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감사 결과 발표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은 '종결' 기대하고 조기 퇴근
당시 안보실장·1차장도 이씨 北 표류 중에 퇴근
도박, 채무, 이혼만 근거로 '월북 동기' 짜맞춰
7일 감사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의 객관·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국민 의혹을 해소하고자 국방부, 해경 등 9개 기관을 대상으로 한 이같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6월 국방부와 해경 등이 문 정부 당시 발표 내용을 번복해 이씨의 월북을 인정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함에 따라 이뤄진 조치다.
문재인 정부 당시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앞서 이씨는 2020년 9월 21일 새벽 소연평도 남방 2.2㎞ 지점에서 실종됐다. 이튿날 15시 30분경 실종 지점에서 27㎞ 떨어진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 구월봉 인근 해역에서 북한 선박에 의해 발견됐지만 구조되지 않은 채 표류 상태로 장시간 방치됐다. 이후 이씨는 20시 50분경 실종 지점에서 38㎞ 떨어진 등산곶 인근 해역에서 다시 발견됐지만 불과 몇 시간 뒤 북한군에 의해 사살당했고 시신은 소각 처리됐다.
감사 결과, 국가위기관리 컨트롤타워인 안보실은 사건 당일 17시 18분경 북한 해역에서 이씨가 발견된 사실을 합참으로부터 보고받고도 통일부에 위기 상황을 전파하지 않고 대응 방향 검토를 위한 '최초 상황평가회의'도 실시하지 않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은 북한이 이씨를 구조하면 상황 종결 보고만 하면 된다고 판단해 19시 30분경, 당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보다 이른 시간에 퇴근했다. 당시 이씨는 실종 후 약 38시간 동안 바다에서 표류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고 북한은 구조하지 않은 채 장시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통일부 담당 국장 A씨 역시 18시경 국정원으로부터 발견 정황을 전달받은 후 수차례의 통화를 통해 이씨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도 장·차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A씨는 추가적인 구조 및 생존 여부에 대한 파악 없이 22시 15분경 퇴근했다.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처럼 해경이 최초 실종지점을 중심으로만 수색에 나선 것도 확인됐다.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색 활동을 종료하면 언론 등에 그 사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자료가 대거 삭제된 상황도 적발됐다. 국방부는 사건 발생 하루 뒤에 개최된 관계장관회의에서 안보실이 '서해 공무원 피살·소각 사실에 대한 보안유지' 지침을 하달하자, 같은 날 합참에 관련 비밀자료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합참은 밈스(MIMS, 군사정보체계) 운용 담당 실무자를 사무실로 나오게 해 밈스에 탑재된 군 첩보 보고서 60건을 지웠다.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보고서를 근거 없이 작성하기도 했다. 안보실과 국방부는 23일 이씨의 월북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결론을 정한 후 합참에 자진 월북 여부에 대한 정보 분석보고서를 작성해 관계장관회의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합참은 4가지 근거(▲타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 착용 ▲무궁화 10호 CCTV 사각지점에서 신발 발견 ▲북한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소형 부유물에 의지 ▲월북이라고 답변)를 기초로 해당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이는 향후 수사 결과 모두 근거로 보기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확인되지 않은 월북 동기까지 짜 맞춘 정황이 드러났다. 해경은 월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이씨의 당시 심리상태에 대해 구두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집하면서 도박, 채무, 이혼 등의 정보만 제공해 월북 가능성을 질문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전문가의 답변만 임의로 짜깁기해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의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이밖에도 국방부는 북한군이 이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소각한 사실을 판단했음에도 안보실 방침에 따라 '시신 소각 불확실'로 판단을 변경했고 국정원은 '시신 소각'으로 분석한 후 새로운 증거가 없음에도 '부유물 소각'으로 판단을 수정했다.
이에 감사원은 관련 업무를 위법·부당하게 처리한 국방부 등 3개 기관의 관련자 13명에 대해 징계·주의요구 및 인사자료를 통보했다. 안보실 등 6개 기관에는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요구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안보실 등 5개 기관의 총 20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한 바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