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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이슈 입국 제한과 금지

미, 팔 주민 폭행 연루 이스라엘인 입국 금지…유대인 정착민,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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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 “서안지구 평화 해쳐…비자 제한”

종교적·생활비 등의 이유로 정착촌 거주

이스라엘 정부는 매년 70억원 이상 지원

NYT “‘두 국가 해법’ 위해선 이 문제 해결해야”

경향신문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나블루스의 한 주민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정착촌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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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최근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잇따라 발생한 팔레스타인 주민 폭행에 연루된 이스라엘인에 대해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입국을 금지하겠다고 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확장과 정착민들의 폭력 행위에 경고장을 날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정착촌 확대를 지원해온 이스라엘 극우 내각의 태도 변화가 요원한 데다가 제재 대상자 상당수가 비자 없이도 미국 입국이 가능한 이중국적자라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극단주의자들에 대해 강력한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스라엘 정부에 강조해왔다”며 “서안지구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개인에게 적용되는 새로운 비자 제한 조치를 발표한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구체적인 제재 대상자 신상은 밝히지 않았지만, 추후 서안지구 상황을 고려해 이들의 직계 가족까지 입국 금지 조치를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신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미국이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평가했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이스라엘인에 대한 비자 제한이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도 지난 9월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을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 적용 대상국으로 지정한 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제재를 가했다고 지적했다.

유대인 정착촌은 이·팔 평화 정착을 위한 두 국가 해법에 가장 큰 걸림돌이 돼 왔다. 이스라엘은 2005년 당시 아리엘 샤론 총리의 평화를 위한 대계획의 일환으로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철거하고 모든 이스라엘인을 철수시켰지만, 서안지구에 남아있던 정착촌에선 오히려 충돌이 더욱 격화됐다. 이스라엘 극우정부는 서안지구에서는 오히려 유대인 정착촌 확장 정책을 펼쳐왔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스라엘 인구 900만명 가운데 약 10%가 현재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조성된 150개 정착촌과 128개 전초기지에 살고 있다. 정착촌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국제사회 비판에도 이스라엘 정부가 건설 승인을 강행하며 만들어졌고, 전초기지는 극우 성향의 일부 이스라엘인이 정부 허락 없이 자체적으로 지은 것이다.

이들이 유대인 정착촌으로 이주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전체 정착민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모두 이스라엘 영토로 규정하고, 정착촌 확장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 상당수는 정착촌 건설이 국가 안보를 향상한다고 믿는다”며 “이들은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을 제한하고, 나아가 팔레스타인이 독립국을 세울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정착촌을 늘려야 한다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정착민 일부는 저렴한 생활비와 정부가 제공하는 재정 지원에 매력을 느껴 유대인 정착촌으로 옮겨간다. 정착촌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강제 점령한 이후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는데, 이스라엘 정부는 이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영토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각종 정책 자금을 제공했다. 알자지라는 연간 2000만셰켈(약 70억5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보도했다. 지원금은 사설 보안업체 계약과 팔레스타인 주민을 감시하기 위한 무인기 구매 등에 사용된다. 팔레스타인 영토를 사들이는데도 지원금이 쓰인다.

미국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정착촌 확장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제지하진 않았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2019년 11월엔 정착촌 건설이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면서 이스라엘 편을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 정부가 강경 대응을 시사한 배경엔 지난 10월 7일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 정착민의 폭력 행위가 양측 갈등을 위험 수위까지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조치는 미국이 현재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끝난 뒤 ‘두 국가 해법’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두 국가 해법을 이루기 위해 유대인 정착민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숙제”라고 분석했다.

이스라엘도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착민 폭력 사태를 비판하며 “법치국가인 이스라엘에선 정부가 허용한 이들에게만 무력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미 정부는 도대체 무엇이 평화를 훼손하는 행위인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모호한 혐의를 적용해 제재를 가했다”고 비판했다. NYT도 “제재 대상자 상당수는 미국 이중국적자로 비자 없이도 입국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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