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290만 명 대상...유의동 "코로나19 시기 이후 고금리·고물가 경제상황 고려"
국민의힘과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신용사면(신용회복)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당정은 감세 등 현금성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유의동(가운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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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가 11일 역대 최대 규모의 '신용사면(신용회복)'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지 일주일만이다. 당정은 코로나19 시기와 고물가·고금리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한 조치라고 밝혔다. 다만 총선이 90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고 최근 감세 등 현금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어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의 일환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신용사면은 연체 기록을 삭제해 주는 것을 말한다. 대출을 3개월 이상 연체할 경우 신용정보원은 최장 1년간 연체기록을 보존하면서 금융기관과 신용평가사(CB)에 이를 공유한다. CB사는 신용평가 때 연체 기록을 최장 5년간 활용하기 때문에 연체된 금액을 상환하더라도 이후 카드 사용, 신규 대출 등 금융거래에 제한이 생긴다.
이번 신용사면 대상자는 2021년 9월부터 올 1월까지 2000만 원 이하의 연체자 중 5월 말까지 전액 상환한 서민·소상공인으로 최대 290만 명에 달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신속채무조정을 통한 이자감면은 현행 30~50%에서 50~70%로 확대한다.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금융권은 최대한 신속히 신용회복 지원 방안을 마련해 이르면 내주 초 협약을 체결하고 조치를 이행하기로 했다"며 이같은 내용의 정책을 발표했다.
유 정책위의장은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전환된 상황에서도 서민·소상공인은 고금리·고물가 등으로 힘겨운 경제 상황에 처해있다. 특히 불가피한 상황으로 대출을 연체했지만 이후 연체 금액을 전액 상환해도 과거 연체가 있었다는 이유로 금융거래와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며 "당은 이런 분들이 연체 금액을 전액 상환한 경우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신속히 복귀할 수 있도록 금융지원을 마련해줄 것을 정부와 금융권에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체기록이 삭제되면 신용점수가 상승하게 되어 카드 발급이나 좋은 조건으로 신규대출을 받는 등의 정상적 금융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회의에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과거 사례를 살펴본 결과 신용사면 후 신용평점 상승으로 서민·소상공인의 카드 발급 및 금융 접근성이 개선되고 장기연체 발생 억제 등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했다"며 "이번 신용사면이 최종적으로 전액 상환한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부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지 않도록 국민께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신용사면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이후 급물살을 탔다. 당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약계층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신속한 신용회복 지원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8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코로나19 타격으로 대출을 못 갚아 연체한 경우 그 기록을 삭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금융권과 협의 중이고, 협의만 된다면 설날 이전에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민생토론회에서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및 감세 등을 골자로 한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부처 업무보고 자리를 총선 공약 발표 자리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오는 2월까지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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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 나오는 '돈 깎아주기' 정책, 총선 의식?
다만 취지와 별개로 시기를 두고 총선용 선심성 정책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여당은 최근 감세 등 현금성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전날(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소형주택을 다주택자 중과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재개발·재건축 규제도 대폭 완화하며 수도권·중도층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건강보험료 부담도 완화했다. 지난 5일 건강보험료와 관련해 지역가입자의 자동차 부과 기준을 폐지하고 재산에 적용하던 공제 금액을 현행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확대했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취지다. 그러나 이로 인한 건강보험료 전체 수입은 9871억 원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건강보험에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이 제정된 2007년 이후 국고지원액은 매해 미달했다. 누적 미지급금은 32조 원에 달한다.
지난 3일에는 영세 소상공인 126만 명을 대상으로 업체당 20만 원씩 총 2520억 원 규모의 전기료를 감면하기로 했다. 한전 적자 확대가 우려되는 지점이다. 한전은 2021년 2분기 이후 9분기 연속 적자를 내며 누적 적자가 4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지난 5월 25조 원대 자구안을 발표한 데 이어 11월에도 1조 원 규모의 추가 자구안을 냈다. 또 적자의 원인으로 역마진 구조가 지적되면서 지난해 4~5월 다섯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약 40% 올린 바 있다.
코로나19 시기 자영업자 57만 명에게 선지급된 재난지원금 환수도 면제했다. 총 8000억 원 규모다. 자영업자 187만 명에게 평균 85만 원의 이자를 돌려주는 2조 원 규모의 은행권 상생방안은 환급 시기가 총선을 앞둔 2~3월이다.
정부는 공매도 금지·주식양도세 완화에 이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추진한다. 금투세는 대주주 여부와 상관없이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일정 기준 이상의 소득을 올리면 해당 소득의 20%~25%를 부과하는 세금이다. 앞서 여야 합의에 의해 2025년 도입하기로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금투세가 시행되면 2027년까지 3년간 세수가 4조328억 원 늘어날 것이란 예상을 내놓았다.
◆들어올 돈 줄어드는데...역대급 세수 결손은 어쩌나
이같은 정책 방향은 정부가 강조해 온 재정건전성 기조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역대급 세수 결손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정부·여당은 현금성 정책을 발표하면서도 재원과 세수 결손에 대한 대안은 뚜렷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날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국세수입은 324조2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73조6000억 원에 비해 49조 원 넘게 줄었다. 적자 규모는 65조 원에 달했다. 연간 목표 세수 대비 징수 실적인 '세수진도율'은 지난해 94.4%보다 13.4%포인트 떨어진 81.0%를 기록했다. 세수 결손으로 인해 정부가 지난해 한국은행에 빌린 돈은 117조 원이 넘었다. 지급한 이자만 1506억 원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나랏빚은 늘리지 않기 위해 국채 발행을 자제한 대신 한국은행 일시 대출을 이용한 결과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오세형 경제정책국 부장은 통화에서 "총선을 향한 포퓰리즘적인 정책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봤다. 그는 "지난해 세수 펑크가 60조 원에 달한다는 문제도 있는데 재정건전성 문제는 어쨌든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적정한 수준의 세수 증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포퓰리즘 쪽으로 '퍼주기', '부자감세'를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윤영덕 원내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전날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에 대해 "대놓고 총선 지원"이라고 맹비난했다. 윤 원내대변인은 "총선에 올인한 무책임한 포퓰리즘 공약 남발은 윤 대통령이 국정을 얼마나 무책임하게 운영하는지 똑똑히 보여준다"며 "매번 책임지지도 못할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법 개정이 포함된 사항까지 국회와 아무 협의 없이 즉흥적으로 발표하며 국민을 혼란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정책 토론회에서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을 공식화했으나, 이는 여야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 공언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어제 열린 두 번째 토론회에서는 안전진단 없는 재건축을 가능케 하겠다는 발언을 했지만, 재건축 절차조정을 위해서는 도시정비법 개정이 필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뒷감당은 생각지 않고 일단 지르고 보자는 것이냐"며 "앞으로 예정된 토론회마다 이렇게 '떴다방'식 공약을 발표하며 국민을 현혹할 생각이냐"고 비판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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