 된다. 2008년까지 코치로 있으면서 2006년 히트의 창단 첫 우승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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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마이애미 레전드 드웨인 웨이드가 샬럿 호네츠전에 경기장을 찾아 히트 센터 뱀 아데바요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마이애미(플로리다주)|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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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리는 2007-2008시즌 15승67패로 부진하자 감독은 물러나고 사장직만 맡는다. 코치였던 스포엘스트라를 감독으로 승격시킨다. 감독 첫해 43승39패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그러나 이때도 스포엘스트라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의 시험대는 프리에이전트가 돼 “나의 재능을 남부 플로리다로 가져간다”는 르브론 제임스의 가세부터다. 르브론은 2010년 친구인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시와 트로이카를 구축하면서 단숨에 우승 후보로 만들었다.

그러나 초반 성적은 밋밋했다. 2010년 11월27일 댈러스 매버릭스에 패해 9승8패가 된 경기에서 스포엘스트라는 르브론에게 수모를 당한다. 타임아웃 때 르브론은 코트사이드로 들어가면서 감독 스포엘스트라를 거의 고의에 가까울 정도로 어깨를 치고 들어간다. 당시 히트 팬들은 성적에 불만을 드러내며 라일리 사장의 감독 복귀를 강하게 원했다.

히트는 르브론의 4년 동안 4년 연속 파이널에 진출하고 두 차례 우승을 추가했다. 하지만 4년 연속의 위업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르브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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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히트는 15일 현재 23승16패로 동부 콘퍼런스 5위에 랭크돼 있다. 지난해 10월31일 밀워키 벅스전에서 히트 가드 타일러 헤로가 골밑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USA TODAY Sport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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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엘스트라의 진정한 지도력과 NBA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르브론이 떠난 뒤다. 르브론이 떠난 첫해는 좌절의 쓴맛을 봤지만 이후 6차례 PO와 두 차례 파이널 진출을 엮어내면서 정상급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구단이 미 스포츠 사상 감독 최고액을 안겨준 배경이다.

스포엘스트라는 모친이 필리핀인이다. NBA 사상 아시아계로는 처음 우승을 이끈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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