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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4 (토)

박정훈 대령, 첫 재판서 “사건 본질은 수사결과 축소·왜곡 불법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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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명·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첫 공판 출석

사령관·국방부 대변인 등 12명 증인 채택

경향신문

올 여름 집중호우 피해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모 상병 사고 초동조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군사법원의 재판이 시작된 7일 박정훈 대령이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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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사령관에 7월 31일 국방비서관
보고 받은 윤 대통령의 격노 전해들어
피해자 신분 이종섭 장관 조사 안 해


고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를 지휘한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7일 자신의 항명·상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진행된 첫 공판에 출석해 “수사 결과를 축소, 왜곡하라는 불법적인 명령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령 측은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개입 의혹을 재차 제기하며 국방부 검찰단이 이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대령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군사법원에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정복을 입고 재판정에 들어선 박 대령은 재판 시작과 함께 맞은편에 앉은 군검찰이 공소 사실을 설명하자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변호인의 의견 진술이 끝난 뒤 판사가 “피고인은 추가로 말씀하실 것이 있나”라고 묻자 박 대령은 종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청석을 한 번 둘러본 뒤 입을 뗐다.

그는 “오늘은 고 채모 상병이 순직한 지 141일째 되는 날이다. 스무 살 해병이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너무나 어이없게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경찰은 혐의자 입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방청석에는 해병대 전우회 회원들, 군 사망사고 희생자 유족들이 박 대령을 응원하기 위해 앉아있었다.

박 대령은 “군검찰은 전후 맥락을 살피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면서 제가 단순히 이첩 보류 명령을 위반했다고 기소했다”면서 “이첩 보류만 지시했다면 왜 굳이 사령관과 제가 2박 3일간 고민을 했겠나”라고 말했다. 이첩 자료에서 임성근 당시 해병대 제1사단장의 혐의 기록을 빼라는 것이 국방부의 지시였고 이첩 시기는 부차적인 문제였다는 취지다.

박 대령은 “항명(혐의)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국방부 장관 보고 시 (이종섭 당시 장관이) ‘사단장도 처벌받아야 하나’라는 당연한 질문을 한 것을 안 했다고 주장하면서 (제게) 상관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했다”며 “그러나 정작 군 검찰은 장관에 대한 피해자 진술서조차 받지 않았다. 장관은 본인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에게 적용한 혐의는 경찰 이첩 보류 지시 명령을 듣지 않았다는 ‘항명’,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사단장도 처벌받아야 하는지 물었다”는 허위 발언으로 이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상관 명예훼손’ 혐의 등 두 개다. 즉 이 장관은 피해자 신분이 되는데, 이번 사건에 대한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 기록 목록을 보면 이 장관을 상대로 한 직접적인 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

박 대령은 윤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한 것을 계기로 국방부의 외압이 시작됐다고 재차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7월31일 오전 11시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는 격노하며 이 장관을 연결하라고 했고, 이 장관에게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고 질책했다는 이야기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방 현안과 관련해 이렇게까지 격노한 적이 없었다는 말도 김 사령관이 했다고 한다. 김 사령관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박 대령은 “이후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다섯 차례 통화하면서 ‘죄명과 혐의자, 혐의 내용을 빼라’, ‘수사 말고 조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라’ 등의 외압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사령관과 함께 국방부의 불법 지시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해병대로서는 경찰에 이첩하는 것만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8월2일 오전 사령관에 최종 보고한 뒤 승인을 받고 경찰에 사건을 넘기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령은 “20년간 해병대 생활을 하면서 상관 명령에 절대 충성했고 올바른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군사경찰 최고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동안 상관 명령을 거부하고 불복했다면 어떻게 군사경찰 병과장이 되었겠나”라며 재판부를 향해 “이번 재판은 한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 군인의 명예뿐 아니라 사법 체계의 신뢰가 달린 중차대한 재판임을 고려하셔서 부디 사안의 본질을 살펴주시길 간곡히 청한다”고 말한 뒤 착석했다.

박 대령 측 김정민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사건 개입 여부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전혀 안 이뤄졌다. 심지어 (국방부 검찰단은) 안보실 관계자의 진술서마저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에서는 해병대의 김계환 사령관과 정종범 당시 부사령관, 국방부의 박진희 당시 장관 군사보좌관과 허태근 국방정책실장, 전하규 대변인, 유재은 법무관리관 등 총 12명의 증인이 채택됐다. 다음 공판 기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해병대 수사단 관련 사건은 △해병 순직 사건(경북경찰청)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국방부의 외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이첩 보류 명령에 대한 박 대령의 항명·상관 명예훼손(군사법원) 등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그 중 박 대령의 항명 사건이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박 대령은 이날 재판정 출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모든 사건의 시작은 채 상병의 사망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사망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과 항명 사건과 수사외압 사건이 다 유기적으로 연계가 돼 있다”면서 “항명 사건만 떼놓고 재판하고 결론을 낸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복합적으로 다 밝혀져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령의 법원 입·퇴장 길에는 20여 명의 해병대 전우회 회원들이 ‘박정훈 대령 준법 사건에 대한 공정재판 촉구’가 적힌 빨간색 현수막을 들고 함께 했다.

경향신문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7일 서울 용산구 중앙군사법원에서 열린 항명·상관 명예훼손 혐의 관련 첫 공판에 출석했다. 유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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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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