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급등에 소득 줄어…에너지 절감 기술 확대해야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회원들이 지난 4월 24일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거부 및 양곡관리법 전면개정 촉구 농민대표자회의에서 쌀 수입 중단과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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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만원’. 지난해 농가당 영농활동 소득이다.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득이 쪼그라들었다. 소득 감소는 농촌의 불평등과 빈곤까지 키운다. 농민들은 생산비 부담을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국제 원자재 시장이 요동칠 때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안으로 에너지 절감 기술의 보급과 확대, 신재생에너지 활용 등이 제시된다.
소득 줄고 생산비 부담 커지는 농가
지난해 농가의 평균 소득 4615만원 중 농업소득은 949만원이다. 전년 1296만원에서 348만원(-26.8%) 줄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62년 이래 최대 감소 폭이다. 지난해 농업소득이 대폭 감소한 것은 국내외 악재가 한꺼번에 작용한 탓이다. 김태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작년엔 국내적으로 쌀과 한우 가격이 폭락하고,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생산비 부담이 크게 늘면서 농업소득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농업소득은 농업총수입에서 농업경영비(비료·사료 비용 등 생산비)를 뺀 것이다. 지난해 농업총수입은 쌀의 산지 가격 하락 등 영향으로 전년(3720만원)보다 7%가량 줄어든 3460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농업경영비는 전년(2423만원)보다 3.7% 상승한 2511만원이었다. 역대 최고치다.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도 크게 줄었다. 농업소득 비중은 2018년 30.7%에서 2022년 20.6%로 10.1%포인트 하락했다. 농업소득 감소로 줄어든 전체 농가소득은 부업과 같은 농외소득이나 공적 연금소득, 공익직불제 등과 같은 정부의 이전소득으로 메우고 있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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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감소는 불평등도와 빈곤율 심화로 이어졌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11월 1일 내놓은 ‘2018~2022년 농가경제 변화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농가 유형별 소득분포에서 소득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21년 0.389에서 지난해 0.395로 상승했다. 농업소득이 줄면서 농가소득 편차가 커진 이유에서다. 통상 지니계수 값이 0.4 이상이면 소득 불평등도가 심각한 것으로 간주된다. 농촌의 지니계수는 과거 0.4 이상을 보였으나 2020년 들어 0.4 이하로 줄었다. 당시 첫 실시된 공익직불제와 코로나19 시기 지급된 각종 보조금 등 영향으로 소득 불평등이 완화된 영향이 크다고 보고서는 적었다.
빈곤율도 마찬가지다. 전체 농가 빈곤율은 2015년 9.0%에서 2020년 재난지원금 지원, 소농직불금 지급 등 이전소득이 증가하면서 6.4%로 하락했으나, 지난해는 농업소득 감소로 인해 7.8%로 다시 상승했다. 농촌 고령인구도 2018년 63%에서 2022년 76%로 크게 늘었다. 보고서는 현재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향후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이 영농에서 은퇴하는 시점이 도래할 때 농업 생산 분야에 심각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역대급 규모를 보인 생산비 부담은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등으로 국제유가 시장의 불확실성이 크다. 국제유가는 올 1월 평균 80.42달러(두바이유·1배럴당)에서 10월 89.75달러 수준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변동에 밀접하면서 비료의 주요 원료로 쓰이는 요소와 암모니아의 국제 가격은 올 여름 이후 다시 우상향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비료용 요소 수입 단가(t당)는 지난 7월 387달러에서 9월 409달러로 올랐다. 국제 곡물 시장도 비슷한 흐름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 10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0.6으로 전월(121.3)보다 0.5% 내렸지만, 여전히 평균 가격(2014∼2016년 평균값 100)을 크게 웃돈다. 환율 상승도 농가 생산비용 측면에서 악재다. 2021년 8월 평균 1123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8월 1310원까지 올랐다.
유찬희 농촌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국제유가가 등락을 반복하고 있지만 (전기요금과 면세유값 등과 같은) 영농광열비와 비료비의 고공행진은 계속되고 있다”며 “지난해 농업소득의 기저효과로 올해 소득이 높아 보일 수는 있지만, 농업소득이 (평년 수준을 회복할 만큼) 충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관계자들이 지난 8월 28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며 충남 예산군 예산읍 궁평리 한 논콩밭을 갈아엎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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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원자재 가격 전망은
향후 국제 원자재 시장 전망은 어떨까. 국제유가의 경우 지난 9월 월평균 93.25달러(두바이유·1배럴당)에서 10월 3.8% 하락한 89.75달러로 최근 주춤한 흐름이지만, 변수가 많아 추이를 예단하기 힘든 분위기다.
우선 주요 산유국들의 추가 감산 여부가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11월 20일(현지시간) CNBC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최소 연말까지 석유 감산과 공급 감축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는 유가 하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하루 원유 생산량을 1200만 배럴에서 900만 배럴로 줄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회원국들도 추가 감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주목할 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양상이다. 이란 참전 등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산업연구원이 11월 8일 발간한 ‘이·팔 전쟁으로 인한 유가 변동 가능성과 국내 산업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는 전쟁 양상에 따른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먼저 가자지구 내에서 전쟁이 심화하다 종료되는 경우, 국제유가가 1배럴당 최소 3달러 이상 상승할 것으로 봤다. 전쟁 당사국들이 원유 생산국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유가 변동에 미치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레바논과 시리아가 전쟁에 가담하는 경우인데, 이때는 8달러에서 최대 31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봤다. 마지막은 전면전 시나리오인데, 이 경우 국제유가는 150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올 1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대중동 원유 수입 비중은 70.2%로, 어떤 상황이 됐건 국내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국제유가 전망치를 올려잡았다. KDI는 11월 9일 발표한 ‘2023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 국제유가 전망치를 기존(8월 전망치) 1배럴당 75달러에서 85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국제 곡물 가격 불확실성도 크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올해 1월 130.2에서 꾸준히 하락해 지난 10월 120.6까지 내려왔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021년 기준으로 각각 세계 1위, 5위의 밀 수출국이다. 11월 22일 농촌경제연구원은 해외 곡물 동향에서 “소위 인도주의적 회랑을 통한 운송 재개에도 불구하고 수출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으로 밀 시장은 계속해서 혼란을 겪고 있다”며 “올해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량은 전쟁 전 수준보다 35% 적었으며, 2024년에 (생산량이) 반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곡물시장 악재는 또 있다. 밀과 쌀을 세계에서 각각 두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인도가 오는 12월 말 종료될 예정인 곡물 무료제공 프로그램을 5년 더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프로그램은 8억여 국민에게 매월 밀이나 쌀 5㎏을 무료로 제공하는 정책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선 밀과 쌀을 농민들에게 사들여야 한다. 자국 내 원활한 공급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환으로 취한 곡물 수출 제한 조치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5월 밀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올 7월부턴 쌀 수출도 금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10일 경기 수원 팔달구 서호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8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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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확보와 신재생에너지 활용 중요”
‘국제유가 상승이 농가 생산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분석도 최근 나왔다. 농촌경제연구원이 11월 15일 세계은행(WB) 분석 결과를 토대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농가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한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 한국 농업 부문에는 어떤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다. 보고서는 전쟁이 1973년 중동 석유 수출 제한 사태처럼 확산할 경우, 올 4분기 비료비 지수가 (당초 WB가 전망한) 베이스라인보다 3.7~4.9%, 영농광열비 지수는 35.8~47.9% 각각 상승할 것으로 봤다. 특히 이로 인한 내년 농업소득은 베이스라인보다 4.2~5.6%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농가는 농작물 생육 조건을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유가가 올라도 단기간에 유류 사용량을 줄이는 일이 적다”면서 “유가가 계속 일정 수준 이상 인상된다면 일부 농가가 경작을 포기하거나 재배면적을 줄이면서 생산량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적었다.
국제 곡물 가격은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여전히 평균 대비 고점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농가의 사료비 부담도 줄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배합사료 평균 가격은 1㎏당 2020년 479원에서 올해 8월 672원 수준까지 올랐다. 농민단체들은 사료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그간의 생산비 부담 누적과 가축 사육 기간(한우 30개월·육우 22개월)을 고려할 때 축산농가의 경영 여건이 당장 호전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호소한다.
농민단체들은 특히 내년 예산의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예산안 규모가 생산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농촌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 및 수급 안정 예산이다. 올해 1000억원인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 예산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된 내년도 정부안에서 전액 삭감됐다. 사업은 무기질비료 가격 인상분의 80%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기재부는 국제 비료 가격이 최정점을 보였던 2021년 8월과 비교해 올 5~6월엔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며, 내년 예산을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중국에서의 요수 수입이 원활하지 않고 국제 원자재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올 7월 이후 요소 수입 단가가 크게 올랐다. 비료 가격은 운송비와 인건비 상승, 환율 상승 등 영향으로 여전히 고점을 유지하고 있다. 농가 생산비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국회와 기재부를 설득해 관련 예산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1일 소 바이러스성 질병인 럼피스킨병이 발생한 경기 평택시의 한 젖소 농가에서 관계자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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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 농해수위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무기질비료 가격보조 예산이 576억8100만원으로 다시 증액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 농민단체들이 정부의 예산안 제출 이후 요구한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차액 보전 예산(519억2000만원), 농업용 면세유 인상액 차액 지원 예산(653억7200만원) 등도 신규 편성됐다. 다만 최종 예산 규모는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 확정된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기관이 내년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한다. 무기질 비료만 보더라도 원료는 전량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원자재 가격 변화에 민감하다. 무기질비료 가격 보조를 포함한 전기요금 인상 가격 보전, 면세유 인상액 차액 지원 등은 농가 생산비 부담을 줄여주는 대표적인 농가 경영 지원 예산이다.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이런 예산들이 내년도 본예산에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돌발변수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지원이 가능하고 농가 경영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농가 경영 안정을 위한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태후 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농가 생산비 부담 상승의 원인, 즉 국제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 확대와 환율 상승과 같은 국제 변수는 정부 입장에서도 사실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기가 어렵다. 당장은 무기질비료, 면세유, 전기요금 등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미봉책에 가깝다. 농가가 에너지 절감 기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절감 노력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전기료를 보조해주는 방식 등이다. 또 신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목재 펠릿을 활용하거나 가축분뇨를 이용한 바이오가스를 생산해 인근 농가 시설에 전기를 보내는 방식이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요동치더라도 충격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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