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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 반복…‘기술 탈취 대기업’ 못 막는 하도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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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 반복…‘기술 탈취 대기업’ 못 막는 하도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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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 피해 기업 42.9% ‘조치 포기’
손해 입증 어렵고 법원은 과소배상
업계, 배상액 상향·기준 마련 촉구

2018년 한화의 협력사 에스제이이노테크는 한화를 상대로 기술 침해(탈취·유용 등)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화가 태양광 전지 제조공정에 필요한 ‘스크린프린터’ 기술자료를 부당하게 넘겨받아 자체 제품을 개발했다는 이유에서다. 에스제이이노테크는 손해배상 소송 제기 3년 만인 2021년 12월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해당 판결은 기술 유용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적용된 첫 사례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에스제이이노테크가 인정받은 손해배상액은 10억원에 불과했다. 당초 에스제이이노테크가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100억원이었다. 법원은 한화의 기술 탈취를 인정하면서도 에스제이이노테크가 입은 손해액은 5억원, 배상액은 손해액의 2배까지만 인정했다.

다만 한화 측은 형사소송은 무혐의를 받았고 민사는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기술 탈취 행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중소기업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술 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등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6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벤처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기술탈취 피해규모는 지난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5200억원에 달한다. 2011년 하도급법 개정으로 ‘3배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됐지만 중소기업의 기술 탈취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 기업은 손해배상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피해 기업이 입은 손해를 직접 산정해야 하는데 현행법상 구체적인 손해액 산정 기준이 없다 보니 유·무형의 기술, 노하우 등의 침해 등에 대한 손해 산정을 하기 어렵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술 유출 피해를 입은 뒤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는 중소기업은 42.9%에 달한다.

손해를 입증하더라도 정당한 손해배상을 받기는 쉽지 않다. 현행 하도급법은 기술 탈취에 대한 손해배상을 3배 이내로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간 법원은 1.5배에서 최대 2배 손해배상만 인정하는 ‘과소배상’ 경향을 보여왔다.


업계는 기술 탈취를 막고, 피해 기업이 정당한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선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배수 상향과 손해액 산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국회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월 대표발의한 하도급법 개정안에는 기술 유용에 대해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부과하고, 손해액 산정 기준을 마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술 탈취는 중소기업 생존이 달린 문제”라며 “ 하도급법 개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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